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박정희체계'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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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박정희체계'의 덫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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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처한 이 나라의 자연이 참여정부의 섣부른 성장정책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파괴되고 말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정부는 이미 2003년 4월 말에 전국의 수많은 환경운동가들로부터 '환맹정부', 곧 '환경 전혀 돌보지 않는 정부'라는 매서운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바로잡지 않다가 마침내 정면충돌의 상황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1970-80년대의 20년 동안에 엄청난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예컨대 일인당 국민총생산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200달러를 조금 넘는 상태에서 무려 7000달러를 넘는 상태로 급변했다. 이런 고도성장이 이루어졌기에 프로야구 발족, 칼라텔레비전 방송, 컴퓨터 보급, 서태지와 신세대 등장 등의 새로운 문화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고도성장의 바탕 위에서 정치의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도 높아졌고, 그 결과 1987년의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나서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박정희이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고도성장을 이끌고 나간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특정한 사회체계를 만들었다. 그것을 나는 '박정희체계'라고 부른다. 경제적으로 보아서 이 체계는 무엇보다 먼저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박정희는 군사적 방식으로 이중의 착취와 이중의 집중을 강행했다.

'이중의 착취'란 자연착취와 노동착취를 뜻한다. 고도성장은 극심한 노동의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전태일의 항거는 참담한 노동의 착취가 빚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고도성장의 20년 동안 금수강산은 '공해강산'이 되어 버렸다. 개발의 이름으로 자연을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파괴한 결과이다. 자연을 마구 파괴했기 때문에 자연과 밀착된 전통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밀려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중의 집중이란 서울집중과 재벌집중을 뜻한다. 공업화는 단순히 산업적 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공간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박정희는 거점성장방식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지역불균등발전정책에 입각해서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했다. 오늘날의 망국적 서울집중은 이러한 박정희체계의 역사적 산물이다. 또한 박정희는 몇몇 재벌을 중심으로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재벌에게 온갖 특혜를 제공했다. 물론 특혜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 댓가로 재벌은 정권에게 엄청난 정치자금을 바쳐야 했다. 오늘날의 지독한 정경유착도 역시 박정희체계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는 민주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민주화란 무엇인가?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자부하는 참여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민화도, 정권교체도, 참여민주주의도 민주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민주화는 정치의 민주화를 넘어서 경제의 민주화와 생활의 민주화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대단히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아직 민주화 이후에 이르지 못했으며, 여전히 민주화하는 중에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체계의 개혁이라는 총체적 변화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민주화 이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박정희는 죽었어도 그가 만든 사회체계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성장정책이 이런 사실을 생생히 증명해준다. 물론 여기에 약간의 내적인 차이는 있다. 예컨대 재벌집중과 서울집중, 그리고 노동착취에 대해서는 해결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모순적 정책을 펴서 정권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대표적인 예가 신행정수도건설과 수도권규제완화라는 모순적 정책을 동시에 펼친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박정희체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노골적으로 강화되는 자연착취정책이다.

사실 자연착취정책은 박정희체계의 초석이다. 그것은 토건업의 집중적 육성과 무조건적인 급속한 공업화로 나타났다. 금수강산이 공해강산이 되고 파괴강산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이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는가? 오늘날 민주화는 생태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그것은 자연을 본래의 모습대로 되살려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활민주주의를 뜻한다. 또한 그것은 지역을 독자적인 삶의 단위로 만드는 지역민주주의를 뜻한다. 불행하게도 참여정부는 참여민주주의를 내세워서 이러한 올바른 민주화의 요구에 귀를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것을 억압하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새만금간척사업, 청성산 고속철도 터널, 북한산 관통 고속도로, 한탄강댐, 신행정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수도권 규제완화, 대대적인 골프장 증설 등등.

박정희체계야말로 '만달러의 덫'이다. 자연착취정책으로는 경제의 선진화를 이룰 수가 없으며, 따라서 '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선진국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파괴의 구조에서 벗어나 보존과 복원의 구조를 만들어야 비로소 '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나게 된다. 단기적 고용증대라는 근시안적 정치목표에 현혹되어 자연착취정책을 편다면, 그 정부는 언제까지고 박정희체계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박정희체계를 넘어서야 우리의 미래가 열린다.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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