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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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 임종철
  • 승인 2010.11.10 07: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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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불법체류자의 기억

 

얼마전 10여년을 쓰던 낡은 허리띠 하나를 버렸다. 치과 근처의 낚시 가게에서 산, 군용허리띠 같은 거였는데 너무 낡아서 더 쓸 수가 없었다. 좋은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산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하거나 할 때 쓰던거라 나름 많은 추억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내 기억 하나도 되살아났다.

개원한지도 나름 오래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개인적인 일도 있지만 IMF 사태나 9.11, 국제금융위기 같은 변화도 겪고, 월드컵 같은 기억에 남는 일들도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기억도 IMF 때의 일이다.

그 시절, 경제위기에 겹쳐 서울 변두리인 근처 경제상황은 점점 안 좋은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앞에 말한 그 낚시점도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날 그 가게 아주머니가 우리 치과를 찾았다. 먹고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돈을 벌러간다고. 관광비자로 가서(지금같이 일본 무비자입국이 되질 않았던 때다) 불법체류하면서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면 수입이 괜찮다고 했다. 말이 쉽지 가족과 이웃이 있는 이 땅을 떠나 낯선 땅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살아간다는게 보통 일이겠는가.

언제 올지 기약조차 없다보니 가기 전에 이를 하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수줍게 웃으면서 사정을 이야기하는 분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잘해준다고 했는데, 내 수준에 잘해준다고 한게 문제였나 보다. 보철을 하고 임시접착을 하고 갔는데 다음에 영구접착을 하기 위해 왔을 때 제거가 되질 않았다. (사실 그때 새로 해야 했다.)

그래서 다음 약속을 잡았는데 어찌어찌하는 사이에 그 분이 떠나기로 한 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그 분을 뵐 수 없었다. 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불법체류자가 되어야 하는 신세를 이야기하며 한숨 짓던 그 쓸쓸한 미소의 기억만 남겨놓은 채. 그 후 그분이 겪었을 생활의 어려움에 내 부족함으로 인해 고통을 더하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얼마전 방송을 보다가 60년대 독일에 취업한 우리나라 광부들의 이야기에 덧붙여진 “독일은 노동력을 원했지만, 노동력이 아니라 인간들이 왔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에 다시 그분을 생각했다.

불법체류라면 웬지 밝은 대낮에 서둘러 빠져나오던 뉴욕 할렘의 기억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안산 원곡동 분위기를 떠올리는 나이지만 이런 기억 때문에 그런 길거리 어딘가에 있을, 수줍어하며 인심좋던 ‘그 분’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해봤다.

그리고 다행히 그곳에서 어느 마음씨 좋은 치과의사를 만나 불법체류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다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래본다. 나도 내 주위의 버마인, 베트남인들을 각자의 사연이 있는, 자기가 속한 가정과 사회의 일원으로 대해야 한단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내 죄스런 마음이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세상은 돌고 돈다고 하니까.

임종철(김진치과 원장, 건치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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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10-11-18 10:07:00
빠지지는 않았을것 같은데요...잘 쓰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전민용 2010-11-11 10:41:59
사연과 관계와 이야기를 담고있는 인간으로 보는 것 좋은 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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