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의 페류여행기] 고고 인류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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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페류여행기] 고고 인류학 박물관
  • 박종순
  • 승인 2004.12.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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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스까 토기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서 잉카 이전의 여러 문명들, 그리고 잉카와 식민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유물들을 가장 잘 분류하고 가장 보기 좋게 전시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설명들도 되어 있어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은 박물관으로 여겨졌다.

▲ 떼요 오벨리스크 부분
원래는 처음 리마에 도착했을 때 보려했으나 월요일 휴관일에 걸려 보지 못하고 남겨 두었다가 귀국 비행기타기 직전 남는 시간에 보게 되었는데, 오히려 마지막으로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곳에서 국립박물관이 새로 들어서게 되었을 때 여러 유물들을 가져갔다는데, 그러고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차빈시대의 신상들을 오리지날로 볼 수 있는데, 차빈 초기 최고신 란손만 원래 있었던 차빈 데 완따르 신전에 남아 있고, 중기 떼요 오벨리스크와 후기 라이몬디 돌판은 모두 이곳에 있다.

떼요 오벨리스크는 페루의 국보급 고고학자 훌리오 C. 떼요가 발견한 신상으로 전체적으로 악어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 몸체에 온갖 동식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하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 쪼그려 앉은 미이라
차빈시대의 토기 또한 전시되어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뿌까라 문명도 따로 소개 되어 있었으며, 빠라까스 문명도 자세히 소개 되어 있었는데 빠라까스 문명은 특히 쪼그려 앉은 미이라와 매장방식, 두개골 변형과 두개골 절개수술을 받은 두개골, 또한 빠라까스 문명의 특징인 미이라를 감쌌던 직조물 등 모두 미이라와 관련된 전시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라파엘 라르코 박물관에서 언급했듯이 모체의 토기들이 정말 분류가 잘 되어 전시되고 있었고, 나스까의 토기 또한 비슷하게 잘 분류되어 있었다. 그 중 특이했던 것은 나스까의 지상그림에 그려져 있는 거미, 콘돌, 원숭이가 토기에도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그림 소재였는지, 아님 그런 그림에 담긴 어떤 소망이나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스까 토기의 문양들은 정말 귀엽고  정감 있는데,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나스까는 지상그림도 지상그림이지만 나스까 토기 또한 그에 못지않은 가치 있는 예술품이었다.

▲ 나스까 토기
그 외 찬까이, 와리, 치무, 람바예께의 토기들, 그리고 치무와 시깐의 금세공품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예술품들이었고 의외로 잉카는 그 명성에 비해 전시실도 작고 전시물도 많지는 않았다. 토기 몇 점과 ‘끼뿌’라는 기록보조 기구, 그리고 마추피추와 몇몇 유적지의 모형이 있는 정도였다.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연대기적으로 전시를 하다보니 그랬는지 식민지시대의 유물도 전시되고 있었다. 주로 유화등 그림이 주를 이루었고 종교적인 그림들이 많았다. 사실 식민지 시절도 300년이나 되는 중요한 역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잉카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소홀해지기 쉬운 부분이었는데, 몇몇 잉카와 프레잉카의 유적을 제외한 주요 유적과 도시의 모습들은 거의 식민시절의 유적들이었다. 물론 역사적 주체가 달라짐에 따른 현격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런 여러 요소들의 복합체가 지금의 페루를 이루고 있는 것이리라.

▲ 잉카시대 여러가지 기록을 위해 사용된 매듭인 끼뿌
박종순(서울 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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