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가슴 뜀을 꺼내 베트남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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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가슴 뜀을 꺼내 베트남을 만나다
  • 김지현
  • 승인 2010.04.28 1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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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베트남평화의료연대 11기 진료단 김지현 원장(하남 하늘샘치과)

 

진료단을 처음 알게 된 건 11년 전 신문광고였고 아마도 건치신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남이라는 수도권 변두리에서 페이 닥터 2년차의 고단한 일상을 지루해 할 때쯤 베트남 진료단 모집광고는 가슴을 뛰게 하는 뜨거운 유혹이었다. 오랜 기억속의 가슴 뜀을 꺼내어 베트남진료단의 일원으로 갈 수 있을 때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작은 동네치과였지만 혼자서 오롯이 책임져야하는 원장의 자리가 페이 닥터 시절 생각했던 만큼 마냥 박차고 언제, 어디나 갈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고 (아마도 한번도 해보지 못해서 였을 것이다) 결혼과 아이 둘을 편안하게 해결 할 수 있는 사정도 아니었다고 변명을 해본다.

베트남에 가서 무슨 큰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과정은 큰 두려움과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오랫동안 일상에 묶여, 사회적인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떠난 거라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는 크게 염두에 두고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가서 보고 듣는 전쟁의 흔적과 아픔들은 가슴속에 더 깊이 충격적으로 들어앉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벌써 진료단 11기, 개인사의 소소한 일들로 10년이 막무가내로 흘러가는 동안 평연은 제법 튼실하게 자라난 것 같다. 그동안 한 톨 보탠 것 없지만 자랑스럽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요새는 1년만에도 변하겠지만?) 사람도 변한다. 평연의 10년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을까마는 진료단의 7박 8일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보니 지난 10년의 고민과 경험들이 하루하루의 작은 시간 속에도 다 녹아있는 듯 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오신 선배님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고 고개가 숙여진다.

보통 진료봉사를 가는 것처럼 내가 가진 기술을 베풀려고 왔다면 (그것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다시 오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노이의 전쟁 박물관에서 베트남전쟁이 얼마나 길고 끈질긴 전쟁이었나?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기나긴 세월을 싸울 수 있었나? 인간에 대해 성악설에 무게를 실으면서 치를 떨고 있던 시기라서 더욱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베트남이었다.

특히 20세기의 위대한 그 사람 호치민!!!! 구수정 선생님의 열정적인 설명을 통해 처음 자세히 접해보는 호치민과 베트남의 역사는 가슴 아프지만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20세기에 위대한 인물들이 많겠지만 인간으로서 지도자로서 가장 완성된 ‘사람’다웠던 호치민을 만들어낸 베트남에 고마웠고 오랜만에 어린시절처럼 그냥 존경되는 사람을 다시 품을 수 있게 된 것도 고마웠다.

진료지로 옮겨가 통역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우리와 베트남 환자들 사이에서 입술이 부르트도록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웃는 그들의 젊고 순수한 열정을 보면서 뜨거운 것이 자꾸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특히 답사를 통해 밀라이 박물관과, 빈영사, 위령비, 하미, 퐁니 마을 위령비를 함께 하다보면,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지만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아직도 제대로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못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서글펐다.

올 해 두 번째로 진료단에 참가하면서 밀라이 역시 두 번째 방문이 되었다. 밀라이는 미군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마을이고 밀라이 학살의 현장사진이 공개되면서 반전운동과 종전에 대한 급변화가 일어난 곳이었다.

두 번째에 보는 희생자들의 사진은 이제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내가 전에 그들을 알았던 것 같다. 마지막인 줄 알았을까? 모든 감정이 다 담겨있던 표정들도 잊혀지지 않는다.

인간이 누구나 죽게 되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이다.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 전쟁의 시간과 공간을 기막히게 피해 있다고 해서 ‘다행이다’하고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도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인간적이고 가슴 아픈 일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권력자가 되지 못한 게 통탄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고려사항 없이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칠 수 있는 평범한 시민임이 뿌듯하다. 그래서 나는 현재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파병을 반대한다’라고…….

적어도 내가 베트남에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과 상처들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그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전쟁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 번 와서 일주일동안 함께하고 확인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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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2010-07-20 17:05:45
우리가 죽게될때나 니가 죽게될때 구호반대라고 외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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