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논란! 참을 수 없는 논의의 가벼움
상태바
학제논란! 참을 수 없는 논의의 가벼움
  • 박덕영
  • 승인 2010.04.12 14:29
  • 댓글 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의·치의학 교육제도 개선방안 논의를 바라보며…

필자는 2002년 3월 건치신문에 “전문대학원 제도, 과연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논설과 모 치과계 잡지 2003년 1월호에 “전문대학원, 상식과 원칙은 무엇인가?”라는 투고를 한 바 있다.

의치학제도 개편논의가 다시 불을 지피고 있는 지금, 7-8년이 지난 글을 읽어보면서 논의가 수렁에 빠져있는 듯 하여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교육제도는 매년 이랬다 저랬다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아니며, 한번 개선하면 그 여파가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이에 작금의 제도개선 논의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논의의 수준이 향상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투고한다.

 

학제 개선 방안 ‘11표로 결정’(?)

첫째로, 논의의 주체가 너무 독점적으로 한정되어 있음을 우려한다.

2009년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 현장에서 모 대의원께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치과의사 배출연령을 증가시키고 등록금을 높여 치과계에 피해를 입힌 교수들은 반성해야 한다”라고 질책하여 좌중이 소란해진 바 있다.

질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의원제도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제기되는 것은 교육제도의 개선이 치전원이나 치과대학만 관련 있는 사안이 아니라 전체 치과계와 관련된 일임을 방증하는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는 제도개선과 관련된 논의는 ‘치전원장·치대학장 협의회’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록 이들이 각 학교의 교수들을 대표하는 직책을 갖고 임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정보와 진행이 모든 대학의 모든 교수들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런 교육제도 문제는 각 학교에서 의견을 모아 만나는 수준이 아니라 전체 치과대학 교수 수준에서 열린 논의를 통해 제도개선의 필요성과 정작용 및 부작용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

아무리 대표자들이 모였다 해도 11명의 의견으로 개선안을 확정하고 추진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11개 기관 중 8개가 치전원이고 3개가 치과대학인 구조에서 11표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치전원·치대 교수들 수 백 명의 지혜를 모아 검토하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일이다.

치과계는 둘째 치고, 치의학 교육기관 소속원에게 조차 열려있는 공청회 한번 없이 제도개선안을 고민하고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둘째로, 의사결정 절차의 비민주성이다. 최소한 전문대학원이나 대학 내에서 제도개선과 같은 심대한 결정에는 충분한 찬반논란이 있은 후 신중하게 직접 비밀투표에 의하여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후 치전원으로 전환한 대학 모두가 이러한 민주적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니다. 교수 정원을 늘일 수 있다는 명분,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명분 등이 높이 추켜올려졌고, 걱정의 목소리는 압박을 받았다.

부끄러울 이야기이지만 윗 어른의 말씀에 거역하면 무례하다는 식의 보수적 교수문화가 강한 학교에서는 특히 그러하였다.

필자가 2000년대 초반에 투고했던 글에 대해 당시 치전원 전환을 추진하던 학교의 원로 교수님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하다.

그 압박이 필자의 논리에 대한 압박이었다면 경건히 받아들였을 것이나 나이를 따지고 구체적인 이유 없이 단지 경솔하다는 질책이나 무례하다 식의 비논리적 차원의 압박이었으니 당해 학교의 교수님들은 오죽하였을까.

치전원장이나 학장이라 해도 제도개선의 독단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치전원의 6년제 전환 논의는 ‘넌센스’

셋째로 전문가로서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다.

과연 교수를 더 뽑기 위해서, 재정을 더 확충하기 위해서 제도개선을 하여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최소한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지방 국립대학교 치과대학이 수 십 년간 고통받아 온 열악한 현황을 잘 알고 있다.

한 교실에 교수가 단 한 명밖에 없어 장기 해외파견이라도 나갈 때에는 타 치과대학 교수님께 강의를 부탁해야 했고, 교수정원을 늘이고자 해도 늘 의과대학에 밀려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던 고역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 지방대학교에 냉정한 양심을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자인은 하여야 한다. 그것을 자인하지 않는 이상 교과부가 내세운 목표를 인정해 전환한 것이라는 논리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교과부의 주장처럼 치의학 연구인력의 획기적 확충과 치과의사 자질 향상에 동의하여 치전원으로의 제도개선에 나섰다면 현재 고교생을 뽑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나서는 명분은 무엇인가?

특히, 치전원제도 도입의 가장 많은 특혜를 본 학교가 가장 앞서서 6년제 전환을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넌센스가 아닌가.

아무리 대한민국의 세상이치가 그렇다 한들 속칭 ‘일단 먹고 보자’ 식의 문화가 치과계·치의학계에도 횡행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바와 다름없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식으로 처신해야 옳다는 잘못된 교훈을 주는 일이 아닌가.

적어도 제도개선을 논의하려면 앞장섰던 학교들이 스스로 무엇에 오류를 범하였는지를 치과계 내에 공표하고 반성한 후 논의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류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정글의 문화가 치과계의 문화임을 확인하는 바에 다름없을 것이다.

재개선의 필요성부터 ‘증명’해야

넷째로, 논리주장의 수순에 관한 문제이다.

