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불량 도시락 파동과 정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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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불량 도시락 파동과 정글 자본주의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5.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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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범죄가 밝혀졌다. '생태도시'를 꿈꾼다며 지난 가을에 큰 국제심포지움을 열기도 한 남제주의 아름다운 도시 서귀포에서 그 도시의 이미지를 크게 더럽히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없어서 배를 곯아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세금으로 도시락을 마련해서 주도록 했는데 그 도시락이 너무나 엉터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에서 그 도시락의 내용을 보고 분개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작은 햄버거빵 하나, 단무지 서너쪽, 게맛살 서너개, 그리고 황당하게도 메추리알 너댓개. 도대체 이 나라의 어느 집에서 식사 때 삶은 메추리알을 먹는지 모르겠다. 삶은 메추리알은 대체로 횟집에서 곁다리 안주로나 내놓는 물건이다. 팔다 남은 술안주를 가난한 어린이의 밥으로 다시 판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발된 업자는 2500원으로는 도저히 먹을 만한 도시락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명백하게 증명했듯 업자의 주장은 손톱만한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도 학교 앞의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을 사 먹곤 한다. 2500원이면 된장국을 곁들여서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먹을 수 있다. 2500원의 급식비를 착복한 범죄의 혐의가 짙다. 물론 이것보다 더 큰 범죄는 어린이에게 제대로 된 도시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불량 도시락 업자는 단순 경제범을 넘어선 반인륜 범죄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량 도시락은 서귀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귀포의 문제가 밝혀진 다음날, 이번에는 군산에서 서귀포보다도 더 악독하다고 할 수 있는 불량 도시락 문제가 드러났다. 빵도 없고 김치볶음에 건빵을 도시락이랍시고 팔았다. 여기도 게맛살과 메추리알은 빠지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나자 이번에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런 식의 불량 도시락은 서귀포나 군산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화가 치솟지만 이것저것 생각해 보게 된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배를 곯는 어린이들의 등을 처먹는 불량 도시락 업자들이 전국에 널려 있다니. 도대체 어쩌다가 이 나라가 가난해서 배를 곯는 어린이들의 등을 처먹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인가? 어린이날을 제정한지가 벌써 반세기가 훨씬 넘었고, 어린이헌장이며 어린이날 따위를 제정한지도 벌써 오래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쩌다가 이 나라가 '불량 도시락 국가'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런 류의 사건에서 드러나는 한가지 철칙은 '부실과 비리는 한 몸'이라는 것이다. 불량 도시락은 더 많은 이윤을 노린 업자의 꾀에서 시작된다. 이 꾀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관련 공무원을 꼬드겨야 한다. 부실 있는 데 비리 있고, 비리 있는 데 부실 있다. 불량 업자와 부패 공무원이 일심동체가 되어 가난한 어린이의 등골을 빼서 자기와 자기 식구의 배를 불리고 등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불량 업자와 부패 공무원은 흔히 '인두겁'을 쓴 것들로 묘사되곤 한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여기에 모종의 구조적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불량 업자와 부패 공무원은 가난한 어린이를 보면서 가난한 어린이의 등골을 빼먹어서라도 자기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정글 자본주의 속에서 자기 자식들을 가난한 어린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가난한 어린이의 등골이라도 빼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한편에는 내용과 운용의 모든 면에서 대단히 불충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모는 복지제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부모 잘 만난 몇몇 젊은이들이 세금도 안 내고 졸지에 수십조원의 부자로 등극하는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가 있다. 이런 극단적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한다. 불량 도시락과 같은 반인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져서 마침내 이 나라가 '불량 도시락 국가'가 되어 버린 연유이다.

불량 업자와 부패 공무원은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치부했는가에 관해 샅샅이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컨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고, 이를 위해 벼랑 끝을 없애야 한다.

복지의 확충이야말로 민생정치의 시작이요 끝이다. 이 중대한 사실을 망각하거나 심지어 호도하여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를 칭송하고 양성하는 정치인은 불량 업자나 부패 공무원보다 더 나쁜 자이다. 그런 정치인은 결코 불량 도시락의 피해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제고 '포청천'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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