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막 가는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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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막 가는 노무현 대통령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5.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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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만사’라고 한다. 인사가 잘 돼야 만사가 잘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사는 중요하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되어도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노무현 정부가 제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었다고 해도 인사를 잘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는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인사마저 엉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 문제의 인물은 바로 이기준 교육부총리이다.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서울대 총장 출신이다. 그 이력만으로도 막강한 권위를 과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이기준씨를 교육부총리에 앉힌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사이므로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 서울대 총장 시절에 그가 판공비 유용과 사외이사 겸직의 두가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과 한국 국적 포기 문제가 걸려 있다. 막강한 권위의 뒤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나서서 비단으로 그 냄새의 근원을 덮으려 하지만, 비단으로 가린다고 구린내가 사라지랴?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5년 1월 6일에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이에 대해 해명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이병완 수석은 ‘당시 이기준 서울대 총장 시절 관례상 기관장이 허가하면 사외이사 겸직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주장한 것이거나 사실을 제대로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은 이기준 총장의 퇴임 뒤인 2003년 3월 11일에 제정된 대통령령에 의해 비로소 허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정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런데 그 홍보수석이 이렇게 엉터리 해명을 한 것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렇게 엉터리로 일을 해도 좋은가? 잘못된 교육부총리 인사를 합리화하려다가 대통령을 욕보이는 꼴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판공비는 그 자체로 문제로 지적되는 돈이다. 이른바 ‘눈먼 돈’의 큰 원천이 바로 판공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에 판공비를 ‘눈먼 돈’으로 사용한 전과가 있다. 이에 대해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사적인 유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부인이 법인카드를 20여 차례나 쓴 사실을 참여연대가 이미 발표했는데도 이렇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했다. 사실 ‘알고 있다’는 표현은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병완 홍보수석은 사실을 잘 모르면서도 아무튼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이런 모호한 표현을 쓴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청와대 홍보수석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막무가내로 잘못된 교육부총리 인사를 합리화하는 말을 한다는 말인가?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런 자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해 주었다는 것을 치하해야 하나?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해명을 한답시고 땀을 흘리던 날과 같은 날, 민주노동당은 ‘이기준 임명 철회 요구 기자회견’에서 2004년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해서 또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서울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에 한국산업기술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발표에 따르면, 이 재단에서 이기준 이사장 재임 시절에 9백억의 편법지원과 함께 3년 동안 총 2천2백억의 정부 예산을 받아 방만하게 썼다. 그 한 예로 민주노동당은 ‘60여명 규모의 조직이 2003년도에 보유한 법인카드가 60개(6억6천만원 사용)에 달한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아무래도 이기준 교육부총리를 청렴하거나 꼼꼼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문제만으로도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은 철회되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파렴치범’에 해당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사람을 교육부총리에 임명한다는 말인가? 이런 사람을 교육부총리에 앉히기 위해 안병영씨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말인가? 어떤 흑막이 있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고 주장했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을 이 경우에 써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위에 대학에 대해 제대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까? 대학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대학을 ‘공장’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만 우글거리고 있어서 이런 잘못된 인사를 하게 된 것은 아닐까?

노무현 대통령의 해명은 이런 의구심을 거의 사실로 확인해준다.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은 산업이다’,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런 주장은 그 자체로는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10여년 전부터 지겹게 듣고 있는 이런 주장은 사실 대학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변질시키려는 반교육적 시도의 소산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대학은 산업이 아니라 산업과 많은 관련을 맺고 있을 뿐이며, 대학의 대부분은 국제경쟁력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나아가 대학은 본래 국제경쟁력과 무관하게 존재해야 옳다. 대학과 산업 혹은 국제경제력과의 관계는 빙산과 그 일각의 관계와 같다. 이기준 교육부총리나 그의 ‘막역한 친구’로서 그를 교육부총리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학을 ‘빙산의 일각’으로 만들려고 한 사람으로서 악명이 자자했다.

이병완 청와대 홍보수석의 1월 6일 해명은 사실 정찬용 인사수석의 1월 5일 해명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래도 청와대는 똘똘 뭉쳐서 언론을, 아니 국민을 우롱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잘못된 교육부총리 인사의 뒷면에는 이처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청와대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1월 5일 해명에서 정찬용 인사수석은 인사기준에 관한 질문에 개혁성과 전문성을 우선 꼽고 ‘윤리적, 법률적 하자’는 그 다음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정말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과연 개혁적이고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분야에서 그런가? 불법적 사외이사 겸직에서 그런가? 판공비 유용에서 그런가? 대학을 ‘빙산의 일각’으로 만드는 데서 그런가? 도대체 정찬용 인사수석은 어떤 점에서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개혁적이고 전문적이라고 판단한 것인지, 그 내용을 국민 앞에 소상히 공개해주기 바란다.

서울대는 매년 개교기념일인 10월 15일에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을 뽑아서 상을 준다. 2002년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에서는 이 상을 패러디해서 ‘올해의 부끄러운 서울대인’을 뽑았다. 그 해의 1위는 5월에 퇴직한 이기준 교육부총리였다. 그것도 2위인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두 배가 넘는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1위에 뽑혔다. 이런 인물을 교육부총리로 임명하면서 고뇌의 산물이라고 우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교수의 사외이사 겸직을 허용하는 대통령령을 제정하기 이틀 전인 2003년 3월 9일 오후에 노무현 대통령은 평검사 대표들과 공개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가 한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은 유행어가 되었다. 이제는 이 말을 본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4대 개혁입법의 처리는 터무니없이 미루도록 하고 엉터리 교육부총리 인사는 그저 밀어붙이겠다니,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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