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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친일-자기배반의 역사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8.05 00:00


“증인! 고개를 드시오.”

앞머리가 약간 벗겨지고 짙은 눈썹에 다부진 입술을 지닌 젊은 국회의원이 5공 청문회에 불려나온 증인을 지그시 노려보며 말문을 열었다. 고개 숙인 증인은 불안해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이수정, 나는 증인의 이름 석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 그런 학창 시절을 보냈소.”
젊은이가 매서운 눈매로 쳐다보자 증인은 안절부절 할 뿐이었다.

“증인은 모범적인 선배이자 나의 우상으로 줄곧 존경하였는데 증인을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라고 다그치고 나서 신랄하고도 조롱 섞인 신문을 이어나갔다.

이 젊은 국회의원은 유신독재에 맞서 민청학련을 이끌었던 ‘이철’이었다. 증인 ‘이수정’은  4·19 당시 서울대 학생회장으로서 그때 쓴 ‘서울대 선언문’은 글 힘이 대단하여 뭇사람을 감동시켰다. 이수정은 문공부 재직 시절인 80년에 군부의 하수인이 되어 언론통페합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전력으로 ‘언론청문회’에 불려 나온 것이다.

4·19투사에서 권력의 불나방으로 전락한 선배를 몰아 세웠던 이철은 3당 합당 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가 2002년 대선 때 정몽준의 품에 안겨 조직위원장을 맡았으니, 그가 공개적으로 경멸한 선배의 궤적을 고스란히 밟았다. 이는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았던 자기배반의 한 예일 뿐이다.

일제의 강점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래서 이완용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식민지 역사라는 것이 매국노 이완용 한 사람에 수많은 애국자들이 대치하는 구도는 아니었다.

일본이 이룩한 근대화는 1905년 이전에 많은 조선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그 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변절시켰다. 일제 식민지 관리의 분할지배 전략에 이용당한 결과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조선인들이 식민독재에 부역했다.

해방 후에도 이런 한국인들이 일본의 관행을 자신의 행동모델로 삼았고 심지어 국가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래서 해방 직후 민족자존심의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일어나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겉으로는 반일을 외치고 속으로는 친일하는 이율배반의 연속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해방 후 우리를 지배한 것은 미국이었고 미국은 친일을 묻지 않고 반공만 앞세우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어떻게 보면 옛 중국과 우리의 조공관계는 대수롭지 않은 서열의 체제, 혹은 평등은 아닐지라도 진정한 독립의 체제였다.
하지만 새롭게 마주친 미국의 지배는 이와 반대로 허구적 평등과 실질적 예속의 체제였다. 친일, 민족 반역자, 협력자라는 말에 친미라는 단어가 같은 뜻으로 추가되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식민지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가치의 장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도덕적 긴장과 감각을 내동이친 채 현기증 나게 밀어붙이는 정력적인 경제 개발만이 만사형통인 줄 아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근대화란 합리성을 갖추어야 하고 합리성은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세계사적 상식이다. 이제나마 열린우리당이 법제정을 통해 친일청산의 의지를 확고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청산의 주체인 열린우리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과연 그럴 도덕적 잣대가 있는가 심히 회의스럽다.
지난 총선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개혁적인 ‘젊은 피’가 국회에 수혈되었지만 의정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이수정처럼, 이철처럼 스스로를 배반하는 길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특히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하여 자기 소신을 확 바꾸어 미국의 눈치를 보고 먼저 알아서 기는 모습에서 다시 도지는 반민족적 대미굴종이 보일 뿐이다.

지금 ‘젊은 피’들의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는 논리야말로 친일세력이 스스로를 배반하는 핑계였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여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명백한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면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미굴종도 친일과 전혀 다를바 없는 자기배반의 역사일 뿐이란 사실을! 

 송필경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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