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입 크게 벌리고 환히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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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입 크게 벌리고 환히 웃어요
  • 성태숙
  • 승인 2010.04.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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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소식]틔움과 키움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후기

 

치열이 고르지 못한 사람은 남들 앞에서 자신 있게 웃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내가 꼭 그렇다. 누런데다 틈새도 벌어지고, 앞니가 조금 깨지기도 해서 영 자신이 없어 언제나 손으로 가리고 조신하게 웃게 된다.

그런데 사십을 넘고 보니 상황은 심각해져서 이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꼴을 하고서 죽어도 치과에 가기 싫은 것은 아픈 게 싫고,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것도 자존심도 상하고, 돈도 얼마나 들까 무서운 이유 때문에 여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나처럼 인생을 망치지 않으려면 이도 잘 닦고, 반드시 정기적으로 치과에도 잘 다녀야 한다. 온 몸으로 터득한 일인지라 우리 지역아동센터 아이들도 건강한 치아를 소중히 잘 간직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남몰래 불태우고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의 사명감에 자꾸 금이 가는 일이 생긴다. 우선 아이들의 먹거리가 참으로 걱정이다.

가난한 아이에게는 가난한 보호자가 있기 마련인데, 이 보호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의 식생활을 소홀하게 대하기가 쉽다. 아침밥을 먹여 보내지 않고 돈 천 원을 손에 쥐어주며 뭘 사먹으라고 하면, 아이스크림을 밥 대신 사먹는 경우도 있다.

몸에 좋은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사서 직접 요리한 음식 보다는 아무 것도 못해 주니 돈 오백 원이라도 줘야지 하는 심정으로 보호자가 준 푼돈은 불량식품 외에 사먹을 만한 것이 없다.

그 뿐이 아니다. 별로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놀다가 잠들어 버려도 그만이다. 이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막상 돈이 없으면, 어른들은 조금 참아보자며 급하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이다.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던지, 이가 새로 날 텐데 왠 호들갑이라던지, 다 이 안 닦고 잔 네 잘못이니 아무 말 말라고 흔히 입을 막는다. 때로 아이들은 이가 아프다는 사실에 혼이 날 것으로 지레 겁을 먹고 숨기기 급급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틔움과 키움 사업을 통해 ‘구로세브란스 치과병원’에서 치과진료를 받게 된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아이들 한명씩 진료를 마치고 나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일은 나라에서 어린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상 진료를 시작해보니 아이들 중에는 꽤나 상황이 심각하여 도대체 어떻게 참고 지냈는지가 의아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여태 참고 지냈던 아이들은 막상 치료를 하고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연실 벙긋거렸다.

모두는 아니지만 이를 열심히 잘 닦는 아이가 점차로 늘어나 좋은 교육적 효과도 있었다.

건치에서 (사)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서울특별시지부와 손잡고 치과연계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교사들 사이에서는 선택될 수 있을지 긴장이 대단했다. 기대하지 않게 인근의 구로세브란스치과가 응해주셔서 우리도 검진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대의 기분은 한마디 “올레!!!”였다.

치과 선생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혹시라도 내 입안이 보일까 말도 겨우 하고, 아이들도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가도록 했지만 누구보다 그런 치료가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못나고 게으른 교사로 부디 아이들이 나처럼 자신 없는 인생을 살지 말았으며 하는 바람만큼 건치와 세브란스 치과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새롭게 걱정스러운 일은 이렇게 진료도 해주시고 애써주셨는데, 아이들에게 이 닦기나 먹거리 교육을 잘 못시켜서 도로아미타불이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먼저다.

저희 애들 입 크게 벌리고 환히 잘 웃어요. 입 안에서 햇빛이 보석처럼 잘게 잘게 부서져요. 아이들과 아이들의 이를 보살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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