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5]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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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5]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 전민용
  • 승인 2010.04.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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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저, 리더스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남자화장실 소변기에는 중앙 부분에 검정색 파리가 그려져 있다. 남자들은 소변을 조준하는 방향에 신경을 쓰지 못할 때도 많아 변기 주변이 더러워지기 쉽다. 그런데 이 파리 한 마리가 남자들의 집중력을 자극하여 밖으로 튀는 소변을 80%나 감소시켰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구내 식당에서 아이들이 음식을 식판에 담을 때 음식을 놓는 위치에 따라 특정 음식의 소비량을 25%나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렇듯 사소하고 작은 변화가 사람들의 행동방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영향주기를 넛지(nudge)라고 한다. 넛지는 “(특히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 찌르기”라는 뜻이고, 정확히 번역하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이다. 선택의 자유를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좋은 쪽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 '넛지' -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저, 리더스북
물론 보상(인센티브)을 주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보상 뿐 아니라 넛지에도 사람들이 잘 반응한다. 인센티브와 넛지를 잘 활용한다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직장이나 가정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넛지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 행동의 근거인 사고하는 방식에 대해 알아야한다.

뇌과학의 성과를 토대로 보면 인간의 사고 체계는 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자동시스템’과 합리적이고 심원한 ‘숙고시스템’으로 이원화 되어 있다. 자동시스템은 통제할 수 없고, 신속하고, 무의식적이다. 숙고시스템은 통제할 수 있고, 느리고, 의식적이고,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모국어를 말할 때는 자동시스템을 사용하지만 외국어를 사용할 때는 숙고시스템을 사용한다.(따라서 진정한 바이링구얼은 두 언어를 모두 자동시스템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일상적인 행동은 자동시스템에 의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매우 효율적이다. 진화의 산물이다. 하지만 앞에 놓여있는 과자 바구니에 자꾸 손이 가는 것도,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면 먹는 양이 훨씬 느는 것도 다 자동시스템에 의해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비만에 대한 걱정은 숙고시스템의 영역이고 다이어트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도 모르게 건강 음식이 눈 앞에 배열되어 있으면 그 음식을 식판에 담게 되고, 소변기에 파리가 그려 있으면 조준한다. 넛지는 이렇듯 자동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서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수술 후에 100명 중 10명이 죽었다고 하는 것보다 100명 중 90명이 살았다고 의사가 설명하면 수술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에너지 절약을 하면 연간 350달러를 절약할 것이라는 말보다 에너지 절약을 안하면 연간 350달러를 잃을 것이라고 캠페인하는 것이 훨씬 강력한 넛지가 된다. 똑같은 뜻이지만 자동시스템은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만, 흡연, 음주, 잘못된 습관 등에서 자기통제를 잘하고 싶으면 한 인간이 이렇게 半자율적인 두 개의 자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미래와 장기적인 성공을 생각하는 숙고시스템에 기반한 ‘계획하는 자아’와 유혹에 약하고 근시안적인 자동시스템에 기반한 ‘행동하는 자아’이다. 이 책에는 계획하는 자아가 행동하는 자아를 통제하는 다양한 전략들이 소개되어 있다.

투표율을 올리는 넛지, 흡연율을 줄이는 넛지, 탈세율을 줄이는 넛지 등 다양한 사회적 넛지들도 소개된다. 이런 제도를 설계하거나 대안을 생각하는 선택설계자들에게는 좋은 보고가 될 것이다.

책의 뒷 부분에는 넛지에 대한 반대 의견들도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는 넛지를 악한 의도를 가지고 이용하는 나쁜 넛지들도 있다. 부드러운 개입주의가 더 강력한 개입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우려도 있다. 반대로 좋은 길로 가는데 법이나 규칙으로 규율하면 되지 왜 힘들게 넛지를 써야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저자들은 넛지가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초당파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차원만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영역이 함께 하는 더 나은 거버넌스를 지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결합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있다. 넛지를 좋은 쪽으로 잘 활용한다면 이런 모색에도 좋은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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