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평등에 대한 공감이 모두에게 감염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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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평등에 대한 공감이 모두에게 감염되길
  • 이흥수
  • 승인 2011.03.18 12: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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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건치 기획 '감염과 불평등', 폴파머 저. 정연호 외 10명 역. 신아출판사

 
이 책의 저자인 폴 파머는 브로디외의 말을 인용하여 주장한다. ‘모순을 조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을 야기한 사회적 원인들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적어도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번역자들은 행운아들일지도 모른다. 책을 번역하는 동안 가슴 아팠을 것이고, 분노했을 것이며,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을 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을 쳤을 것이므로… 이들은 단지 최소한의 책임을 완수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조바심 덕에 행복했을 지도 모른다.

건강문제에서 치료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은 항상 강조된다. 그래서 충치치료보다는 충치예방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된다. 충치가 잘 생기는 부위를 인공적인 재료로 막아주는 이른바 ‘치아 홈 메우기’를 치과에 가서 받기를 추천한다. 단 것을 적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단 것 덜먹기 운동’도 벌인다.

그러나 치과의사인 번역자들은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폴 파머의 저서 번역을 통해 전하고 싶어 한다. 과연 소년소녀가장들이 선뜻 치아 홈 메우기를 받을 수 있을까. 단 것 덜 먹는 것이 충치예방에 중요한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라도 알 터인 데 왜 그렇게 어린이 TV 시청시간에 과자광고를 많이 하는 것일까. 그 광고 이면에는 이익 추구라는 자본의 음습한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이들은 폴 파머를 통해 보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서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보다 분명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로 가서 ‘콘돔을 사용하세요’라고 외치면 되는 것일까? 폴 파머는 결단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에이즈 문제에서 콘돔의 사용은 부차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이들에게 콘돔을 사기 위해 사용하는 돈은 그야말로 사치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 빈곤을 애써 외면하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 개인 행태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연구자들을 폴 파머는 질타한다.

의료인들은 흔히 진료를 받는 날을 잘 지키고, 약은 정기적으로 먹는 등의 환자의 순응이 치료효과에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 역시 폴 파머의 비판의 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돈을 벌어야 할 날과 진료일이 겹치기도 하고, 에이즈나 결핵 약을 구입할 돈이 없어 먹었다 안 먹었다를 반복하는 ‘순응하지 않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왜 가난한 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적 억압에는 눈을 감고 있는지 엄중하게 묻는다.

‘가난한 것은 나라님도 못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폴 파머에게 있어 이런 말은 완전한 거짓이다. 그는 무기 구매나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쓰는 돈과 결핵이나 에이즈에 대처하는 비용을 대비하여 보여주면서 그러한 말이 허구임을 보여 준다. 또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에이즈나 결핵 치료에 드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자원의 한계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공중보건에 드는 예산을 줄임으로써 다시 결핵 유병률이 상승한 뉴욕시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비용 효율이라는 말이 얼마나 이념적인 말일 수 있는지 우리가 직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결국 파머에게 있어 문제는 자원의 한계가 아니라 자원 사용의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분명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건강을 해치는 질병 양태는 많다. 왜 파머는 감염이라는 문제에서 불평등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감염은 바로 지구적인 문제라는 점에 있다. 세계화라는 이면에 숨어있는 자본의 탐욕이 감염의 지구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파머는 생각한다.

에이즈나 결핵의 확산은 후진국에서 유래되었거나 후진국의 부적절한 대처 때문이 아니라 자본이 후진국에서 그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교류에서 비롯되었으며, 불평등은 단순히 국가 내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초국적인 성격이 관철되는 기전임을 그는 주장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차별, 마약 및 동성애, 감염에 대한 문화적 양태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기저는 구조적인 억압이며, 이 억압은 바로 세계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주요한 감염병을 ‘자본주의 사회가 무자비하게 노동을 착취한 대가로 인한 첫 번째 형벌’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이러한 형벌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지 폴 파머는 너무나 뜨겁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과를 나누어 먹기 위해서는 사과나무를 키워야 한다’는 말로 대변될 수 있는,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는 논리 하에 너무나 긴 시간을 감내해 온 것은 아닐까? 그동안 자란 것은 분배를 위한 사과나무가 아니라 사과를 나누는 방식의 불평등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절대 빈곤이 존재하고 상대적 빈곤이 더 커지는 과정에서 ‘사과나무가 다 큰 후’를 여전히 되뇌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불평등은 건강 악화를, 건강 악화는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한다. 건강불평등을 허구의 이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그러나 불평등과 건강의 문제는 현실의 모습이다. 그것은 단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으로 가득한 실재다. 폴 파머는 이러한 점을 많은 사례를 통해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통은 현재진행형이어도 힘들다. 하물며 미래진행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고통이라기보다는 끔직한 고문일 것이다.

폴 파머는 불평등이 가지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행동할 것은 많다고 역설한다. 전 세계적인 연대도 강조한다. 의학적인 행동을 하되 사회학적인 시각을 의료인이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 책의 번역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북지부의 기획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기획의 의도는 건강 불평등에 대한 항의이자 문제제기이다. 이는 반어법적으로 표현되었을 뿐 결국 귀결되는 것은 평등에 대한 희망이다. ‘건강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삶’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이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평등에 대한 공감이 모든 사람에게 감염되었을 때 이루어 질 것이다. ‘평등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자 애쓴 번역자들의 노력이 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원한다. 
 
이흥수(원광대학교 예방치과 교수,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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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1-03-19 09:46:18
좋은 책 번역 감사하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복지담론이 대세를 이루어가는 요즘 시의적절하고 꼭 필요한 책을 번역하신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건치의 모토는 더할 나위없이 정말 훌륭한데 저를 포함해서 건치회원들이 이런 삶을 제대로 추구하고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지는 의문입니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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