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과거사 청산은 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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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과거사 청산은 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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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혁입법의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입법과정이 불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왜곡되고, 왜곡을 통하여 현실에 대한 반성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반성을 하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할 부끄러운 과거사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세대도 역시 후대에 부끄러운 과거를 만들었다는 청산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반드시 새로운 미래를 위해 뛰어넘어야할 과제로 과거사 청산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과거사 청산을 입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추진하자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과제를 후세 역사가들에게 맡기자고 한다. 나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과제를 후세 역사가들에게 맡기자는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부끄러운 과거를 피해가려는 것인가에 대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과거사 청산은 결코 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현재의 역사를 후세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청산할 수 있는가?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웠던 과거로 정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사의 청산에는 일본제국주의와 이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했던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개인사, 가족사, 또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정의로운 출발점으로 만들자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결코 후세로 넘길 수 없는 과제이다. 역사가들이 보편적으로 정리해야할 과제가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우리가 미래를 위해 오늘날 바로 잡아야할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

과거사 청산이 결코 학자들이 몫이 아니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학계에도 청산해야할 부끄러운 과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근대 교육제도인 대학이 설립되고 또 근대학문이 들어왔기 때문에 제도와 학문자체에도 식민지의 부끄러운 유산이 아카데미즘이라는 미명하에 현재까지 우리의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부끄러운 우리의 학문현실이다. 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과거사 청산에는 이러한 부끄러운 과거의 학문의 흔적을 깨끗하게 하자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80년대까지 식민지 시대의 사회주의 독립운동이나 예술 분야에서 사회주의 계열에 관한 연구가 권력에 의해 얼마나 많은 감시와 탄압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것이 분명해진다. 학문도 이제 좌, 우의 날개로 동시에 새롭게 날아야한다. 이를 위해서 과거사 청산은 필수 과제인데, 이러한 과제를 현재의 왜곡된 학문의 영향이 남아있을 후세의 학자들에게 남겨줄 수는 없다. 후세의 학자들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의 부끄러운 유물을 다루지 않고, 자유로운 학문연구에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과거사 청산이 학자들의 몫이 아님이 분명해진다. 서울대 미대에 김민수라는 교수가 있다. 어느날 재임용에서 탈락하여 오랜 법정공방을 거쳐 복직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에서는 그를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재임용 탈락의 사유가 연구실적 부족이라고 하는데, 이는 결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는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많은 연구업적을 쌓았으며 양적인 면에서 오히려 넘친다. 하지만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유는 한 사람의 친일행위에 대한 사실을 학문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바로 서울대 미대의 원로중의 원로이며,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들도 그의 학문적인 영향권 안에 있다. 자신들의 스승을 친일행위자로 밝힌 것이 불경죄에 해당하여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법원의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복직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된다.

학문의 전당 중의 전당인 서울대학교에서 현재에도 이러한 부끄러운 과거에 얽매어서 부끄러운 현재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과거사 청산을 후세의 학자들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학문의 전당이 과거사 청산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서울대학교가 김민수 교수를 복직시키면 그래도 과거사 청산을 후세 학자의 몫으로 돌리자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현재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줄 모르는 학문세계가 어떻게 과거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김민수 교수의 경우가 이를 너무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 과거사 청산은 항상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제인 것이다. 그래야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남에게 미루어서는 결코 새로운 사회나 새로운 학문도 창조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영종 (참여연대협동처장,성공회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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