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재벌만을 위한 경영권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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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프리즘> 재벌만을 위한 경영권 방어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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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부터 외국인들이 연일 우리나라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 중 하나라고 한다. 다른 정책 현안들에 있어서는 국론이 분열되어 있어도 외국인들로부터 국내 재벌총수들의 경영권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모두들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십분 이해가 된다.

국내 재벌총수들의 경영권을 외국인들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가장 많이 제시되는 것이 장기 성장기반의 저해와 공정한 경쟁여건의 확립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설득력에 있어서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먼저,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은 기업에서는 외국인들이 무리한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기 때문에 내부유보이윤이 줄고 따라서 투자가 줄어 장기 성장기반이 저해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기업재무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주장의 논리적 타당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장기 성장기반을 저해하면서까지 배당을 주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가 하락하게 되는데, 이는 오히려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배당을 많이 준 기업은 줄 여건이 되기 때문에 준 것이지 외국인들의 위협 때문에 배당을 많이 준 것이 결코 아니다.

둘째, 미국 등 선진국에서 여러 가지 경영권 방어수단을 인정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와 유사한 경영권 방어수단들을 인정해주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제도가 더 우수하다는 가정 = 아래에서나 가능한데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하는 국내외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 가정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연구결과들이 경영권 방어수단을 갖춘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서 기업가치는 물론이고 수익성과 매출·성장률에 있어서도 뒤진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고 있다. 미국이 80년대 후반부터 각종 경영권 방어수단을 인정하게 된 것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미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각주가 본사를 자기 주에 유치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주법에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셋째, 공정한 경쟁여건을 이야기하면서 경영자 또는 재벌총수의 입장에서만 공정성을 따진다는 것이다. 기업은 경영자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주주도 있고 채권자도 있다.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수단 부여는 외국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내 투자자들도 주식시장에서 등을 돌리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넷째, 더 중요한 사실은 국내 재벌총수들에게 결코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올릴 수 있다. 출자총액제한으로 계열사간 출자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순자산의 25%까지 가능하고 수많은 예외조항을 통해 출자가 가능하다.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은 현재 30%까지 인정되고 2009년 이후에도 15%까지 인정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계열사 수, 내부 지배구조 개선 등을 이유로 출자총액제한으로부터 졸업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권 방어수단을 추가로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외국인의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키고 국내 투자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영권 방어는 필요 없다고 본다.

김우찬(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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