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12]중년,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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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12]중년,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 전민용
  • 승인 2010.06.1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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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중년을 말하다. 대릴 샤프 저. 북북서

 

공부하기 쉽지 않은 융 심리학을 소설의 형식으로 쉽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를 통틀어 융 학파 심리분석가는 50명도 안된다고 한다. 분석가의 자격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은 4명이다. 심리분석가이자 화자인 나. 나와 융 연구소에서 같이 공부한 룸메이트 친구였던 아놀드, 나에게 심리분석을 받고 있는 노만과 그의 아내 낸시이다.

노만에 대한 정신분석과 노만을 통해 나타나는 낸시, 나와 아놀드 사이의 경험들 그리고 나의 기억을 통해 융 심리학의 여러 개념들을 펼쳐 놓는다.

한번도 아내하고 싸운 적도 없이 두 아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던 30대 후반의 노만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너무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며칠 째 자꾸 눈물이 나오고 한번 울면 좀처럼 멈출 수가 없다.

그는 분석가에게 가족이 인생의 전부이고 완벽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그 가정이 파탄나기 직전이란다. 도대체 노만의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 세상에 갈등상황이나 인간관계에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오직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책이 있을 뿐이다. 결국 전문가든 친구든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해결책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때로 어설픈 도움은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융 심리학 역시 기초적인 지식과 도움을 줄 뿐이다. 특히 보통 중년에 많이 오는 심리적 위기나 방황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사랑, 증오, 슬픔, 기쁨 등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콤플렉스가 작동했다는 뜻이다. 이게 작동하면 우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도 모르게 된다.

우리를 마음대로 지배하는 콤플렉스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콤플렉스는 어머니나 아버지 같은 어떤 특정한 이미지에 달라붙어 있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라질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잘 인식하면 할수록 그 영향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페르소나를 쓰고 산다. 페르소나는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이것에는 모두 그 사회나 집단이 요구하는 어떤 상이 들어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좋은 아빠, 훌륭한 의사 같은 것들이 페르소나이다. 영화 속 배우처럼 사회에서 맡은 배역이다. 사회 속에서 돈, 명예, 권력은 이 페르소나를 잘 수행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배우가 항상 그 배역으로만 살 수 없듯이 인간은 페르소나를 벗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도 살 줄 알아야 한다. 평생 가짜 인생만 살다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노만은 헌신적인 가장, 가정적인 남자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프로이트는 꿈을 낮 동안 이루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융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게 의식의 태도를 보상한다고 보았다. 의식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흐트러진 균형 같은 것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꿈은 분석가들의 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주요한 통로 중 하나이다.

남자는 무의식 속에 아니마라는 여성성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아니무스라는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마는 감정적인 보완을 해주고 아니무스는 지성을 보완해 준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심리 발달 단계에 따라 남녀가 각기 다른 4가지 발달과정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노만의 경우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 사이에 있는 아니마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 단계인 변함없이 안전과 사랑을 제공하는 어머니상과 두 번째 단계인 변덕이 심한 섹시한 여성의 상이 복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노만이 아내에게는 어머니 같은 역할을 원하고, 출장 가서는 애정 없는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곤 했던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홍상수감독의 영화제목이네^^) 상대에 대해 갑자기 대책 없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내가 상상하는 어떤 상으로 착각하는 ‘투사’를 하는 경우이다. 그 사람을 무의식 속의 아니마나 아니무스로 착각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랑한 대상은 밖에 있는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인 것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역할을 해 준다면 이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발견하고 그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만과 낸시 역시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을 했을 뿐이다. 낸시는 결혼 후 오래지 않아 노만의 아니마 역할을 사실상 거절했고, 노만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이제 노만은 낸시의 진짜 모습을 직시할 차례이다. 그 결과가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솔직한 노만의 마음에 달려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인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의식되는 인격의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요즘 같은 문명사회라면 보통 그림자는 억압된 욕망과 야만적인 충동 같은 것이 뭉쳐 있을 것이다. 완벽한 사람으로 보일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질 것이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년의 위기에 자주 등장하는 현상이 이 양자 간의 갈등이다. 분리되어 있는 그림자와 자아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입장을 절충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렇게 자아에 통합된 그림자는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가 있다.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엄청난 재능과 능력을 가져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 성격 유형이 있다. 사고형, 감정형, 직관형, 감각형이다. 그리고 이 유형들은 각각 내향성과 외향성으로 나타난다. 사고는 인지와 판단력, 감정은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지, 감각은 촉감 등 현실 파악을, 직관은 미래의 가능성 같은 것을 알게 해주는 능력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네 가지 기능이 골고루 발달한 상태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기능은 우월하고 상대적으로 다른 기능은 열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성격 유형에 따라 발달되어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무엇을 더 보완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중년이 되면 자신에게 있는 열등 기능을 깨닫고 그것을 발달시키기에 좋은 연령이다.

자! 이제 노만은 자신을 짓눌러온 문제들을 상담과 꿈의 분석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결단을 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낸시에 대한 요구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이제 낸시는 어떤 반응을 할까? 섣부른 속단은 하지마시라. 답은 책 속에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융 심리학에 대해 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이부영의 분석심리학 3부작(출판사는 모두 한길사)인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을, 한권으로 된 것으로는 역시 이부영의 분석심리학(출판사 일조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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