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의 페루여행기] 와라스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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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순의 페루여행기] 와라스 가는 길
  • 박종순
  • 승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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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에서 다음 여행지는 와라스였다. 처음엔 계획에 없었던 곳인데 와라스가 너무 좋은 곳이라고 여기저기에서 들어서 조금 무리를 해서 3일을 넣을 수 있었다.

▲ 와라스 주변 풍경
페루에서 큰 도시 간 이동은 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몇몇 큰 도시에는 공항도 있고 기차도 다니지만 일반적으로 버스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남미에서는 버스가 국제선인 경우도 많고 아주 장시간 타야 하기 때문에 좋은 버스들도 많았다. 물론 등급 차이가 많이 나곤 했는데, 가장 일반적인 등급이 이코노믹 클래스이고 로얄 클래스, 임페리얼 클래스 식으로 구분되어져 있으며 침대버스도 있다고 들었다.

가격차이가 두 배 이상나면서 여승무원이 간단한 음료와 샌드위치 정도를 제공하기도 하고 가장 큰 차이는 버스가 좋은 것에 있었다. 이층버스들이 많았고 화장실도 있으며 좌석 간격도 넓고 좀 더 편한 의자로 되어 있는데, 대개는 밤새가는 버스이므로 사실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버스 외부에 영화, 음악, 화장실 등 가능한 써비스가 아이콘으로 그려져 있고 개수가 별로 표시된다. 그래서 꼭 호텔처럼 별 몇 개짜리 버스가 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버스회사 별로 터미널이 다른 경우가 많았던 점이다. 뿌노나 아레끼빠 같은 곳은 종합 터미널식으로 모여 있기도 한데, 그곳에서도 회사별로 따로 부스식으로 되어 있어 호객행위가 심하기도 했다. 완전한 자유경쟁체제 이기에 회사별로 구별되는 차이가 있기도 했다.

처음 와라스로 갈 때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 잘 몰랐다. 민박집에서 오르메뇨라는 회사가 가깝고 그 회사 버스가 좋다고 해서 우리에게 맞는 시간대로 버스표를 샀는데 그게 이코노믹 클래스였다. 우선 출발시간이 무려 두 시간이나 늦어졌다. 처음엔 가장 황당했던 것이 비교적 공적 부분에서도 시간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는데, 점점 날이 갈수록 그것에 익숙해지고 이해되기도 했다.

▲ 와라스 서쪽으로 지나는 검은 산맥(Cordillera Negra)
안데스 사람들은 시계에서 보여주는 시간보다는 자연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싶다. 간단히 말하면 자연의 시간이란 태양이 떠오르고 지고,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오고 새들이 북쪽에서 날아오기 시작하고, 강물이 불어나고 줄어들 때 식으로...

그런 식으로 하다보면 버스는 승객이 다 탈 때 까지가 된다. 대개 작은 마을들을 다니는 버스는 출발지에서 좌석이 다 차면 출발하는 수시 출발식이다. 장거리 버스도 터미널에서 다 못 채우면 시내를 빙빙 돌며 어쨌든 다 채워야 출발한다. 그게 가능한 게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고속도로로 들어서면 고속버스가 되고, 교외로 들어서면 시외버스가 되고, 시내에서는 시내버스가 된다.

장거리 버스는 예약제도가 잘 시행되고 있기에 대부분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미리 예약을 하는데 이 땐 물론 100% 정해진 요금을 내야만 한다. 하지만 페루사람들은 버스 떠나기 직전에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려는 버스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정해진 요금보다 낮은 요금만 내고도 탈 수 있다.

리마에서 삐스코를 갈 땐 그 때도 이코노믹 클래스였는데 터미널에서 좌석이 비었는데도 출발하는 것이 이상하다 생각했더니만, 무려 두 시간 동안 리마 시내를 돌며 결국 다 채워서 출발했다. 나중엔 의례 그러거니 하게 되고 어차피 밤새워 아침에 도착하면 된다 식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사실 시계상의 시간에 어쩌면 우리는 더 얽매이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느긋해지기 위해 한달이라는 시간을 내어 여행하는 것이고, 또 안데스에 왔으니 안데스 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에 조급해하지 않는 내 모습에 오히려 위안이 되며 점점 만족스러워졌다.

와라스는 리마 북동쪽으로 약 400km 정도에 위치한 고도 3091m의 산악지방 고산분지로 주변에 5000~6000m급 고봉들이 만년설을 이고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고장이다. 버스로는 7~8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고도가 3000m가 넘는 고지였기에 처음으로 고산병 걱정을 해 보았었는데, 고산병은 2500m이상이면 나타날 수 있는 증세이기에 미리 예방약도 먹고 마음에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고산병 예방약인 다이아목스가 이뇨작용이 있기에 화장실에 자주 가야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버스타기 전에 기다리면서도 터미널 유료화장실에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는데, 당연히 오르메뇨는 좋은 버스라 했으니 화장실도 있겠거니 했는데 없었다. 그리고 8시간 정도 가면서 특별히 휴게소가 있어 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운전기사 잠깐 쉬는 시간 단 한번, 그것도 미리 이야기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꼼짝없이 참아야 했다.

▲ 와라스 동쪽으로 지나는 하얀산맥(Cordillera Blanca)
그래도 도착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푸르스름한 여명 사이로 하얗게 만년설을 이고 있는 하얀산맥과 어우러지는 창밖 풍경에 앞으로 이곳에서 지낼 좋은 시간을 예감하며 마음속으로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게 느껴지더니 어느새 버스에선 중남미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음악 스타일인 꿈비아(Cumbia)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정말 많이 듣게 되는 남미판 뽕짝쯤 되는 음악이다. 거의 스페인어권을 장악한 스타일인데, 스페인의 것과 아프리카 중서부의 것과 그리고 원주민의 멜로디와 리듬이 온전하게 녹아들어간 정말 아메리카 대륙의 문화적 산물이라 한다.

허나 상이한 특징을 가진 3가지 요소가 하나로 녹아들면서 상대적으로 서로 상이하고 복잡했던 리듬들은 단순화되었고 서로의 공통된 부분만 취하면서 결과적으로 비단 스페인적인 것, 아프리카 중서부적인 것, 중남미 원주민 적인 것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 음악권과의 퓨젼도 용이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주 큰 특징이다. 이렇게 복잡한 설명보다는 직접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일하면서 또는 놀면서 술 한 잔 걸치고 흔들 수 있는 편하게 꿍짝거리는 리듬과 유려한 멜로디가 특징인데 우리나라 관광버스 스타일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수 : Carlos Vives
곡목 :La gota Fria

박종순(서울 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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