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27]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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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27]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
  • 전민용
  • 승인 2011.01.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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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공감의 시대(원제는 The Empathic Civilization)는 주요 언론사가 지난 연말에 선정한 올해의 책에 대부분 들어가 있다. 짧지 않은 분량(800쪽이 넘는다)에 쉽지 않은 내용인데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두루 받았다. 불안과 위기로 특징지어지는 현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상당한 근거를 들이대며 대안과 전망을 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공감(empathy)을 다른 사람의 정서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공감에 앞서 등장한 동정(sympathy)은 다른 사람의 곤경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는 것이고,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1부인 ‘호모 엠파티쿠스’는 공감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다. 그는 탐욕적이고 물질적이고 쾌락을 쫒는 인간이라는 근대적 인간 규정에 대해 반론을 펼친다. 특히 성충동과 죽음 본능을 주장한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을 들여 반박 한다. 그는 하위징가나 수티 등의 연구결과를 통해 인간화의 핵심요소가 놀이와 유대감, 사회성 등임을 설명한다.

▲ 공감의 시대
생물학적으로는 거울신경세포가 발견되면서 인간 뿐 아니라 일부 동물들도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을 자신의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고 이 세포를 공감뉴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가장 성숙한 형태의 공감적 반응은 전체 집단이나 심지어 동물 전체의 고통을 자신의 고민으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인류 전체적으로 보아 공감 능력은 확장되고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는 신앙적 인식과 합리적 인식은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둘 다 존재에 대해 비실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본다. 반대로 공감 영역을 개발하고 인간을 성숙한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느낌과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감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에 참여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고, 언어를 발전시키고, 설득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적이 되고, 문화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나는 참여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대전환하면서 실체적 경험을 중시하는 공감이 역사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는 이성의 시대에 핵심 개념이었지만 이 자유는 노동을 통제하고 재산을 확보하는 능력으로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고립될 수 있는 자유였다고 해석한다. 반면 자유에 대해 실체적으로 접근하면 인생의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런 삶은 우정과 애정과 소속감의 삶이며, 관계에서 가능성을 찾는 삶이고, 이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불굴의 의지로 싸워 쟁취하는 자유가 아니라 믿음을 토대로 자신의 취약한 점을 드러내고 개방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논리로 공감이라는 안경을 통해 자유 뿐 아니라 진리, 평등, 민주주의, 삶의 유한성 등을 재정의 하고, 신앙과 이성도 경험을 이해하고 다루는 수단으로 실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감의 시대 속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2부 ‘공감과 문명’은 저자가 에너지제도와 소통 방식, 생산 방식이라는 문명사의 변화를 통해 본 공감의 역사이다.

에너지 제도가 질적으로 달라지면 에너지의 흐름을 관리하기 위한 사람들의 소통 방식도 변하고 이에 따라 사고방식도 변한다. 수렵채집 사회는 예외 없이 구두 문화이지만, 관개농업 사회는 문자가 있었고 곡식을 생산 저장 분배하는 데 필요한 계산법을 고안해 냈다. 석탄, 증기 기관, 철도로 대표되는 19세기의 1차 산업 혁명도 이를 조정 관리할 인쇄매체가 필수적이었다. 20세기 초의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은 내연기관과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2차 산업 혁명을 관리하고 마케팅하는 데 필요한 중앙집중식 통제 메카니즘이었다.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 제도 역시 인간의 의식을 바꾼다. 구두 문화는 신화적 의식에 대응하고, 경전 문화는 신학적 의식을 낳았고, 인쇄 문화는 이데올로기적 의식을, 중앙집중식 전기 문화는 심리학적 의식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의식의 각 단계들은 ‘우리’와 ‘타인’의 경계선을 긋는다. 신화적 인간에게 낯선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나 괴물이다. 신학적 인간에게 그들은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이다. 이데올로기적 인간에게 그들은 야만인이고, 심리학적 인간들에게는 병자가 ‘타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에너지-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인류의 공감 능력은 확대되고, ‘타인’은 점차 친숙한 존재가 되어 왔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에 비례하여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고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동 지방, 인도, 중국 등 거대한 관개농업 제국은 인간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진보시키고 보편적 공감을 개화시켰지만, 이들의 몰락은 토양의 염분과 퇴적 작용의 변화에서 비롯된 엔트로피 수치의 증가라는 열역학 제2법칙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로마 역시 도로와 우편제도, 방대한 인적 교류 등을 통해 공감의 문명을 최대로 발전시켰고 특히 초기 기독교 문화는 보편적 공감과 동정의 문화를 확산시켰다. 하지만 로마도 더욱 증가하는 엔트로피의 피해와 공감의 물결이 정면충돌하는 과정에서 종국을 맞이했다. 더 이상 정벌과 약탈로 제국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로마가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의지하던 농업이 토지 비옥도가 나빠지면서 생산량이 급감하고 제국을 지키기 위한 비생산적인 군대는 늘어나면서 자멸의 길로 빠져 들어 갔다는 것이다. 에너지법칙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결과로 숲은 사라지고, 토양은 침식되고, 인간은 가난과 병에 시달리며 유럽은 500년 동안 암흑기에 들어간다.         
 
