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엥겔의 계수와 서민경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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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엥겔의 계수와 서민경제를 위하여
  • 김기현
  • 승인 2011.02.24 13: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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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김기현 논설위원

 

고등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졸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엥겔의 법칙’에 대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졸았던 사람일지라도 시험공부를 했다면 틀림없이 그 대목에 밑줄과 별표를 그려놓았을 것이다.

독일의 통계학자 엥겔은 19세기 벨기에 노동자 가계의 지출 항목을 조사하던 도중, 소득이 낮을수록 소비 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새삼스레 경제학 책을 들출 필요는 없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계 소득에서 다른 무엇보다 식비가 우선적으로 지출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바로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선조들의 지혜인 것이다.

아무튼 가계에서 차지하는 식비와 소비 지출의 비율을 엥겔의 계수라고 부르고 빈곤한 가정일수록 이 계수가 높은 현상을 엥겔의 법칙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성장과 함께 감소하던 이 엥겔 계수가 90년대 중반 무렵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증가했던 적이 있었다. 엥겔의 연구와는 달리, 소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식비의 지출이 늘어난 이유는 다름 아닌 외식비의 증가 때문이었다.

당시 외식비가 식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30%를 넘어섰던 걸로 분석되었는데, 이는 80년대 초반 식비에서 차지하는 외식비의 비율이 5%가 안 되었던 것에 비해 불과 10여년 사이에 무려 6배가 늘어난 셈인 것이다.

소득이 상승하면서 식비가 증가했던 이런 현상을 보고 엥겔의 통찰력이 부족했다고 탓할 수는 없다. 엥겔의 시대에 식비는 말 그대로 ‘먹는’ 비용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거기에다 ‘즐기는’ 문화적 비용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90년대 중반) 이렇게 엥겔 계수가 높아진 현상은 결코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며, 이는 외식문화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이후에는 다시 엥겔계수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외식비 증가가 임계점에 달한 측면과 IMF이후 실질소득의 하락에 따른 소비성 식비지출의 감소가 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 엥겔 계수의 변화는 엥겔의 고찰대로 전체 소득이 증가하면서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94년) 29.1%이던 엥겔의 계수는 2000년에 13.8%로 대폭 감소한 이후 소득 증가와 함께 더욱 더 감소하기 시작해 2007년에 11.6%에 이르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함께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11.7%로 약간 상승을 하게 되고 2009년에는 12.5%로 상당한 증가에 이르게 된다. 

급기야 지난해 2/4분기에는 13.3%로 2001년 수준으로 복귀했고 3/4분기에는 14.9%에 달하는 등 우려할만한 수준의 증가폭을 보였다. 더군다나 저소득층의 증가율은 훨씬 더 가파르게 진행되어 작년 3/4분기에 21.7%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처럼 엥겔 계수가 최근 가파른 증가를 보이고 있는 것이 90년대 중반처럼 외식비가 늘어나는 등 일종의 문화적 향유를 위한 소비지출에 따른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실질소득 하락과 고용불안에 따른 가계 지출의 감소, 더불어 살인적으로 올라가는 식료품(생필품)의 가격 탓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런 문제들은 구조적, 정책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어 쉽게 고치기가 힘들며,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될수록 가진 자보다는 저소득층에 훨씬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빈부격차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며, 이는 심히 우려스러운 점이다.

작년 경제성장율이 무려 6.1%에 달했다고 한다. 2002년 이후 최고의 성장률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서 이룩한 것이어서 그 값어치는 훨씬 높은 것이라는 현정부의 자화자찬이 연일 계속되기도 하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우리 경제가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없다.

오히려 취직하기 힘들어졌다고 울상인 젊은이들은 늘어났으며, 하염없이 없는 손님을 기다리는 자영업자들의 탄식은 길어져 가고만 있다. 이뿐인가? 40-50대 가장들은 실업의 현장으로 내몰려 대리운전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며, 엄마들은 거기에 한 푼이라도 더하기 위해 식당, 마트 등으로 떠밀려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거기에다 살인적인 식탁물가의 상승은 외식도 끊고, 고기도 끊고, 생선도 끊고, 과일도 끊으니 저절로 다이어트 식단이 되더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전형적인 인위적 경제부양정책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고용 감소(불안)나 물가상승 같은 부작용은 감수하더라도 성장률, 증시 등은 끌어올리겠다는 현 정부 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즉, 대기업 중심의 수출 위주 정책, 4대강 사업 등과 같은 토건사업의 확대, 증시부양을 위한 개입, 복지 규모의 축소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정책이 이런 현상을 낳게 하고 있다. 결국 높은 경제 성장의 과실은 대기업이나 부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서민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서민경제가 무너지면 국가경제 전체가 무너진다. 때문에 거시적인 경제정책을 논할 때에도 항상 서민경제는 그 중심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앞서 본 것처럼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서민무시’ 경제정책이다. 때문에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위기의 국가경제를 빨리 살려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 정부는 파이를 키워야 갈라먹을 것이 있다는 거짓 주장을 철회하고, 고용안정과 확대, 복지정책과 예산의 확대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4대강 사업을 중지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며, 살인적인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정책들(공기업의 민영화 등)을 신속히 폐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단기적인 물가안정책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근본적인 서민경제정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국민들의 단호한 심판을 피해 가지 못할 것이다. 경제의 실패가 곧 정권의 실패로 이어지는 여러 나라의 숱한 경험들이 이것을 잘 웅변해 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올해는 경제가 조금 어렵더라도 서민들의 삶에 희망이 되는 소식들이 자주 전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엥겔의 계수가 오른들 그게 또 무슨 대수일까?

김기현(본지 논설위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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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홍 기자 2011-03-02 17:34:10
필자가 치과의사가 아닌 줄 알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전민용 2011-02-24 14:49:58
영원한 시험문제겠죠. 심도깊은 좋은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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