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31]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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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31]침이 고인다
  • 전민용
  • 승인 2011.03.09 11: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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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문학과 지성사

 

인삼껌에는 진짜 인삼 성분이 들어 있을까, 합성 인삼향만 들어 있을까?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호두과자에는 호두가 있는데 인삼껌은 잘 모르겠다. 소설은 분명 허구(합성)인 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현실의 어떤 모습이 들어 있을 때 더 감동적이다.

1년 반 전 창비를 통해 이 소설을 알았고 한동안 지인들에게 가장 첫 번째로 추천했던 소설이었다. 몇 권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어쩌다보니 나에게 이 책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에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주문해서 읽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침이 고인다’는 20대 젊은이들의 삶을 잘 드러내 준다. 피아노를 배우면 피아노 영재가 되고, 공부는 했다하면 우등생이고, 오랜 고생 끝에 고시에 척 합격하는 드라마 같은 삶은 없다. 대신에 돈 때문에 온갖 구차한 삶을 견뎌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치기공과에 다니는 언니는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가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더라.”고 전한다. 언니는 자기 남자친구의 누르스름하고 고르지 않은 작고 오래된 치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게 피아노가 있는 반지하 셋방에서 여름 장마에 비가 무릎까지 차오는 상황에서 서울에 온 후 처음 피아노를 치는 나의 이야기인 ‘도도한 생활’.

대표작 ‘침이 고인다’에 묘사되는 한국의 학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흥미롭다. 연봉이 1억이 넘고 심지어 연수입이 수십억에 달한다는 학원 강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원 강사들은 높은 강도의 노동과 많지 않은 수입으로 힘겹다. 아침마다 알람 소리에 갈등하고 몸은 힘들고 돈만 아는 원장, 이사장들의 몰상식에 휘둘린다. 학원 강사인 나의 삶에 거의 20년 묵은 인삼껌을 간직한 대학후배가 그만큼의 사연과 함께 비집고 들어온다.

사귄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애인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연인이 있다. 지나간 크리스마스에는 여자에게 적당한 옷이 없거나 사내에게 돈이 없거나 하는 이유로 따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모텔을 찾아다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그냥 집으로 들어가는 하룻밤이 실감나면서 안쓰럽게 그려져 있다.

노량진 학원가를 배경으로 재수생과 취업 준비생 등을 그린 ‘자오선을 지나갈 때’나 신림동 고시촌을 배경으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와 계속 실직 상태에서 과외로 살고 있는 나를 등장시킨 ‘기도’도 가슴 뭉클하다.

김애란의 소설에는 직접 겪지 않고는 표현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묘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몇 개만 예로 들면 고시촌 게시판에 있는 “제 지갑 가져가신 분, 죽어버리세요.”, 공무원 시험책을 사러 다니다 서울대 근처 헌책방에는 9급 공무원 시험책은 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일, 학원 체육대회 마지막에 자원해서 연단에 오른 버스기사가 노래를 부르자 ‘이상한 불편함’을 느끼는 학원선생들 등이다. 이런 디테일들이 소설에 숨을 불어 넣는다.

이 소설에는 재수생, 등록금이 없는 대학 신입생,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 실직자, 알바생, 혼자 힘으로 학비와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대학생, 힘겨운 학원 강사 등 다양한 20대 무렵의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냥 견뎌내고 있거나 그저 암울한 심정을 표현 할 뿐이다. 시장만능 무한경쟁시대에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설령 “출구”를 찾았다고 해도 별 의미도 없고, 아직도 “그 골목을 헤매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238쪽).       

대한민국 2,30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나갈 새싹은 어디에서 움트고 있는 것일까 자못 궁금하다. 대표적인 신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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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ker 2011-03-11 22:04:47
허구보다 찬란한 뉴스가 밀어닥치는 가운데 있다보면 소설보다 non-fiction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차가운 웃음을 뱉게 됩니다.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멀쩡(?)해보입니다. 한 겹 들춰보면 위와 같은 좌절과 암담이 짓누르고 있다고 봐야겠죠? 가까운 과거에는 분명 이보다 더 어려운 장삼이사가 많았지 않았을까요. 삶은 공평치 않고 어렵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서 머리가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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