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느 별에서 왔니? - 임상수의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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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느 별에서 왔니? - 임상수의 [하녀]
  • 장현주
  • 승인 2010.06.03 1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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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하하하를 보았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더니 볼만하더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말끝에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하녀]는 그냥 그렇던데... 내지는 별로던데...

홍상수나 임상수나 같은 상수씨 영화인데 좀 딱하게 됐다. 칸 영화제에는 두 상수와 이창동 감독이 나란히 손을 잡고 갔다가 혼자만 미역국을 먹었다. 그것도 역시 좀 딱하다.

사실 [하녀]가 뭐 그렇게 죽여주는 영화는 아니라고 해도 뭐 딱히 꼬집어 나쁠 것도 없다.

영화는 우선 배우의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정재와 전도연은 영화를 끌어가는 힘찬 두 축이다. 최근 문제작마다 계속 얼굴을 보이고 있는 서우와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 윤여정까지.

럭셔리한 장면들 하나하나도 볼거리다. 그러나 [하녀]의 시나리오 자체가 갖는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의 힘이 그닥 강하게 느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정재의 쵸콜릿 복근에 대해서야 할말이 무지 많겠지만 서두.

나는 사실 그것이 영화의 문제 라기 보다는 영화를 둘러싼 시대의 문제라고 느낀다. 영화가 잘못 만들어 졌다기 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또는 시대가 변한 것이라고.

영화는 어느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한 여자의 자살 씬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수미쌍관하게 [하녀] 전도연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죽음의 장소는 다르지만 어쩌면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인지도 모른다.

메시지의 힘을 드러내려는 감독의 고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결말은 이제 더 이상 이시대의 관객들에게 충격도 신선함도, 그 뭣도 아닌 것 같다.

왠지 계급의식이 물씬 풍겨나는 듯한 [하녀]라는 제목의 영화를 그저 그런 웰메이드 장르 영화로 느끼는 관객들의 반응은,  대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투신자살 사건을 멀뚱멀뚱 구경하는 영화 속 행인들의 반응과 조응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70년대나 80년대에 리메이크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영화는 상영금지되고 감독은 끌려가고 배우는 영화판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대학가에서는 이 영화를 몰래 상영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정권에 의해 풍기문란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정치영화로서 문제작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봄 서울에선, 영화 속에 숨겨놓은 불온한 코드 보다는 섹시한 코드가 더 빨리, 더 쉽게 감지된다. 이것은 이 영화의 행운일까? 아니면 불운일까?  

어느 정도 감각 있는 관객이라면 [하녀]의 포스터만 봐도 그 줄거리를 대강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상류층 남자와 그 임신한 부인, 새로 들어온 섹시한 하녀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노회한 눈초리의 늙은 하녀 하나. 캐릭터 넷만 섞어서 던져놔도 저절로 줄거리가 엮어질 듯하지 않은가? (사실은 그래서 길게 늘어놓기도 싫다.)

주인남자와 새로 온 하녀가 얼레리 꼴레리 했다네...로 끝났다면 범속한 에로물이 될테고, 임신한 하녀가 안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주인마님을 죽이려든다면 에로틱 호러물이 될 것이고, 그 하녀를 사실 주인마님이 고용했고 하녀를 남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시켰다라는 결말이면 에로틱 스릴러가 되었을 테지만... 영화는 조금 다른 결말을 취하면서 [하녀]를 자살로 몰고 간다. (음... 써놓고 보니 신파인것 같기도 하다.)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야 정말 평범한 장르영화로 보일수도 있고 영화평이랍시고 이런 글을 쓸일도 없었겠다. 그러나 쌔끈하게 미끄러져 넘어가는 영화 속에서 목에 걸린 인절미 처럼 헉 소리가 나게 만드는 대사 몇마디가 있었다. 한 마디로 골때리는.

1. 임신한 안주인이 만삭의 배를 하고 남편과 섹스를 나누면서 하는말.
" 난 낳을 수 있는데까지 애를 낳을 거예요. 형님이 힘들다고 애 둘만 낳고 더 안가지려고 하는 거 난 너무 웃겨. 그거야 보통 사람들 얘기지..."

2. 하녀의 임신을 알고 속을 끓이는 주인마님의 친정엄마가 악마처럼 딸의 귀에 대고 속살거리는 말.
"훈이 같은애랑 같이 사는게 쉬울 줄 알았니? 걔는 자기가 원한 걸 한번도 못가져본 적이 없는 애야. 걔는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가지고 싶은게 있어서 그냥 가진거야. 아무 생각 없이. ##네 마누라 그 여자가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아니? 그래도  그 모진세월 독하게 참아내고 지금은 여왕처럼 살잖아..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여왕으로 사는거야."

3. 장모와 자기 부인이 임신한 하녀를 유산시켰다는 걸 알게된 주인남자 훈의 대사.
" 장모님은 당신 딸 몸으로 나온 애만 내 새끼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감히?"

몸 망가질 걱정, 기둥뿌리 뽑힐 걱정, 애를 하나 낳을 때마다 투여되는 엄청난 정서노동에 대한 걱정 없이 힘 닿는데까지 낳겠다는 현모양처는 인간극장에만 나오는게 아닌줄 이제 비로소 알겠다.

딸이 받은 상처보다 여왕이 되지 못하는 것을 더 안타까워 하는 대단한 모정도 있다는 것을 또 알겠다.

자신의 부정이 들통 나도 한 점 흔들림 없는 안정된 자아가 있다는 것도 또한 알겠다(역시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달러).

이들은 사실 지구인이 아닐 것이다. 고도로 진화된 외계 생명체임에 틀림없다. 어쩌다 지구별의 말을 익혀 지구인의 탈을 쓰고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고향은 여기가 아니다. 저 먼 안드로메다 행성, 아니면 신들의 연애사건이 난장처럼 펼쳐진 밤하늘 어디메에 있다.

이런 고도한 생명체를 어떻게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한 몸 불살라 논개처럼 스러지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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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2010-06-05 11:36:28
부자들 사는 모습 비웃으며 보는 재미는 있더구만요. 스토리가 탄탄하지는 않아도...
얼마전 읽은 '삼성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삼성가라면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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