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29]새벽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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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29]새벽의 나나
  • 전민용
  • 승인 2011.02.10 1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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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서, 문학과 지성사

 

‘새벽의 나나’는 태국 나나역 근처 소이식스틴이라는 거리의 이야기이다. 나나역은 우리나라의 청량리역, 16번가인 소이식스틴은 청량리 588번지에 해당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거리에는 길이 있고, 이 길을 중심으로 건물이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새벽의 나나
이 소설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큰 미덕은 충실한 자료조사와 현장조사이다. 독자들에게 간접 경험을 통해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작가는 상당한 기간 동안 현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 소설을 완성 했다. 워낙 자료가 많다 보니 마지막에는 뭉텅이로 사연들이 잘려 나가고 주인공마저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인 청년 레오는 아프리카에 가는 길에 별 생각 없이 며칠 태국에서 지내다 운명처럼 매춘부인 플로이를 만나고 그녀에게 한없이 끌리게 된다. 여기에 비현실적인 전생의 기억이 끼어드는데 레오와 플로이는 500년 전 애틋한 사연을 가진 부부였다.

이상한 설정일 수 있지만 레오는 태국에만 오면 사람들의 전생이 보인다. 레오는 플로이의 집에 여러 매춘부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매춘부의 거리 소이식스틴에서 살아간다. 충실한 자료조사답게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매춘부들과 이웃들의 삶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자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이’에는 온갖 종류의 자유가 넘친다. 그 중에서도 이 거리는 상상 속에나 가능한 인간의 모든 욕망들이 현실화 하는 곳이다. 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것 같은데도 그들만의 질서가 있고 평범한 세상보다 더 진한 인간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약과 매춘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거리에서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레오는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 이 거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이 거리와 플로이를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곤 한다.      

이 소설은 레오의 네 번에 걸친 태국 방문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크리스마스 무렵 태국을 처음 방문한 레오가 플로이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15년이 지난 크리스마스에 레오가 매춘부 라노를 찾아 네 번째로 태국을 찾는 시점에서 끝난다.

한국인 레오를 내세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지아, 플로이, 라노로 이어지는 매춘부 여신 3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물론 그 중 플로이 시대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플로이 이전의 여신이었던 지아는 구전과 레오의 꿈과 환상 속에서 나타나고, 매춘부 여신으로의 라노는 미래의 시작으로 마지막에 잠깐 소개될 뿐이다.

거리의 역사와 풍경과 삶의 모습들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이 소설에는 상당히 많은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교차한다. 전생, 환생들이 수시로 등장할 뿐 아니라 이것이 인물들의 성격을 주요하게 규정하거나 소설 속 인간관계를 연결하는 주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도마뱀이나 바퀴벌레가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술잔이 있고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함께 살아가거나 살로 한 방을 가득 채우는 뚱보 인간이 있는가 하면 진짜 식물이 된 식물인간도 등장하고 갑자기 물이 방안을 덮쳐 사람을 죽여 버리기도 한다. 이런 초현실적인 설정을 매우 사실적인 현실 묘사들과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리게 엮어 낸 것도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너무 정형화시켜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사건을 끌고 간다는 느낌이다. 예컨대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와 플로이 사이의 심리적 갈등이나 공감에 대한 이야기들은 억지스럽고 밋밋하다. 레오나 플로이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에 대한 설명도 너무 미흡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충실한 사실적 묘사와 풍부한 소설적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가진 소설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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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심 2011-02-17 03:23:44
여행자의 눈으로 보는 타인의 삶과 풍경은 매우 탈색되어 있으면서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매개체를 거쳐서 사물을 받아들입니다. 즉 땅에서 한 두자 떠올라 사는 듯하다고 할까요. 책 소개 덕분에 지하철을 타고 다녔던 방콕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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