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미국 견문록] 내 비서 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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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미국 견문록] 내 비서 멜라니
  • 이상윤
  • 승인 2004.08.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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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는 내 어시스트다. 나는 소위 그룹 프랙티스(group practice)에서 스페셜리스트(Periodontist)로 일하기 때문에 회사내에 있는 여러 덴탈 오피스를 일주일에 한군데씩 돌아다니면서 치주환자들만 보는데, 멜라니는 나와 같이 돌아다니며 내가 환자볼 때 체어 사이드 어시스트도 하고 내 환자약속도 체크하고 수술환자한테 전화도 하고 물품주문도 하고 기타 내가 귀찮아 하는 일을 다 해주는 내 assistant 다.

멜라니는 아이리쉬계의 백인여성으로 64년 생이고 이혼녀다. 15살 16살 짜리 딸 둘을 두고 있고 소위 싱글 맘(single mom)으로서 돈도 벌고 집안 일도 하고(미국에서 집안 일이라고 하면 설겆이같은 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잔디깎고, 집수리하고, 자동차 고치고…. 여기서 보면 미국사람들이 토요일을 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집안일 하는데 일주일에 하루는 너무 짧은 것이다.) 결사적으로 살고 있다. 어느 날은 싱글맘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혼자 울었다고 한다.

멜라니 입장에서는 한 곳으로 고정출근하는 것이 더 편한데도 내 어시스트로 지원한 이유는 내 어시스트가 되면서 풀타임(full time)이 되었기 때문이다. 멜라니는 이 회사에 취직하고 2년 반동안 풀타임을 원했지만 안되다가 올해 1월부터 나와 같이 일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풀타임으로 됐다. 멜라니는 풀타임 position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동양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파트타임은 확보된 근로시간이 없다. 일단 아침에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지만 만약에 환자가 스케줄대로 안와서, 예를 들어 오후 2시에 그날 진료가 끝난다면 하루에 9시부터 2시까지 5시간만 일한 일당을 받게 된다. 그래서 다들 풀타임으로 하고 싶어하지만 회사에서는 호락호락 다 풀타임을 주지 않는다. 내가 보니 어시스턴트와 데스크스탭들 중 반정도가 풀타임인 것 같다.

잠시 다른 얘기지만 로리라는 다른 파트타임 어시스트가 있다. 나이는 쉰 두살이고 역시 혼자사는 백인 여자인데 어시스트 경력이 본인말로 이십년이 넘는다. 근데 파트 타임이다보니 일할 시간을 먹고살 만큼 확보하지 못해서 주말에 하루는 다른 회사 사무실 청소, 또 하루는 밥 에반스(Bob Evans)라는 싸구려 레스토랑 체인점에서 손님들 먹고 나가면 식탁치우고 바닥닦는 일을 한다. 거기서 받는 임금이 한시간에 7불. 근데 로리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자기는 일주일 내내 주말도 없이 풀타임으로 일하는데 왜 파트타임이냐”고. 거기다가 로리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자주 가다보니 병원비 때문에 거의 파산지경이다. 로리가 워낙 말을 빨리하는 데다가 이 말할 때 울먹이면서 말을 해 내가 영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집도 없고 차도 뺐겼다는 것 같다. 미국에서 차가 없다는 것은 신발이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욕같은 대도시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미국 도시는 지하철도 없고 한국같은 노선버스는 구경하고 죽을래도 없다. 택시는 값이 비싸서 타는 사람이 별로 없고 길에서 지나가는 것도 거의 못 본다. 시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는 옛날 한국 시외버스처럼 한참만에 한번씩 오는 게 있는데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다  썩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고 한국사람들은 미국사람들 검소하다고 하는데 그것 뭘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다. 새 신발 살 돈은 없고, 신발은 있어야겠고 하니까 그거라도 타고 다니는 거다.

근데 이상한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없는거다. 자기들끼리는 좀 투덜댈지 몰라도 어떻게 모여서 뭘 좀 바꾸어 보겠다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러니 개선되는 것도 없이 그 모양으로 살지 하는 딱한 생각도 들고, 어차피 그렇게 살바에는 그렇게 사는게 속은 편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필자는 미국 인디애니 주립대학에서 치주과 수련을 마치고 현재 클리브랜드의 한 Group Proctice에서 풀타임 Periodoutist로 일하고 있으며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CWRU) 치주과 임상 조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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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2004-09-07 12:30:06
미국 견문록 참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대학교때 루이제 린저 가 쓴 평양 견문록을 읽었을 때 처럼
신선(!)하고 잼있습니다
어케 보면,,, 근면성실하고 자립심 강하다고 느꼈던 선입관 들이 우수수 무너지는 쾌감들이 더 잼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한거 같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사실적이면서, 직접 피부로 겪으면서 들려주는 미국의 속내를 계속 들려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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