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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끝나지 않은 미제국주의의 야망<미국의 베트남전쟁>을 읽고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12.01 00:00

   
▲ 조너선 닐 지음, 정병선 옮김, 책갈피. 2004 21세기에도 미국의 제국주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직한 청년이 물었다.「인간은 옛날에도 오늘 같이 서로 살해하여 왔다고 생각하십니까?」현자가 대답했다.「매는 비둘기를 보면 언제나 그것을 잡아먹었다고 보는가?」「물론입니다」「그렇다면, 매는 언제나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인간은 그 성질을 고쳤다고 생각하는가?」 볼테르의 단편 『깡디드』에 나오는 대화이다.

미국이 지배한 20세기 후반에 매우 야만적인 인류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베트남전쟁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스스로 외친 윤리,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미국독립선언문의 정신을 기만하는 도덕성의 파멸을 스스로 폭로하였다.

베트남은 미국에서 1만 마일도 더 떨어진 조그만 나라로 미국과 어떠한 인연의 끈도 없었다. 그러니 애증(愛憎)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에 제2차세계대전 때 수십 개 나라에서 사용한 것보다 3배에 이르는 7백 85만 톤의 폭탄을 퍼부었고, 게릴라 근거지를 말살하기 위해 밀림에 75만 kl의 화학약품을 살포했다.

베트남의 순진한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미군의 공중 폭격실험대상이 되어야 했으며 고엽제를 뒤집어써야 했는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참혹한 공중 폭격과 화학탄 세례를 받아 죽임을 당해야 했던가?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역사상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더 거짓말쟁이이며, 사기꾼이며, 불량배이며, 욕심쟁이며, 잔인하고 위선이 가득 찬 그러한 나라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 고 조너선 닐(Jonathan Neale)은 단정하고 있다. 그의 책 《미국의 베트남전쟁》은 베트남전쟁을 저지른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독자에게 끄집어내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고, 소련만이 겨우 의미 있는 도전 세력이었다. 미국의 지배 계급은 자신의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였다. 전쟁의 경제적·정치적 승리자로 그들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미국의 기업활동을 위해 세계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양식이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유도 이야기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민주주의를 지원하기도 하고, 독재 정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 핵심은 「기업」의 자유였다."

여기에서 잠시 인간 언어의 상반된 두 가지 의미를 엿보자.「기업」은 자신의 자유를 자본의 무한한 확장(즉 '세계화')으로 보면서 민중의 자유는 '반란'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민중」은 자신의 자유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으로 보지만, 「기업」의 자유를 약자에 대한 무한한 '착취'로 보는 것이다.

미국은 「기업」의 나라이다. 모든 나라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민중에 반대하는 부자들을 지원했다. 미국 정부는 해외에서 항상 가진 자들을 지원했다. 이 정책이, 그들이 그 나라를 「기업」하기에 안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민중이 필사적이어서 지배계급이 허약한 제3세계에서 미국은 흔히 독재자들을 지원했다. 그 독재자들이야말로 불평등한 상태를 유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들에게 공산주의 소련이 강력해지고 베트남에서 아래로부터의 봉기, 즉 「민중」의 '반란'이 강력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그것은 미국에서도 공민권 운동과 노동조합의 급진성을 고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악몽을 꾸지 않으려고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했다.

조너선 닐은 열여덟 살이었던 1966년 조국이 베트남에서 스스로 맡은 역할을 지지했다. 당시에 징집됐더라면 그도 기꺼이 베트남에 갔을 것이다. 부모가 중간계급 출신의 교사였기 때문에 징집을 피할 수 있어 대학에 갔고, 1969년에는 전쟁에 반대해 행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은 어떻게 베트남에서 패배했는가'를 치밀하게 조사했다. 전쟁 가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집해, 그것을 계급적 시각에서 간명한 언어로 풀이하였다. 그가 말하는 미국은 '미국 정부' 또는 '워싱턴'을 의미하며, 더 본질적으로는 미국 「기업」을 가리킨다.

공산주의 전통은 힘을 잃고 사회주의 독재정권들이 무너진 지금, 미국「기업」의 의도는 이제 세계의 운명을 지배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그럼에도 현재 널리 펴진 급진사상은 반자본주의 사상이다. 또 다른 세계가 어떤 사회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조너선 닐이 외치는 구호는 이것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이 책의 미덕은 참으로 많다. 조너선 닐이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계급적 시각에서 예리하고 집요하게 추적한 것과 베트남전쟁을 베트남 농민과 미군 사병들의 관점에서 다룬 것은 국내에서 발행된 베트남전쟁에 관한 어떤 다른 책보다 탁월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다보면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미국의 지배 전략의 본질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될 것이다.

미국의 「기업」은 한국전쟁의 참극을 통해 미국 내에서 거의 어떠한 저항에도 부딪히지 않고 아시아에서 유혈극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에서는 참담한 실패를 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사이의 시간만큼이 지나자 또다시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조너선 닐은 베트남전쟁에서의 패배에도 매가 언제나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듯, 미국 「기업」이 그 성질을 고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야만에 저항하여 악마와 같은 태도로,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은, 그러나 선한 악마였기에 마침내 웃을 수 있었던 베트남 민중에 대한 서술이 부족한 점이, 구태여 말하자면, 옥에 티라 하겠다.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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