<안국동窓> 청계천 파괴사업과 문화재청의 책임
상태바
<안국동窓> 청계천 파괴사업과 문화재청의 책임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1.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7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 청계천의 사라진 돌다리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서울시에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복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돌다리들의 사진을 <한겨레신문>이 찾아낸 것이다. 일제 시대에 어떤 일본인 전문가가 서울의 돌다리에 관한 연재기사를 한 잡지에 연재했는데, 이 기사에 청계천의 돌다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 실린 것이다.

서울시가 이런 사진들을 정말로 가지고 있지 않은 지도 사실 대단히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이제는 더 이상 형태를 확인할 수 없어서 복원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수는 없게 되었다. 우선 청계천의 역사성과 전혀 관계없는 희한한 형태의 다리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600년 역사유적 청계천의 역사를 되살릴 수 있도록 청계천파괴사업을 즉각 중단하고 발굴부터 완전히 다시 해야 한다. 이렇게 하도록 문화재청은 그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1938년에 일제는 청계천에 산책도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 한창 일제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던 <조선일보>는 이 계획으로 청계천이 '불란서 파리의 세느강처럼 아름다운 시(詩)의 시냇가로 될 것도 멀지 않은 일'(조선일보, 1938년 4월 21일; 서울학연구소, 2002: 51에서 재인용)이라고 찬양했다. 당시의 현실에 비추어 보자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기대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청계천은 오물이 넘쳐나는 '도시의 암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도시의 암종'은 또한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하디 귀한 역사유적이었다. 일제가 복개공사를 하고 하수구공사를 하며 청계천의 역사유적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 한 일본인이 있을 정도였다(서울학연구소, 2002: 185-196). 눈앞에 보물을 두고도 보지 못하고 파리를 찾고 세느강을 찾으면서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도시하천유적을 망쳐버린 것이 우리의 근대화 역사였다. 이명박 시장은 일제가 벌였던 일과 벌이고자 했던 일을 지금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복원사업은 대대적인 도심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청계천파괴사업이다. 그는 박정희식 개발의 폐해를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그가 벌이는 짓은 박정희식 개발을 더욱 더 확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울의 역사와 환경을 크게 파괴하는 것이다. 이명박 시장의 파괴계획에 따라 무지막지한 시멘트 옹벽이 들어선 청계천과 도심을 가득 메우고 들어설 초고층 건물들은 철저히 파괴된 서울의 상징일 뿐이다. 서울의 역사와 자연을 되살리라는 시민의 요구가 드높은 이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신개발주의와 구개발주의는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에 복종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파괴의 규모 면에서 신개발주의는 구개발주의보다 훨씬 더 무섭다. 청계고가도로는 없앨 수 있지만, 세운상가도 없앨 수 있지만, 새로 들어설 초고층 건물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청계천을 넘어서 도심 전체가 마구 파괴되기 전에 이명박 시장이 요란하게 몰고 있는 신개발주의의 쾌속차를 멈추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을 파괴하고, 600년 역사를 간직한 도심을 파괴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도심을 자기와 같은 부자들을 위한 장소로 만들려고 한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복원사업은 도시계획의 절차와 집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거대한 역사적 사업이 새로운 시장의 취임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서울시의 놀라운 효율성은 시장을 위한 것이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의 운영은 잘 보여주었다. 시민위원회의 모든 회의는 시민 앞에 철저히 공개되어 그 잘잘못을 평가받으며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저 이명박 시장과 양윤재 본부장의 구상에 따라 진행되었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위원회는 결국 철저히 농락당하고 말았다.

오직 문화재청만이 이 잘못된 사업을 중단시키고 바로잡을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서울시의 눈치만을 보면서 사실상 서울시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었다. 조선을 대표하는 역사유적이 완전히 제 모습을 잃고 사라지도록 문화재청은 뒷짐지고 헛기침만 해댔던 것이다. 신임 유홍준 청장은 이 나라의 모든 곳이 사실상 박물관이라며, 또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며,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드높인 장본인이다. 그런 만큼 그가 잘못된 청계천복원사업을 바로잡아주기를 고대하게 된다. 이미 상당히 늦었지만 이제라도 문화재청은 책임을 통감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청계천복원사업은 석축의 복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왕에 쌓은 시멘트 옹벽을 모두 철거할 필요는 없다. 원래 청계천의 폭과 형태를 살리고 남는 부분은 위를 덮어서 통수로로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통수단면도 넓히고 청계천의 옛모습도 대부분 되찾을 수 있다. 시간이 조금 더 들어서 이명박 시장이 선거에 써먹기는 어렵겠지만, 대신에 우리는 조상과 후손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이명박 시장을 위해서 청계천을 파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조 49년(1773년)에 석축공사가 끝난 뒤 영조는 세손(뒷날의 정조)를 데리고 개천에 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뜻이 있으면 일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무릇 의미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뜻을 세우고 힘써야 할 것이다(有志者 事竟成 汎欲有爲 當先立志勉之哉).

그러나 잘못된 뜻이 이루어져는 안 될 것이다. 영조는 백성을 위해 청계천을 준설하고 석축을 쌓았다. 이명박 시장은 누구를 위해 역사유적 청계천을 파괴하고 터무니없는 하천공원을 만들고 있는가? 이명박 시장이 세계적인 역사유적 청계천을 서슴없이 파괴하고 있는 이 때에 문화재청은 언제까지 뒷짐을 지고 헛기침만 하고 있을 것인가?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