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의 화폐·장례·사당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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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의 화폐·장례·사당투쟁
  • 송필경
  • 승인 2010.04.15 12: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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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3부 여성박물관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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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에는 호찌민과 관련한 3가지 중요한 투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화폐 투쟁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베트남이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 짧은 시간 동안 호찌민 화폐가 통용된 적이 있다. 남부 사람들은 호찌민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영상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호찌민 사진을 갖기 힘들었다. 남부 사람들이 호찌민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화폐밖에 없었다. 이 화폐를 집에다 보존하는 투쟁을 하였다. 호찌민 화폐를 가지고 있다가 발각이 되면 - 우리는 딱 상상하면 되겠지요 - 한국에서 김일성 사진을 가지고 다니다가 잡히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쉽게 생상할 수 있다.

▲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 모든 화폐에는 오직 호찌민 초상만이 있다.
그러나 호찌민 화폐를 끝까지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할머니는 화폐를 숨겨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액자로 만들어 집안에 걸어두었다. 경찰들이 집에 오면  이 할머니는 잡혀 고문도 당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러나 풀려나면 집에 가서 또 걸어놓고 했다. 이 할머니는 몇 십 년간 감옥을 살았다. 계속 이러니까 이 할머니를 가두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경찰이 벽에 걸지말고 그냥 갖고 계십시오 했다고 한다.

두 번째 투쟁은 장례 투쟁이었다.

▲ 삼년상을 치렀다는 아오자이
이것은 흰 아오자이와 까만 아오자이만 입고 삼년상을 치렀다는 여성분이 그 때 입었던 아오자이를 기증한 것이다. 내가 베트남에 있을 때 김일성이 사망했다. 여기서 베트남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호찌민 시에 있던 한인들이 그날 술을 먹으면서 종업원들에게 술잔을 돌리며 만세를 외쳤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김일성이 죽었다고 3일 동안 유흥업소를 철폐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검은 리본을 달고 공무원들은 까만 완장을 찼다. 유일하게 한국 사람만 축배를 들었다. 베트남 사람에게 매우 이해되기 힘들었고, 우리는 김일성이가 죽었는데 표정관리하기가 힘들었다.

호찌민이 사망하자 남베트남 전역에서 장례 투쟁이 일어났다. 이 투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감옥에서도 장례 투쟁을 하였는데 이 할머니만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고문을 받다가 다 돌아가셨다.

세 번째 투쟁은 사당 투쟁이다.

베트남에는 사당을 세우는 문화가 있다. 남부에서 호찌민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당 세우기 투쟁에 들어간다. 80년대 한국에서 열사 추모비를 세우고 지키기 위한 투쟁을 연상할 수 있다. 사당을 짓기도 힘들었지만 지키기는 더 힘들었다. 일단 사당을 지으면 마을 전체가 사당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당들이다.』

우리의 주인공 당 투이 쩜은 호찌민 사망 소식이 있은 1969년 9월 3일 일기의 내용을 온통 이렇게 채웠다.

 
“0시 47분, 호 큰아버님께서 우리와 영별하셨다.

큰아버님! 저희들이 큰아버님께서 못 이루신 사업과 소망인 ‘남부지역 해방과 조국의 자유와 독립 쟁취’를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가장 가슴 아픈 죽음이 우리에게 닥쳤다. 호 큰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파 심장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았다. 큰아버님, 하실 일이 아직 남아 있는데 왜 우리를 남겨두고 가셨나요? 통일도 아직 안 되었고, 남부 지역 동포는 아직 큰아버님을 영접할 기회도 없었는데, 민족과 큰아버님의 사업을 위해 베트남 민족의 피가 아직 흐르고 있어요. 조국의 반쪽이 화염에 싸여 있으나, 큰아버님은 저 세상에서도 분명 마음이 편치 못하실 테죠. 큰아버님을 생각하며 저희들은 우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큰아버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복수심으로 응고 됩니다.

저희들과 베트남민족, 세계 모든 무산 계급의 큰아버님께서는 결코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큰아버님의 명성과 사업은 만대에 살아 숨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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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0-04-16 11:54:50
호아저씨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공동체와 유사한 이런 집단주의가 무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생각의 기준을 위대한 누군가에게 맡긴채 행동만하면 편하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개인의 개성화와 사회의 진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질 숭배 못지않게 해악이 큰게 개인 숭배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주의사회로 가는 지름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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