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치과이야기] 동아시아의 치과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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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치과이야기] 동아시아의 치과의술
  • 강신익
  • 승인 200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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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한다. 한일합방 등의 치욕을 겪어야만 했으니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힘을 키워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일찍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선언해 근대화를 서두른 그들의 역사는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 그림 1
서양의학의 수용과정에서도 그들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표류한 또는 무역에 종사하는 서양인들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제한적이나마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도록 했던 것은 이후 ‘난학’이라는 외국학문을 발전시키게 된 토양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근대화의 계기가 된 중요 사건으로 네덜란드어로 된 해부학 책을 번역해 『해체신서(解體新書)』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사건을 꼽는다. 해부학 책의 번역이라는 사건이 근대화의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해부학이라는 서양학문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일본인들은 음양오행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근거한 세계를 벗어나 형태와 구조를 갖는 구체적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때가 1774년이니까 서양에서 베살리우스가 주도면밀한 인체의 해부를 통해 오늘날의 것과 유사한 해부도를 발간한지 231년만의 일이었다.

근대를 기준으로 의학사를 보면 이처럼 동양은 서양에 한참 뒤쳐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학기술의 실제적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중국인들은 이미 2세기경에 근관치료를 위해 비소를 사용했고 서양인들보다 1000년이나 앞서 은아말감을 충치치료에 이용하였다. 또 12세기경에는 총의치를 제작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에서도 12세기에 이르면 치과가 독립된 전문분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에도시대에 이르면 많은 수의 총의치가 제작된다. 이 총의치는 특이하게도 목재로 제작되었는데, 그 제작 방법이 무척 재미있다. 우선 밀랍으로 인상을 뜨고 역시 목재를 깎아서 모델을 만든다.

여기에 맞게 의치를 조각한다. 환자의 구강에 진사(辰砂)나 인도 잉크를 발라 조기접촉 되는 부분을 찾아내 조각하기를 거듭하다보면 의치가 완성된다. 여기에 라커를 칠해서 타액에 의한 부패를 막는다. 일본에는 이렇게 제작된 총의치가 120여 개나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틀니들 중에는 온통 시커먼 칠이 되어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는  결혼한 여자가 남편에 대한 충절의 증표로 치아를 검게 물들이던 黑齒 풍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본을 개항시킨 페리제독이 일본을 ‘검은 치아의 나라’로 규정한 것만 보아도 이 풍습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풍습은 기생들에게도 받아들여져 첫 손님을 맞기 전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치아를 검게 물들였다고 한다.

▲ 그림 2
<그림 1>은 화장을 하면서 치아에 검은 칠을 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그림 2>는 치아를 발거하는 치과의사의 모습을 그린 1800년 경의 목판화인데 그 옆에 목재로 제작한 틀니들이 널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개항 이전 우리나라 치의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는 무척 희귀하다. 김홍도나 신윤복 등 풍속화가의 그림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의료행위와 관련된 것은 없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치과의료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동의보감 등의 의서에 기록된 치과 관련 처방을 살펴도 외과적 처치나 보철치료에 대한 언급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금의 치통을 치료하기 위해 제주의 의녀를 불러들여 벌레를 잡아냈다는 실록의 기록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아직 개항 이전 치과의술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건강한 치아를 오복의 하나로 여기고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등의 말에서 드러나듯 구강병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 강신익(인제대 의사학 및 의료윤리학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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