권력의 중심은 수천 개의 봉건 영토로 조각나고, 상업은 위축되고, 생계형 농업이 주종을 이루고, 학문은 쇠퇴하고, 도시 생활은 붕괴된 유럽에 10세기가 되면서 새로운 에너지 체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말과 수력과 풍력이 사용되고 이것이 인쇄 혁명과 맞물리면서 원산업혁명을 이끌고 인구는 증가하고 도시화가 촉진되고 개인화와 자의식이 깊어졌다. 주 연료와 산업 자원으로 쓰였던 목재 고갈의 위기를 석탄과 증기기관, 철도를 통해 극복하면서 1차 산업 혁명을 이루었고 교통과 이동의 혁신, 인쇄술의 발달, 공교육의 발전, 노동 인구의 증대 등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제를 이루었다.

석유 사용과 내연기관과 자동차와 전기의 발명은 세계를 2차 산업 혁명으로 이끌고 이와 연결된 중앙 집중적인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제가 등장한다.

3부 ‘공감의 시대’에서 저자는 화석연료와 우라늄이라는 엘리트 에너지의 사용은 심리학적 의식을 이끌며 지구적 차원에서 공감의 시대를 확대해 왔지만 엔트로피의 증가에 따른 한계에 봉착해 있음을 강조하고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제를 열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석유시대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고, 화석 연료의 사용과 축산의 결과로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위험할 정도로 증가하여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고조되고 있다.
저자는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의식을 대폭 재조정하여 다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길 뿐 임을 역설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최소 수준의 경제적 요건이 충족 되었을 때 그 이상의 재산 축적은 우울, 걱정, 질병과 불만족 등 도리어 행복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 성공의 기회를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보다는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유러피언 드림을 강조한다.

그는 다가올 3차 산업 혁명은 21세기 분산에너지 제도와 분산 정보통신혁명이 이끌 것이라고 예견한다.

석탄, 석유, 가스, 우라늄처럼 일정한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엘리트 에너지와 달리 분산에너지는 햇빛, 바람, 쓰레기, 바다, 지열, 물 등 어디서나 다양한 규모로 발견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말한다. 또한 생산하는 에너지의 30-40%를 소비하는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인 빌딩부터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건물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 더해 수소 이용법 같은 에너지의 저장법이 만들어져야 한단다.

그는 향후에는 에너지 민주화의 길로 가야하고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산된 재생 가능 에너지는 어느 곳에서도 생산 가능하므로 가난한 나라에서도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길이 열리고, 에너지가 모든 개인의 사회적 권리이자 인권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분산 통신 혁명은 네트워크 사고방식, 오픈 소스 공유, 통신의 민주화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분산자본주의는 대규모 협업과 분산 네트워크 체제이다. 자발적인 수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 지혜를 창조하고 있는 분산컴퓨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미 리눅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방식이다. 분산자본주의는 경쟁보다 협동이 대세를 이루고, 접속권이 재산권보다 중요해지고 삶의 질을 추구할 것이라고 한다.

매우 방대한 내용이다. 특히 경제 위기, 지구 온난화 등 위기의 시대에 3차 산업혁명과 분산자본주의라는 긍정적 대안을 제시한 것은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공감의 확장을 통해 재구성한 것은 단순하고 도식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을 경쟁하고 이기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 뿐 아니라 저자처럼 공감하고 이타적인 존재로만 보는 것 역시 실체적인 접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인류는 경쟁자, 협조자, 응징자 등의 혼합전략으로 문명을 만들어왔다는 견해가 더 타당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이성과 감성 중에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보다는 이성, 감성, 직관과 감각이 균형 있게 발달하고 작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그럴 듯 해 보인다. 

물론 개인주의와 경쟁이 주를 이루는 미국에서 구부러진 자를 펴기 위해 반대쪽으로 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자력갱생과 승자독식의 정글 사회에서도 이 책의 관점은 바람직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처럼 공감이 더 확대되고 삶의 질을 추구하고 모두에게 더 따뜻한 사회가 꼭 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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