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의 페루여행기] 리마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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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페루여행기] 리마국립박물관
  • 박종순
  • 승인 200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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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무 문명의 어도비벽 재현
리마에는 박물관들이 아주 많이 있다. 대략 책에 소개된 곳만도 16개 이상이다. 그중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네 곳을 찾아갔다. 가장 먼저 찾아 본 곳이 리마 국립박물관이었는데 이곳은 다른 국립박물관 같지 않게 아주 큰 규모이거나, 또 중요 유물이 다 모여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페루의 고고학적 유산인 중요 유물들을 몇 개씩 아주 상징적으로 모아 놓은 것이 특징이었고, 또 주요 유적지를 재현해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사실 페루여행 준비 전에 잉카에 대한 내 상식은 잉카가 아주 오래된 문명이고 꽤나 오랫동안 그 지역을 지배한 큰 문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잉카 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페루여행을 준비하며 여러 책들도 보고 하면서 잉카 전 역사에 대해 공부해 봤지만 지역문화 종류가 아주 많고 연대기적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구분이 잘 되지가 않았다.

그리고 처음 국립박물관에 갔을 때도 차빈이네, 띠와나꾸, 와리, 모체, 나스까 등 프레잉카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직접 그 지역을 돌아보고 여러 토기들의 모양도 비교해 보고 하면서, 그리고 다시 책도 보면서 그나마 대략적인 윤곽이 잡혀갔다.

▲ 빠라까스 문명의 직조물
여기서 간단히 페루지역의 역사를 설명해 보면 가장 유명한 잉카는 1476년경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조선 9대왕인 성종 때부터 형성된 문명이고, 백년도 지나지 못한 1572년 스페인에게 망해 식민시대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이전에 그 땅에는 크게 두 번 정도의 통일시대가 있었다. 처음이 차빈문명인데 대략 BC 850에서 BC100정도까지이다. 보통 Early Horizon이라 한다. 이때 차빈은 주로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명이다. 해안지대엔 빠라까스 문명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통일은 600년에서 1100년 정도 사이에 와리 왕국이 이뤄냈다(Middle Horizon). 차빈과 와리왕국 사이에는 지역 발전기(Early Intermediate Period)라 해서 각 지역별로 북부 해안에는 모체, 중부해안에는 리마,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는 빠라까스 문명을 뒤이은 나스까 문명, 산악지방에는 레꾸앙, 와르빠 그리고 띠띠까까쪽으로는 띠와나꾸 문명들이 존재했다.

또 와리 왕국 쇠퇴기에서 잉카 통일 전까지를 지역 국가 시대(Late Intermediate Period)라 하는데, 이 때도 역시 지역별로 북부해안에는 치무, 중부해안에는 찬까이, 남부해안에는 이까-친차 중부 산악엔 완까,찬까 그리고 띠띠까까 주변엔 아이마라 왕국들이 있었다.

▲ 차빈 초기 최고신 란손(Lanzon)
역시 적어놓고 보니 다시 복잡해졌는데 아무튼 이 중에서 차빈은 석조상, 모체는 토기, 빠라까스는 직물, 나스까는 토기와 지상그림 등이 그 문명별로 아주 발달한 대표적인 특징들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이들 문명 지역을 대부분 거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모체와 치무의 북부해안 지방과 와리 왕국의 중심지인 중부 산악지방을 가지는 못했다.

각 문명들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고 국립박물관에서 본 주요 유물들을 보겠다.

차빈문명의 신상이 인상적인데 원래는 차빈문화의 근원지인 차빈 데 완따르(Chavin de Huantar)에 있었던 신상들을 재현해 놓은 것들이다. 란손(Lanzon - 거대한 창이라는 뜻)이라 이름 붙은 차빈 초기의 최고신으로 추정되는 신상은 있던 모양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좁은 돌벽 틈에 전시되어져 있었다.

또 원래 신전 아래로 수로가 나 있어 물이 흐를 때는 실내가 울리며 웅장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역시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해선지 가끔 웅하는 신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마치 큰 자루 빠진 창끝이나 부엌칼 모양이다.

▲ 차빈 후기 최고신 라이몬디 돌판(Raimondi Stone)
그리고 차빈의 후기 최고신으로 추정되는 라이몬디(Raimondi) 돌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 고고인류학박물관에서 본 것이 진품이라 한다.  차빈신전이 스페인 침략에 의해 완전히 파헤쳐지고 약탈당한 뒤 어느 농부가 자기 집 식탁으로 쓰던 것을 1873년 이탈리아인 라이몬디가 찾아내 리마로 옮긴 유물로 전체적인 모습은 땅딸만한 사람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고, 손과 발은 날카로운 새발톱을 가지고 있으며 엄청 큰 머리 장식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차빈문화의 신상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갖는 재규어나 퓨마의 고양이과 모습이고 여기에 콘돌과 뱀, 사람의 모습들이 섞여 보인다. 각기 그 조각된 모습마다 그들이 바라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 하나의 형상으로 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또한 시판 영주의 무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는데, 진품은 모두 독일에서 4년간 재구성과 처리를 거쳐 현재 람바예께에 있는 브뤠닝 박물관 지하의 특별전시실에 전시되고 있단다.

모체 문명의 유적으로 페루 고고학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굴당하지 않고 학자들에 의해 처음부터 완벽하게 발견된 보기 드문 유적으로 4m 깊이의 바닥에 5개의 관이 놓여져 있는데, 가운데 큰 것이 시판 영주의 것이고 세 명의 부인 또는 첩과 한명의 수행원으로 여겨지는 남자의 것이며, 그 외에 어린아이 유골과 무기와 방패를 들고 무덤을 지키는 이의 유골도 있다. 

▲ 시판 영주의 무덤(재현)
맨 처음 페루에서 찾아간 곳으로 앞으로 보게 될 여러 문명에 대한 대략적인 느낌을 받기에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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