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매서운 찬바람을 딛고 피는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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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매서운 찬바람을 딛고 피는 야생화
  • 이충엽
  • 승인 2004.12.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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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초. 늦게나마 본 것 중 핀지 얼마되지 않은 것. 꽃의 겉부분이 흙색이 나는데, 꽃이 더 피면서 이 색도 옅어진다
2004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12월 한 달만 남은 달력이 그간의 가쁜 숨을 돌리며 쉬고 있는 것 같다. 11월이 지나고 야생화 보러 갈 일이 없어진 요즘이 제일 한가하다. 산에 가면 꽃이나 풀사진이 아닌 다른 사진들을 찍으며 여유롭게 지내고, 올해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내년에는 어떤 꽃을 찍을까 구상하기도 한다. 꽃 찍으러 다니면서 세상 사는 모습에 다소 무뎌지긴 했지만, 정치권이 워낙에 삽질을 해대서 듣기만해도 소식이 넘친다.

이제 겨울의 끝 2월 경부터는 다시 꽃사냥을 나갈 터인데 그때 제일 먼저 꽃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제주도이다. 사람들이 간절하게 꽃소식을 기다리는 겨울의 끝머리에 아직도 문밖에는 찬바람이 귀를 때리지만 제주도에서 들려오는 꽃소식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다.

이 시기 먼저 꽃을 피워 소식을 알리는 것이 지금까지는 매화나 동백나무였으나. 요즘 그 자리를 차지하며 세인의 눈을 끄는 우리 꽃이 있으니 그 이름이 복수초이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일찍 핀다는 매력이 있기도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이 밝아질 정도로 아름다운 생김새를 가졌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노란 꽃술과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뜨리며 봄소식에 굼주린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우리의 야생화인 것이다.

▲ 좀 더 핀 모습. 겉부분의 색이 많이 노래졌다
사실 2004년2월 나는 복수초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복수초를 사진 속에서만 보면서 2004년을 보내게 되는 줄 알고 있던 3월말 어느날 울산에서도 복수초가 피는 곳이 있음을 알리는 글이 야생화사이트에 올랐고, 나는 4월초 주말 드디어 깊은 산 속 부엽토가 쌓여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 노오란 봉오리가 정말 예쁘고 귀여운 올해 마지막 남은 몇 남지 않은 복수초 촬영에 성공했다.

그런 날은 정말 기분이 찢어지도록 기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야생화 사진 몇장 찍는게 뭐 그리 기쁠까 싶지만 이건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목표로 삼은 꽃을 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찍은 사진들이 오늘 올리는 사진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복수초는 크게 네가지로 나눈다. 제주도에서 자라는 복수초는 꽃송이가 아주 크고 꽃이 필 때 잎이 같이 올라온다. 백아도와 덕적도 같은 서해 도서 지방에서 자라는 복수초는 꽃이 아주 크고 처음 필 때 잎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강원도 지역의 깊은 산에서 만나는 복수초는 꽃도 작고 잎도 나중에 난다. 광릉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가지복수초는 줄기가 몇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복수초의 개화기는 또 조금씩 다르다. 제주도는 2월, 서해는 3월, 강원도는 4월이다.

▲ 꽃이 핀지 오래되어 꽃술 부분에 열매의 모양이 보인다
복수초는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긴 꽃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같은 이름을 쓴다. 이밖에 지방마다 불리는 이름이 달라 땅꽃, 얼음새꽃, 눈색이꽃, 원단화, 설연화라는 이름도 있다. 동북아시아, 시베리아, 유럽 등 추운 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다른 복수초가 피고 있으며, 특히 유럽의 복수초는 꽃 색이 붉어 구별할 수 있다. 꽃말이 동양에선 영원한 행복이며, 서양에선 슬픈 추억이라 한다.

그리스신화에 미소년 아도니스가 나온다. 아도니스가 산짐승에게 물려 죽어가면서, 흘린 피가 진홍빛 복수초를 피웠다 한다. 그런데 땅속에 살던 페르세포네라는 여신이 죽어 가는 아도니스를 살렸고, 제우스는 아도니스에게 그가 평소 사랑하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는 지상에서 반년을, 페르세포네와는 지하에서 반년을 살도록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그래서 속명이 Adonis 라 한다.

대설이 지났지만 그리 춥지도 않은 따뜻한 겨울이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동장군이 그냥 지나가겠는가! 그 위세를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떨치겠지!! 하지만 추운 겨울을 딛고 일어서 봄소식을 전하는 노란 복수초를 생각하며 어렵고 힘든 이시기를 잘 극복해내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으며 글을 마친다.

▲ 열매가 달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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