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20]피렌체, 열정,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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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20]피렌체, 열정, 튀어!!!
  • 전민용
  • 승인 2010.10.05 13:3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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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를 연재하면서 서평을 쓴다는 생각보다 같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권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북카페를 통해 소개한 책을 직접 구해 읽었으면 싶었고, 댓글이나 다른 자리를 통해 책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읽은 책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권하기에 주저 되는 책들도 많았고, 이번에 그 중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몇 권을 소개하기로 했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각 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심정이다. 3개 씩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4.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고형욱, 사월의책

▲ 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고형욱, 사월의책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피렌체를 열 번이나 갈 수 있었다니!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실컷 구경하고 중앙시장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저자의 발길을 상상하면 나는 언제 저렇게 가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보티첼로의 그림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보면서 저자처럼 행복한 감동의 정취에 빠져 들 수 있으려면 이정도의 상식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직접 진품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면 책에 실린 그림과 조각품의 사진들을 자꾸 반복해서 보게 만든다.

압권은 역시 보티첼로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저자는 운 좋게도 다른 관람객이 없는 이른 시간에 혼자 그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벽 하나를 꽉 차는 진품을 혼자 한참 동안 바라보았을 그 순간이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인 비너스는 보티첼로의 붓에 의해 비로소 탄생한다. 상상 속의 비너스가 구체적으로 시각화하여 인간 세계에 탄생한 것이다. 신화 속에서 바다 거품(아프로디테의 아프로는 거품이라는 뜻)으로 부터 태어난 비너스의 모습은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보티첼로의 상상력과 손길이 우리에게 비너스를 선물해 준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 탄생의 모습이 아니라 조개를 타고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바람에 의해 흘러와 육지에 오르는 순간의 그림이다. 추정에 의하면 순결한 여인이 결혼을 앞두고 행복과 출산을 축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너스의 왼손이 잡고 있는 머리카락이나 호라이가 입혀주려고 들고 있는 망토 끝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아 있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얼굴은 마냥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 어딘지 애잔함이 서려있다. 결혼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리라. 어딘지 껑충해 보이는 10등신 몸이나 이상하게 꺾여있는 목 등 평범하지 않은 신체이지만 어딘지 청순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그 자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다빈치의 수태고지, 라파엘로의 작품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나 바쿠스 등 여러 걸작들을 섭렵하고 아르노 강이나 궁전들 심지어 가장 번화한 곳인 중앙시장까지 독자들을 끌고 다닌다. 피렌체 여행을 하면서도 겨우 건성으로 구경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나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 작품들이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5.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누군가 예술은 좋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것 또는 경탄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적인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것은 예술로서의 상상력이 결여 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충분히 충격적이다. 경탄할 만 한 것 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저자는 자기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열정적인 사랑을 한다. 사랑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오직 그를 만나고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데도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지나친 집착이고 정신병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상대는 연하의 남자이고 가정이 있는 남자이다. 문화적인 이질감도 상당히 크다. 왜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오직 사랑할 뿐이다.

이 소설이 처음 발표 되었을 때 프랑스 문단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학교수이자 르노도상을 수상한 유명한 미모의 작가가 동구권 외교관인 유부남과 불륜에 빠진 경험담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다.

전혀 과장이나 꾸밈이 없고 심지어 설명도 거의 없고 간결한 문체로 담담하게 사실을 적어 나갈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이렇듯 흡인력이 있다니 놀랍다. 그녀는 어렸을 때는 부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이 가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반문한다.

끝이 아니다. 이혼한 아버지가 열독하고 있던 ‘단순한 열정’을 우연히 보게 된 한 젊은이가 있었다. 아니 에르노 보다 33세 연하인 대학 신입생 필립 빌랭 이다.

그는 이 책을 보고 아니 에르노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졌다. 몇 번의 편지 왕래 끝에 그들은 만났고 바로 사랑에 빠진다. 헤어지기 까지 5년간의 열정적인 사랑과 동거의 과정을 ‘단순한 열정’의 형식과 문체를 거의 그대로 흉내 내서 필립 빌랭이 ‘포옹’(문학동네)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발표한다. 두 권을 다 읽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다.

자전적 글쓰기는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쓰는 행위가 아니다. 아무리 사실 그대로 쓴다고 해도 지면의 제약으로 경험을 다 쓸 수는 없고 쓰지 않은 부분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지 않는 가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취사선택을 통해 저자의 관점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튼 이들만큼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들의 독특한 사랑과 글쓰기 방식을 체험해 보기 바란다. 소설의 분량은 70쪽, 100쪽 정도로 길지 않다.

▲ 남쪽으로 튀어 1.2,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6. 남쪽으로 튀어 1.2,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북카페에 ‘공중 그네’,‘한 밤 중의 행진’ 등 오쿠다 히데오의 책 몇 권을 함께 소개했는데 누군가 댓글로 추천한 책이다. 초등학생 지로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어른들의 모습이 특유의 유쾌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폭력을 일삼는 동네 선배를 죽을 힘을 다해 극복하는 과정도 재미있고, 과거에 좌파 행동대장 이었던 아빠의 이상한 언행에 상처 받다가 여러 사건 사고를 거치면서 점차 아빠를 이해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나라 일본에서 전통적인 순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오키나와 섬사람들의 생활 방식도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다. 죽어도 자본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지로 아빠의 고집도 대단하고 멋있지만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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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2010-10-14 12:27:37
가보고 싶은 도시...피렌체....바티칸 시국에서 미켈란젤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더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피렌체를 꼭 봐야 할 것 같더군요...스탕달 신드롬의 본거지라는 피렌체...갈 수 있는 날이 있을려나요??? 가기전에 꼭 한번 봐야 할 책인 것 같군요...감사..

김기현 2010-10-14 12:23:24
가보고 싶은 도시...피렌체....바티칸 시국에서 미켈란젤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더 진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피렌체를 꼭 봐야 할 것 같더군요...스탕달 신드롬의 본거지라는 피렌체...갈 수 있는 날이 있을려나요??? 가기전에 꼭 한번 봐야 할 책인 것 같군요...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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