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tal Antonia's line]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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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tal Antonia's line]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 신순희
  • 승인 2004.12.22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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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병리학자, 연세대 김진교수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라 했고, 어의론자 알프레트 코지프스키는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고 했다. 그렇다. 말로만, 또한 글로만, 한 인간을 얼마나 제대로 알것이며, 또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겨우 몇 시간의 인터뷰로 나는 김진 교수를, 또는 그 누구라도 결코 알 수 없으리라.

그러나 자기 기만의 한계만 핑계삼기에는,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자산들이 너무 크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신 김진 교수, 그리고 오랫동안 그에게로 가는 지도를 기다린 소망들, 또 덴탈 안토니아스라인을 바라보는 시선들 혹은 그 어떤 무언의 요구들 모두가 충분히 과분함을 나는 알고 있다.

197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한 선생은 동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에서 석,박사를 수료하고, 1982년부터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구강병리학 강의를 시작해 1984년 정식 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1993년 연대치대에 구강병리학교실이 신설되어, 현재는 교실 주임교수 및 연대치대 구강종양연구소 소장, 바이오벤쳐 기업 Tigen Biotech의 연구위원, 대한구강악악면병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렇게 '단지 한우물을 판 학자'라고만 선생을 표현하기에는 모자람이 너무 크다.

선생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선생은 '토종'이다. 피자건 중국요리건 그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마무리는 김치로 해야 하는 '입맛 토종', 단소를 불고 창을 하며, 판소리를 즐기는 '문화 토종', 구강병리학이라는 서양 학문을 하면서도 그들이 거대하게 키운 고목 나무에 잎파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작은 나무라도 내 나무를 키우고자 노력하는 '학문 토종'이다.

이런 토종으로서의 정체성 자각은 구강병리학자로 처음 미국에 갔을때, 글로벌 스탠다드, 글로벌 리더를 자칭하는 그들의 능력이 개인적으로는 전혀 선생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확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병리학자 김진은 세계 1등이 될 수 없는가?' 그 지극한 물음에 대한 집중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조적 주변부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실험기계를 동원한 새로운 실험법이 나오면, 네이쳐같은 세계적 잡지에 소개되면서 권위를 얻고, 곧 전 세계의 학문 구도가 그것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스템의 반복 속에 우리는 영원히 주변부나 타자일 수 밖에 없으며, 또한 그 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계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이 있고, 그것을 글로벌 스텐다드 삼아 추종하면서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각국 정부가 있음을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면서 선생은 결국 경제적, 정치적 종속관계로부터 학문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 자각이 반성과 사명감으로 이어져 우리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토종' 김진을 만든 모태가 되었다.

그 자각은 또한 서양학문인 구강병리학 학자, 김진이 서양학문의 한계인 물질연구의 한계를 바로 볼 수 있게 했으며, 그 한계를 뛰어넘는 길은 "그들이 가진 금덩어리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다이아몬드에서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즉, 우리안의 다이아몬드가 있음을 깨닫고 학문적 주체성에까지 접목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세계화란 선진국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일 뿐이라 말씀하시는 선생은 '반세계화주의자'이다.

선생이 현재 읽고 계시다며 추천해 주신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에서 물리학자인 카프라는 "물질연구의 한계는 동양사상의 직관으로만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구 중심의 현대 물질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동양적 직관을 제시한 이가 서양의 물리학자라는 점이 신선하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분리된 삶이란 바람직 하지 못하다"는 선생의 말속에 선생의 삶을 관통하는 진지함의 근원이 있다. 머리의 자각과 가슴의 열정, 그리고 실천하는 삶이 바로 선생의 삶이였기 때문이다.

선생은 초등학교 1학년 산수시간에 꼴등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손가락이 열개밖에 없어 열개가 넘어가면 눈으로 계산 결과를 확인하지 못했고, 명확히 이해되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하는 기질때문에, 양말벗고 발가락까지 세곤 했다는 일화는 선생의 고지식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철저하고 단단한 인식의 기반을 입증한다.

선생은 '학자이자 교수'이다

병리학 땡시가 너무 좋아 구강병리학을 선택했다는 선생에 비해, 치과대학 6년 내내 얼렁뚱땅 시험을 봤던 나는 너무나 어려웠던 땡시의 슬픈 추억이 떠오른다. 나에겐 발가락까지 동원해서 앎의 인식을 공고히 하려는 치열함이 전혀 없었기에 땡시가 그렇게 어려웠던가 보다.

▲ 인터뷰를 마치고 김진교수의 손을 맞잡다
학문 자체는 선생의 말처럼 무성(gender-neutral)이지만, 그 학문이 존재하는 인간사회라는 기반은 그렇지 않기에 젠더에 기반한 정치가 작동하는 교수 사회에서 여성인 선생이 지금의 위치에 이르는 길이 무난하지는 않았으리라.

대학에서 구강병리학 교실을 만드는데 10년간 투쟁을 해야 했고, 또 현재는 대한 구강병리학회 회장으로 구강병리학 임상과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계시는 선생에게, 학생과 환자와 술자와 치과계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판단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는 순수한 상식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상식을 실천하고자 하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오해와 배척, 모두를 겪었으리란 짐작이 든다.

