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 ‘공급자 위주’ 접근 전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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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 ‘공급자 위주’ 접근 전환돼야
  • 임상혁
  • 승인 2010.02.2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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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18) 산업안전보건

OECD국가라 하긴 창피한 ‘산업재해 지표’

우리나라는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해 안전 보건의 법적 기반은 일찍 갖추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공적 사업이 시행된 것은 문송면 군 사망과 원진 레이온 사건,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한 1988년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년의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안전 보건 사업은 공적인 기능을 다 했을까? 우리나라의 산업 재해에 의한 재해율은 1988년 2.48%에서 1997년 0.88%로 감소됐으나 1998년 이후 지금까지는 0.7% 이상의 재해율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를 시기적으로 구분하면 안전 보건 20년의 역사에서 전반기 10년은 통계 수치상의 일정한 진전은 있었으나, 그 후 현재까지의 10년은 재해율의 변화가 없고 다른 나라와의 재해율과 비교를 해도 몇 배 높은 수치이며 현재 우리 사회의 다른 보건학적 문제점들과 비교를 하여서도 해결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 재해에 의한 사망자 수도 최근 10년간 2,500명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며 사망 만인율은 2007년 2.10%로 다른 OECD 가입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몇 배 높은 수치이다.

산업 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2008년도의 경제적 손실액은 17조 1천억 원 규모로 GDP의 1.67%를 차지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2008년 규모별 산업 재해 현황을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자 수가 전체의 78.3%를 차지하고 있어 중소 규모 사업장이 산업 재해에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망자 수에서도 50인 미만 사업장이 1,426명으로 전체의 58.9%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자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산업 재해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증가하고 있다.

노동부 안전보건의 문제점은?

최근 10년 동안 노동자의 안전 보건 지표를 살펴보면, 산업 재해율과 사망률은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으나 개선되지 않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증가되고 있으며 안전 보건의 취약 계층인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자 수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안전 보건 정책과 매년 화려하게 발표되는 안전 보건의 공적 사업이 성공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물론 정부의 안전 보건 정책과 사업은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국고 지원 사업, 클린 3D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많은 노동자가 건강 검진을 받고 있으며 사업장에서는 작업 환경 측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사 동수의 안전보건위원회가 구성돼 사업장 내 안전 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업은 산업 재해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면 노동부의 안전 보건 정책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어서 산업 재해를 예방하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에서 그간의 산업 보건 사업의 집행은 서비스 수요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우리나라와 같은 산업 보건 관리 체계에서는 정부, 서비스 기관(전문가), 사업주, 그리고 노조로 대표되는 노동자가 4개 주체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주체는 노동자, 사업주, 정부, 그리고 서비스 기관 순이다(선진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주는 일정 부분 마지못해 참여하고 있는 형편이며, 노조 내지 노동자의 소비자로서의 역할은 매우 미미한 형편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은 공급자 위주의 접근 방법은 한국에서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즉 서비스 공급을 할 수 있는 인력의 절대 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교육이나 직종 훈련을 통한 인력의 개발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기여했으며, 경제 발전에 역점을 두다 보니 노조의 서비스 소비자로서의 입장 강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기여했다.

또한 소위 산업 보건 전문가들이 서비스 제공자로서 참여하고 있어 그들의 의견은 소비자들의 의견보다 더 존중될 가치가 있다는 평가도 이에 기여했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업 안전 보건 체제는 서비스 기관에 의하여 운영되게 됐으며 건강 진단과 작업 환경 측정이 가장 대표적인 국가 안전 보건 사업이 됐다.

주요한 유해 요인의 통제 기전은 문제를 안고 있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사람을 바꾸는 것이 됐고, 산업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하는 것에 치중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안전 보건 사업은 검진과 측정 비용으로 상당한 재정을 투여하지만 효율 및 효과적인 측면에서 성과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업주·노동자 모두 관심 떨어져

현재 우리의 상황을 보면 안전 보건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사업주는 이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떨어지고 그에 대한 요구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의 각종 의무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고 단지 정부의 규제가 있으면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수준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전 보건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관심도가 매우 떨어지고 그에 대한 요구도 거의 없다. 안전 보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인력, 조직 또한 거의 없다.

정부와 서비스 기관만이 주도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며 안전 보건 정책을 실천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안전 보건 정책의 실천을 수행함에 있어서 정부나 서비스 기관 모두 현장의 요구를 받아서 협의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는 과정을 밟지는 않는다.

서비스 기관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으며, 정부는 평가를 하고 있으나 문제 인식 등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안전 보건 정책과 사업은 사업장에서 자력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인식을 갖추도록 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을 지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노동자와 사업주의 상황은 기본적 문제 인식과 요구가 없는 상황에 계속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일방적이게 되며 사업장 차원의 안전 보건 정착 및 지속적 개선이라는 목표의 달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전 보건 정책은 규제와 지원의 효과적 접목에 의한 성공적 개선이라는 측면과 함께, 노동자 및 관리자, 사업주의 문제 인식 심화 및 안전 보건 요구의 증대라는 측면이 반드시 고려돼야 하는 것이다.

사업주 강제 위한 ‘법 정비’ 필요

안전 보건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돼야 할 것인가? 이는 우리의 미래 활동 방향과도 일치한다.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소규모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산업 재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안전 보건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더 열악한 상태에 있는 노동자 보호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진정한 노동자 건강권의 실현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의 참여 체계 역시 확대돼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위험 작업을 중지할 권리 등이 보장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러한 권리 보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안전 보건의 책임 주체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산재 발생률은 감소했지만 산재 사망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 많은 노동자가 산업 재해로 사망했음에도 사업주가 구속됐다거나 징역을 살았다는 보고는 없어 처벌로 인한 예방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안전 보건 관련 법·규정은 전적으로 사업주를 대상으로 강제되는 것이므로 사업주의 책임을 확보할 수 있는 법,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산재보험 제도 역시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적지 않은 노동자(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이 보호되지 못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산재를 당하면 직장을 잃게 되는 제도로 전락됐다.

치료를 마친 후 원직장으로 복귀하는 비율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 유연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이 사회의 지배적 흐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우려되는 바는 이명박 정부가 구사하는 안전 보건 제도의 전면적인 규제 완화 상황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규제’란 무엇인지, 안전 보건 분야에서 규제는 어떠한 식으로 만들어졌는지의 논리는 실적 앞에 사라졌다.

과거 경영계에서 요구해 왔던 규제 완화 내용이 대부분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현 정권에서의 노동자 건강권은 보호되지 못하고 퇴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케 한다. 이에 대한 강력한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 하겠다.

임상혁(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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