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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루트의 비밀 '여성 연락원'[기획연재] 제3부 여성박물관
송필경 | 승인 2010.05.11 15:14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 베트남 전쟁의 여성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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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 과정부터 여성들이 군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갖고 총격술 사격술을 익힌다. 전장에서 남성들과 똑같이 싸운다.

여전사들의 모습이다. 여성 유격대, 여성 포병대, 베트남전쟁을 종식시키는 협정을 조인한 여성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부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여성유격대와 사진을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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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가슴 아픈 사진들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가장 많이 희생당하였지만 가장 많이 그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연락원들이다. 북에서 호찌민 루트를 통해서 남하하는데 평균 6개월에서 7개월 걸렸다고 한다. 사람이 다니기 힘든 쯩선 산맥과 사람이 건너기 힘든 강들이 이어지는 곳이다.

   
 
   
 
호찌민 루트라는 개념은 영국의 BBC방송이 처음 만들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등먼 호찌민이라 불렀다. ‘등먼’이라는 개념은, 한국어에는 이런 단어가 없는데, 산이나 숲길 가운데  길이 없는 곳에 사람들 서너 명이 밟고 지나가면 실같이 조그만 길의 흔적이 남은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이 된 것을 호찌민 루트라 하는데 미국은 호찌민 루트를 찾기 위해 엄청난 폭격을 가했다. 북에서 출발한 인원의 30%도 채 안 되는 사람만이 남에 도착했다. 70%는 호찌민 루트에서 죽는다. 첫째가 굶주림, 둘째가 미군의 폭격, 셋째가 열대병(장티부스·말라리아·풍토병)으로 죽는다.

   
 
  ▲ 연락원들의 주민증  
 
이 보이지 않는 길들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연락원이었다. 수많은 연락원들이 미군에게 체포당하였다. 그런데 이 호찌민 루트는 전쟁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미군에게 한번도 발각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연락원들 때문이었다. 연락원이 되려면 우선 주민증을 반납한다. 여기에 수십만 연락원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여기에 있는 많지 않은 사람들은 우연히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이다. 대부분 연락원들은 폭격에 죽었거나 체포되어 고문에 죽었거나 했다. 가족들이 생사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호찌민 루트의 전모는 잘 밝혀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면, 서울에서 안양, 안양에서 수원, 수원에서 오산 이런 식으로 구간을 정해 그 구간만 담당하는 안내원을 두었다. 만약 미군측에서 이 안내원을 잡아 아무리 고문을 하더라도 더 이상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수많은 안내원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송필경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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