치전원 교수님들이 치전원제도에 대해서 불만이란 소문은 자주 듣고 있었다. 불만의 여러가지 이유도 구설로 전해진다. 치과계의 우려도 드높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제도의 재개선을 논의하려면 과연 치전원생들은 교수들의 불만이나 치과계의 우려대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증명의 노력보다는 증명이 결여된 주장의 노력만이 횡행할 뿐이다.

최근 교과부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치전원생들이 기초교수 요원으로 남고자 하는 자의 비율이 높고, 고수입을 위해서 치과의사가 되고자 한 학생은 치과대학생이 더 많다.

교과부가 내건 치전원제도 도입의 의도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평가하기에는 졸업생이 배출된 지 채 수 년도 안되는 현재가 너무 이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사실이다.

만약 한시라도 빨리 제도를 되돌려야 한다면, 그 명분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함은 더더욱 분명한 일 아닌가? 대졸자를 뽑는 치전원제도의 폐해를 먼저 객관적으로 명확히 밝히고 제도개선을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개선방안! 치전원 중심으로 사고 말라!

다섯째로, 교과부의 무책임성과 형평에 대한 문제이다.

치전원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소수의 대학교에서 시범운영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전국을 통합 개선함이 옳다. 그러나 교과부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전국을 치전원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당근과 채찍 정책을 추진했다.

당근으로는 교수정원과 재정지원을 들 수 있고, 채찍으로는 치전원으로 전환하지 않는 대학은 BK21 사업이라고 하는 학술진흥을 위한 지원에 응모조차 못하게 차단한 것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치과대학으로 남은 3개 대학의 학술추진력은 극심한 타격을 입었으며, 그 상황 속에서 교육을 진흥하고 학술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악전고투하였다.

현재 치과대학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3개 대학은 치전원제도가 올바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대조군의 역할을 함으로써 치전원제도 추진을 위한 교과부의 정책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할 근거를 제시한 참여자라고 인식하여야 할 것이며 교과부의 정책을 거부한 괘씸한 존재이거나 치의학계의 발전에 딴죽을 건 존재처럼 인식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를 보면, 이러한 치과대학에 대한 고려보다는 치전원들에 대한 고려만이 부각되고 있다.

교과부를 차치하고 적어도 치과계 내에서만이라도, 현재의 논의가 치전원 주도로 “치전원이 고교생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고, 못 받게 되어도 치전원에 대한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쌓으니 좋다”라는 치전원 위주의 생각과, 한정된 파이를 더 많이 차지하고 치과대학을 소외시켜 두 번 죽이는 식의 사고가 아니기를, 전체 치과계 차원의 발전을 전제로 한 고민이기를 소망한다.

개인적 소견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치전원으로 전환함에 따른 당근을 더 이상 줄 자원도 없고 의지도 없는데 제도는 무조건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면, 치과계의 숙원인 치과의사 정원감축에 치전원으로 전환하는 치과대학은 제외하고 기존 치전원들만 정원감축을 시행하도록 조정함으로써 치과계의 이익과 치과대학이 감수한 고통의 명분을 살리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학제개선과 관련한 문제는 최소한 전체 치전원·치대 교수들의 관심과 논의의 마당에 올려져야 할 것이며, 나아가 전체 치과계의 의제로서 공개되고 토론돼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대로라면 슬그머니 학제가 7년제로 증가할 위험도 있으며 - 실제로 교과부는 2+4제도에서 학사를 주던 것을 6년만에 석사를 주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 전공의 제도에도 큰 여파를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국가구강보건정책에 다시 한번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고(이미 치전원제도로 공중보건의사 제도는 채 대비되지 않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치과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결정이 날 수도 있다.

이러한 중대한 논의가 더 이상 닫힌 논의체계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덕영(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전민용 2010-04-19 11:06:47
보통 보수적인 입장은 개인의 이익과 단기적인 이익을 진보적인 쪽은 공동체의 이익과 장기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 필요한 이익들이고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 이익들 사이에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토론을 할 때 자신들만이 지성적으로 우월하다는 자만과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과학적 방법을 수용하고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나누는 과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전민용 2010-04-19 10:41:46
하는데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실제 논의를 모아나가는데는 도움이 안될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박교수말처럼) 근거와 증거를 가지고 사회공동체에 이익이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는 것이 중심을 흐뜨리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요?

전민용 2010-04-19 10:39:25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셔서...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다만 목전의 이익이냐 미래의 이익이냐, 나만의 이익이냐 공동체만의 이익이냐, 나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같이 가느냐, 나의 이익은 있으나 공동체에게는 해가 되느냐. 이 중에 공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정도가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양심의 문제나 이익의 문제를 전면에 걸면 서로 감정적인 싸움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비판을

김철신 2010-04-15 14:23:12
양심의 문제를 지적한 기고자의 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모든 결정에 이해득실만을 생각하고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인력을 양성하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하여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앞장서서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근거도 없는 구차한 논리를 들이대며 그때그때 말을 바꿔가며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정말 그들의 최소한의 양심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합니다.

박덕영 2010-04-15 11:41:22
애초의 목적이 잘 달성되고 있는지에 대한 피드백이나 제도개선의 후유여파도 짚어내지 않은 채 달려가자는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지원금 더 챙겨달라고 설득하라고요? 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 말입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