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라는 시를 통해서이다. 그 때 김수영과 비숍은 막 연애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一八九三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회회원이다
그런데, 그 연애는 첫 단추부터 잘못껴졌다. 비숍은 서울(1894)이 세상에서 가장 불결하고 냄새가 더러운 도시라고 했다. 똥오줌이 가득했던 하수도에서 애들이 반쯤만 가리고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3년후(1897) 이 말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김수영(1921-1968)은 발끈했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이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좇이다
하지만, 비숍도 조선의 운명이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순조롭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싸움에 고종황제 뿐 아니라 동학혁명군들까지 희생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코드가 어긋난 것은 여성관 때문이었다. 비숍은 백의민족의 빨래를 모두 여성들이 하고도 모자라서 남자들이 오입을 하러 다니는 시간까지 다드미질 소리가 들리는 것을 기가 막혀 했다. 그래서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출입을 하지 못했다”고 썼다.
김수영은 자존심을 죽이지 않았다.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비숍의 잔소리쯤은 ‘좀벌레의 솜털’이라고.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두 사람의 연애는 정말 별볼일 없었다. 하지만, 난 내 골수에 뿌리박힌 ‘빨래하는 아낙네상’이 싫다. ‘이 땅에 여성으로 뿌리박고 살아가기 위해서’ 김수영의 모더니즘은 ‘아직도 멀었다’고 말하리라.
이주연(세브란스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