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에게 ‘치마’를 입혀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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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에게 ‘치마’를 입혀 보냈다
  • 이우리
  • 승인 2004.11.1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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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웬 치마 하나를 챙기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 안 입게 된 것을 같은 어린이집 한 엄마에게 얻어왔다면서, 또 우리나이로 4살 난(38개월) 시커먼 아들 녀석에게 입힐 옷이라면서…

아들 하나 달랑 낳아놓고 단산한 나는 아내의 딸에 대한 욕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아들 녀석이 두 돌 무렵 친척에게서 얻어온 예쁜 빨강색 치마를 입혀 놓고 ‘아주 예쁘다’며 킬킬거리던 아내의 장난스런 모습이 떠올라 별소리 없이 그런 아내의 모습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긴 뭐, 어떠랴… 치마 한번 입는다고 달린 고추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나, 이거 내일 입고 갈래.”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얘기하는 것을 결코 두 눈 뜨고 보아주질 않는 아들 녀석이 어느새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녀석의 눈에는 옅은 하늘색 치마가 그저 아주 예쁜 하나의 옷으로 비치는 눈치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여기저기 닭아 빠진 것이 그리 예뻐 보이지가 않았지만… 하긴 그렇기 때문에(아주 예쁜 공주 치마가 아니라) 아내도 용기를 내어 한번 입혀볼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고 했지만…

다음날 아침, 막상 녀석을 업고 아파트 단지 곁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가니 ‘이거 좀 재미가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지내는 아이들 반응은 어떨까? 또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떨까? 온갖 상상을 하며 걸어 가다보니 어느새 내 얼굴에서도 장난기어린 웃음이 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얌전히 업혀가고 있던 녀석이 꽥, 하고 소리 지르기를…

“아빠, 좀 잘 업어! 치마 구겨지잖아?”
녀석은 오늘 치마입고 가는 것을 친구들에게 꽤나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아준 것은 40대 중반으로 들어선 원장이었다. 일반 어린이집보다는 그래도 편견이 덜 한 공동육아 원장(여자)이었음에도 그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설 때에야 비로소 “오늘은 예쁜 옷을 입고 왔네?”하고 아들 녀석에게 인사를 건넸으니까… 녀석은 후다닥 들어서질 않고, 부끄럼을 타는지 아빠 뒤에 숨어서 몸을 배배꼬고 있고… 나는 얼른 녀석을 손으로 밀어 넣고나서 나 몰라라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나왔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서 전해들은 어린이집에서의 사건은 불행히도 내 기대 이하였다. 무슨 큰 사건이라도 벌어졌으리라고 하루 종일 기대하고 있었건만… 원래부터 부끄럼이 좀 많은 녀석은 자기가 소속된 방 앞에 가서도 얼른 들어가지 않고, 몸만 배배꼬고 있었단다.(이것이 치마를 입고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그저 제가 보기에 아주 예쁜 옷을 입고 왔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다 그 방 담당 선생이 큰 소리로 “어? 민수(가명), 예쁜 옷을 입고 왔네”하고 한마디를 건네자 비로소 후다닥 방안으로 들어서며, 어제 그 치마를 누구에게서 어떻게 얻어 입었는지 마구마구 자랑을 하더란다. 그런데 그 방 또래 친구들의 반응은........ 그저 관심 없음이었단다. 남자애들이든, 여자애들이든지간에 그저 멍하니 “쟤 왜 저래?”하는 표정들… 조금 관심을 보인 것은 아들 녀석보다 나이가 두세 살 많은 윗방의 형, 누나들. 그것도 그저 “어, 민수 오늘 치마 입고 왔네”하는 정도의 반응. 이상하다거나, 아주 웃긴다거나 하는 반응이 아니라… 아니, 뭐가 이렇게 싱겁지?

일주일 후 제 외삼촌(처남) 집에 갈 때 녀석은 바로 그 치마를 입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날 하루 입고 빨아놓은 치마를 다시 꺼내 입으면서 녀석은 신이 나 다시 싱글벙글거리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지나는 사람들은 “아니, 얘가 남자애요, 여자애요”하고 자꾸만 물어오고… ‘아니, 보면 몰라 이렇게 잘 생긴 애가 당연히 남자애지…“하며 입 꾹 다물고 있고.

“어머, 민수 치마 입었네? 얼레꼴레리, 얼레꼴레리, 누구누구는 치마 입었데, 치마 입었데…” 처남댁이 아들 녀석을 보고 한 첫마디는 바로 예의 그것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굴하지 않고 또래의 제 사촌형과 아주 잘 어울려 놀았다. 치마 입고… 그런데 그 이후 녀석은 다시는 치마를 입고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처남댁이 한 말이 그래도 가슴에 남아버린 것인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앞으로도 잘 알 수가 없겠지…

그런데 아이들을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처음부터 갈라놓는 것은 아이(자연)들일까? 아니면 어른(사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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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 2004-11-19 16:31:22
노팬티는 너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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