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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미소 '모아 티 탕'[기획연재]제3부 여성박물관
송필경 | 승인 2010.07.12 17:19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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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의 미소  
 
『‘모아 티 탕’이라는 여성의 사진이다. 베트남의 미소라 불리는 여성이다. 베트남에서 이쁘게 웃으면 ‘탕의 미소야!’라 한다.

20년형을 선고 받는 법정의 모습이다. 20년형을 딱 받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20년 후에 나왔을 때 너희들이 이 자리에 있는지 내가 한 번 보겠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의 대표를 역임한 방현석 선생이 쓴 글을 한 번 보자.

“처음 베트남에 온 친구 하나를 위해서 나는 오늘 하루 가이드 노릇을 하기로 되어 있다. 대통령궁, 전쟁범죄박물관,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이 친구는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두 장의 사진을 꼽는다.

첫 번째 사진의 주인은 우옌 반 쪼이다. 미국의 국방장관 맥나마라가 사이공에 왔을 때 폭탄을 설치했다가 잡혀 사형을 선고받은 전기공의 사진은 누구에게나 강렬하다. 사형 집행 직전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호찌민 만세’, ‘베트남 만세’를 외치며 24살의 나이에 총살당한 노동자.

두 번째 사진의 주인은 ‘모아 디 탕’이다. 반정부 투쟁으로 검거된 미모의 이 여대생이 법정에서 2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남긴 최후 진술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고(故) 김병곤이 ‘영광’이라고 외쳤던 만큼이나 통렬하다.

‘당신들, 미국의 앞잡이 정권이 앞으로 20년을 더 존재할 수 있을지를 잘 생각해 보라.’

당시 20세였던 그녀는 지금 국영 베트남관광그룹의 사장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간 기억이라면 지금은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나는 베트남에 오는 한국인들이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베트남의 미국영사관을 꼽고 싶다.

서울의 심장인 광화문 복판에 있는 미국대사관과 한번 비교해 보고 갈 일이다.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온종일 길게 늘어서 있던 미국대사관 뒷담벼락 아래의 한국인들을. 지난해 여름, 실내 대기소를 만들 때까지 한국인들은 50여 년을 오뉴월 뙤약볕 아래에서도, 동지 섣달 눈보라 속에서도 거지마냥 서서 기다려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더 지나서 사이공에 다시 영사관을 개설한 미국은 한국에서 수십 년 동안 해왔던 버릇대로 베트남 사람들을 영사관 높은 담벼락 아래에 줄 세웠다.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서 베트남 여론은 들끓었다. 베트남 정부가 미국에 한 말은 단 한마디였다.

‘너희들이 뭔데 우리 국민을 길거리에 줄 세우느냐, 베트남에서 그 줄은 일주일만에 사라졌다.(2001년 5월 3일)”

송필경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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