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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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
  • 김철신
  • 승인 2004.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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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 멋진 제목에 눈이 가서 들어올린 책은 올해의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다. 우리나라에는 문학상이 무지하게 많단다. 이름없는 지역 문학상부터 매년 그 작품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대형출판사와 신문사의 문학상까지...

올해는 큰 문학상들을 김영하가 휩쓸었다고 한다. '검은꽃'으로 동인문학상, '보물선'으로 황순원문학상, 그리고 또 무슨 문학상.... 무슨 PGA 골프선수도 아니고 문학상 수상 상금으로만 1억원 가량 된다고 한다.

가히 전성기인가 보다. 아닌게 아니라 김영하는 정말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는 소설을 활발하게 쓰는 멋진 작가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문체나 모두 쿨하다.

언제가는 수많은 이들이 거리를 달리기도 했던 곳... 그길 모퉁이의 커다란 통유리가 달린 까페, 오늘저녁 좋은 공연을 함께하기로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읽기에 손색없는 소설들이다.

그런데 이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 누구도 통유리에 앉아 한가하게 좋은 소설을 보고 있는 이를 비판하지 않지만, 그리고 이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뭔가 불편하고, 그 불편함을 넘어 아직 마음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불러내는 작은 역할을 이책은 해주는 것 같다.

생활기록부문 우수작 중 '노점상 아줌마의 일기'는 말그대로 일기다. 어묵을 파는 노점을 하는 아주머니가 장사하면서 겪은 속상한 이야기다. 4페이지의 글이다. 장사를 못하게끔 술주정하는 할아버지 앞에서 엉엉 울어버린 이야기. 누군가는 삶의 현장을 담은 멋진 소설로 만들어 내기도 하겠지만 이 아주머니는 서러웠고, 서글펐고, 밥도 안먹었고, 울기만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뿐이다.

또다른 수상작 '참 고마운 삶'은 귀농일기다. 인간다운 삶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찾아 귀농했겠지만 그의 일기에는 한적한 농촌의 삶대신 모내기를 위해 종종거리고, 밭의 돌을 뽑아내느라 온몸을 던지고, 논물을 모으기위해 속태우는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우리가 언제나 잊고마는 이야기, 생명을 키워내는데 들어가는 수많은 땀과 눈물을 그리는 이야기가 아름답다.

소설부문의 당선작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

한때 운동을 했던 주인공은 약간의 방황을 거쳐 구멍가게를 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의 가게에 민주노동당의 선거플랭카드를 걸게 되면서 일상이 달라지고, 자신도 달라진다. 플랭카드를 보고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일하게 되고, 진보를 위해 내달렸던 시절을 기억하고, 망설이고, 일어나고, 현장으로 달려나가 함께하는 동지들을 보고, 희망을 노래한다.

심사평에 이소설은 도식적인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 무척이나 도식적이다. 감성적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가슴 아픈일에도 무감각하게 대응하는 쿨한 우리들에게 갑자기 떨쳐 일어나고, 동지들 본다고 없던 희망이 샘솟는 일은 도식적인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도식적인 이야기는 유치하고 싫다. 그러나 요즘 나는 도식적인 인간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슬프면 울고, 화나면 소리치고, 분노하면 일어나고, 싸우면서 강해지는 사람...

우리의 삶도, 사회도 한없이 세련 되어졌지만, 한 노동자를 열사로 만들었던 그 처절한 도식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니... 세련된 내 모습은 다만 현실에 대한 외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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