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경주 안강읍 독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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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경주 안강읍 독락당
  • 박종순
  • 승인 200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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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을 위한 공간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이 한창 잘나가던 중년 시절 뜻하지 않게 반대파에 의해 정계에서 축출당해 낙향하면서 은거생활을 하기 위해 지은 별서이다.

독락당(獨樂堂) 홀로 즐거운 집. 즉 이 집은 인간사회와는 절연하고 자연을 벗삼기 위해 지은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인상은 낮추기와 감추기라고 말할 수 있고 대신 자연을 향한 쪽으로는 열려진 그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로 말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별서로 소쇄원이 인공적인 자연을 조성하며 교우를 위한 공간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대문에서 들어서면 복잡한 미로와 같은 벽과 담장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골목과 샛마당이 지극히 패쇄적인 느낌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계곡이 흐르는 쪽으로는 아예 담장을 살창으로 뚫어 마루방에 앉아 창을 열고 그 살창을 통해 계곡 물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절벽에 다리를 걸치고 서있는 정자며 심지어는 담장 밖으로 떠있는 측간까지 자연과 어울러져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회재는 또한 스스로 독락당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계곡의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주변 자연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주변의 여러 봉우리들 중 네 개를 골라 북쪽을 도덕산이라 하여 주산으로 남쪽은 무학산이라 하여 안산으로 동은 화개산 서는 자옥산이라 하여 도학적 상징으로 삼았으며 계곡의 숱한 바위 중에서 다섯을 골라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라 하여 기능을 부여하고 은거를 위한 특별한 장소로 이용했다.

책을 보다 살창을 통해 물과 고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약쑥과 꽃밭을 가꾸기도 하며 계곡에서 시도 읊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주변 산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회재는 지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밀어낸 반대파에 대한 분노와 회한, 자성과 좌절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을텐데 위기를 또 다른 도약을 향한 기회로 활용하여 심신을 수양하는 계기로 삼고 더 크고 원숙한 사상을 이루는 큰 학자와 사상가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독락당은 그런 회재의 사상과 학문을 이뤄내는 은둔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주변에 회재를 제향하는 옥산서원이 있으며 이형석탑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는 정혜사터 십삼층석탑도 같이 둘러 볼 수 있고 또 회재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본래의 집이 있었던 양동마을을 또한 가까운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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