선생의 말처럼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시각을 가질 때는 특별한 백그라운드가 있는법. 성장기는 선생의 특별한 백그라운드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예술가 아버지를 둔 덕에 결손가정 아닌 결손 가정의 둘째 딸로 자라면서 보기보단 심한 정신적, 물질적 고생을 겪었던 어린 시절을 선생은 오히려 내면과 친숙해지는 소중한 시간으로 겪어냈다.

또 여고시절 겪었던 학내의 빈부차와 그로 인한 인간 권력관계의 목격은 선생의 비판의식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돼주었다. 이렇듯 불운과 좌절이라는 처절한 삶의 경험을 달구어 만들어 낸 강고한 내면의 힘은 이후 선생의 치열한 탐구들에 기반이 되었다.

종교가 화두였을 때는 종교적 극빈의 삶을 직접 실천하기도 했고, 민중이 화두였을때는 종교와 민중, 두 사상의 접목에 매달리기도 했으며, 사랑이 화두였을 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에 관한 학문적 탐구의 극한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런 깊은 사유의 끝에 남녀간의 배타적 사랑이 배제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선생은 현재 '비혼'이다

선생의 삶은 사유의 끝에 자발적 선택으로서의 '비혼'이 얼마나 충만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안정된 정신세계, 소박한 삶, 열린 사랑 속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부재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겪은 적이 없지는 않았으나, 사회의 주류이며, 비혼인 선생이, '성별 권력관계 속에서의 여성 억압'을 자각하기에는 기회가 조금 모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선생 스스로의 자평이다.

그러나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자각이 없다면 '정체성도 없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본 선생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다.

어쩌면 선생의 머리가 미처 언어화하지 못하는 사이 선생의 가슴은, 주변부의 한계속에서 내안의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시선으로, 이미 따뜻한 자매애를 구현해 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은 1999년 서울시여자치과의사회 회장시절 '중국거주위안부 할머니 후원 여자치과의사회'를 제안해 만들었고, 지금까지 회장으로 지속적인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당시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조명이 지금보다 부족한 시기였고, 따라서 도움의 손길이 더욱 필요했던 때였다.

그때 여자치과의사회 회장이었던 선생이 "민족의 억압과 여성으로서의 억압과 사회의 억압적 시선"이라는 3중고를 겪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후원회를 조직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매애의 실천이었다. 그것은 또한, 이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으나, 내 가정과 내 클리닉 안에서 폭좁은 삶만을 살고 있는 여성치과의사들에게도 소중한 연대의 손길이었다.

선생의 엄격함에도 선생을 사모하는 여성후배들이 많은 것이 쉽게 이해된다

선생은 현재 가정에서 자매들과의 공동체적 가족 관계를 갖고 있고, 또 장기적인 미래에는 핏줄이 아닌 정신적 가족 공동체를 꿈꾸고 있으며, 언젠가는 간호대학이나 치위생과 대학을 만들어 학자로, 또한 교육자로 진정한 교육을 구현해 보고픈 꿈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지 않으려면, 많은 팬과 함께 많은 오해를 갖게 된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교수로는 드물게 현실 참여의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김진교수도 그러하다. 선생은 많은 사랑과 많은 오해를 동시에 갖고 있다. 자타의 시선 모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그의 존재는 치과계의 여성학 계보에서 어느날 문득 땅으로 꺼져 버릴 수도 없는 중요한 지점에 우뚝 서있다는 사실이다.

선생은 '경험에 기반한 철저한 사유, 그리고 자아와의 합일추구와 실천' 이라는 방법론에 기반해 '민족'이라는 화두로 정체성의 자각을 스스로 이루었다. 민족이 근대의 개념에 머물고, 여성주의는 탈근대의 추구라는 점이 배타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듯하지만 어쩌면 그 둘은 결코 다르지 않은 개념이다. 제3세계 민족인 우리는 '민족'의 자각이 이미 주변부, 비주류에 대한 애정과 감정이입의 시선을 함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타성은 선생의 한계인 동시에 시대의 한계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후배들에게는 성장의 지점이요, 과제일 것이다.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더 멀리 볼 수 있"지 않은가. 선생이 발견한 우리안의 다이아몬드가, 그들이 갖지 못한 직관적 대안이, 여성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음을 증명해 내는 것이야 말로, 선생의 어깨 위에서 우리 후배들이 이루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선생과의 만남에서 나는 '진실한 본질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상식인', '인생의 수 많은 도전 앞에 언제나 정면으로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지극한 학자'를 보았다. 그것은 흔치 않은 놀라운 발견이다. 선생은 존재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과 같다. 꽃밭이 아닌 '진흙속에서 피어난 연꽃'. 참으로 아름다운 여성리더를 만났다.

이제 꽃에서 열매를 가꾸어 내는 것은 후배들의 몫일 뿐이다.

신순희(서울 이대푸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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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옥 2004-12-24 11:30:14
잘 읽었습니다....

송학사 2004-12-23 16:24:23
그러나 마구 접할 수 없는 가시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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