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노조는 결국 국보법에 유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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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노조는 결국 국보법에 유린당했다"
  • 편집국
  • 승인 2004.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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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통신(현 KT) 해고자 이해관 씨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한 우리가 국가전복세력이라니요? 국가보안법 때문에 말도 못할 탄압을 당했어요."

지난 1995년 당시 한국통신노조 부위원장이었다가 10년 가까이 해고자로 남아있는 이해관 씨는 분노를 터뜨렸다. 국보법은 학생운동이나 정치운동에만 적용된 게 아니라 노조활동 탄압에도 동원된 대표적 악법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그해는 ‘총액임금 가이드라인’이라는 임금인상 상한선이 부활됐고, 유덕상 당시 위원장 중심의 민주집행부가 들어선 정부투자기관 한통노조가 전체 임단투 판도를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더욱이 공기업 임금억제정책에 억눌려온 조합원의 불만이 촉발되면서 4월2일 임투전진대회에는 조합원 4만여명이 참가하는 등 활기를 띠어갔다.

그런데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5월19일 조찬간담회에서 느닷없이 "한통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라며 "노사관계가 아닌 국가안위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한 것.

임금투쟁에 '국가전복세력' 낙인 뒤 조직사건으로 엮어

바로 그날 간부 64명에게 검거령이 떨어지면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인터넷 폐쇄에 이어 노조 사무실 폐쇄, 노조간부 집 수색 등이 잇따랐다. 때를 같이 해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이 단골메뉴인 '친북 색깔공세' 차원에서 "한통노조가 성당에서 농성하는 것은 북한이 시킨 것"이라는 망언을 쏟아내기에 이른다. 결국 박홍 총장은 이 일로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7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노조에 물어야 했다.

이해관 씨는 "그 때 문제가 될 만한 책 한 권이라도 나왔다면 우리는 아마 국보법으로 왕창 엮여 들어갔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잡아갈 명분이 없어진 검찰은 '불순세력이 개입했다'는 발표에 이어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올 일 없던' 노조간부들 대신 임투교육을 했던 전국노동운동협의회 지도위원을 배후로 지목해 국보법상 '이적단체 결성'과 '고무찬양' 등의 혐의로 이 단체 간부들을 줄줄이 구속해 조직사건으로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명동성당에 상황실을 차리고 투쟁을 이어간 노조간부 37명도 그 뒤 모두 잡혀가 "배후세력이 누구냐"는 집중적인 추궁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들은 1심 재판에서 모두 풀려났다. 적용된 법조항이라고 해야 6개월 전에 이미 노사합의로 끝낸 농성을 빌미로 한 '단순업무방해'와 '폭력'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엄청났다. 이 일로 노조간부 대부분이 해고됐으며, 유덕상 전 위원장을 비롯해 네 명이 아직도 복직을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타격이 컸던 건 민주노조를 일궈보고자 했던 간부 대부분이 조직사건으로 엮어 들어가면서 현장에 공백이 생긴 틈을 비집고, 정부가 직권중재를 앞세워 임금가이드라인 범위 안에서 임금인상을 결정하는 등 현장활동의 맥을 끊어버린 점. 결국 국보법을 들이댄 것만으로도 정부는 노동통제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이해관 씨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짓밟히고 현장이 깨져나가는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국보법은 법적용 여부를 떠나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며 "모든 운동을 억압하는 국보법이야말로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승희(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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