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1]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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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1]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은?
  • 전민용
  • 승인 2010.03.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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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얼마전 지인(밝혀도 되나? 조영식교수님)으로부터 이 책을 권유 받았다. 오랜만에 전에 같이 일하던 분들과 친목모임을 가졌다가 2차 후 몇 명이 남아 3차를 간 자리에서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이라는데 당장 그 다음날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했고 읽어 나갔다. 재미있어 술술 나가는 책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끼리끼리 모임을 만들고 2차에 3차까지 몸이 피곤한 것을 불사하고 동료의식을 다져 나갈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 유전자’ 등 몇몇 유명한 책들의 계보를 잇는 진화심리학에 관한 책이다.

▲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저. 사이언스북스
왜 남자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의 유혹에 약한지, 왜 사람들은 카페에 들어가면 창가 구석진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하는지, 가을엔 왜 그렇게 나무들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치장하는지, 털은 왜 퇴화했는지, 도덕은 본능인지 아닌지, 음악은, 그러면 종교는 뭐 이런 질문들에 대한 진화심리학적인 해석과 설명이 들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인류는 약 700만년 전에 침팬지 가계와 갈라져서 거의 95% 이상의 시간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왔고, 여기에 적응된 심리적 기제가 아직도 결정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약 1만 1천년 전 시작된 농경사회나 2백년 된 산업사회는 우리 인류의 심리 구조에 유의미한 진화를 일으킬 수 없는 상대적으로 너무 짧은 세월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심리는 오래되고 낡은 연장들로 채워진 연장통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연장통’ 처음엔 재미있고 그럴듯한 책 제목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정확하게 책 내용을 반영하려면 ‘오래된 연장들을 담은 새로 산 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대와 몸은 새 것인데, 마음 속 심리 기제는 수백만 년 묵은 낡은 것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읽은 티모시 윌슨의 ‘나는 내가 낯설다’ 라는 책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심리 기제를 설명하는 책이었는데 여기서 강조된 ‘적응 무의식’이라는 것이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융이 말하는 인간 무의식 내부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집단 무의식’ 역시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어느 정도 연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부제인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를 생각해 본다면 아프리카 사바나초원에 적응된 심리만을 본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남성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하는 심리적 본성이 있지만 어떤 여자를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보는가는 사회 문화적 요소가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도덕에 대한 본성이 있다고 보더라도 어떤 도덕인가 하는 점 역시 사회문화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가설들이 많고, 입증되었다고 하는 것들도 결국 통계적으로 더 유의미하다는 것들이 많고, 많은 부분들에서 경쟁하는 다른 설명들이 가능한 것을 보면 과학적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향후의 모든 심리학은 진화심리학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저자의 희망 섞인 호언장담의 태도- 즉 모든 것을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하고자 고군분투하는-를 버리고 연구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명히 할 때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기여와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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