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33]일곱 개의 고양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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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3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전민용
  • 승인 2011.04.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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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 자음과모음

 

소설가를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면 최제훈은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얼마 전 소개한 ‘카르발남작의 성’처럼 이 소설에도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이번 이야기들은 줄거리를 간추릴 수 없다. 이야기들의 주인공이나 내용, 결말이 끊임없이 변하고 어느 정도 정돈된 이야기라도 이야기들이 서로 섞이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면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282쪽)이다.

이 작품은 네 개의 독립적인 중편들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중편 내에서 또는 중편들끼리 “나무뿌리처럼 뒤얽혀”(165쪽) 이야기들을 엮어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나간다. 이 책의 제목이면서 소설 속에서는 세 번째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미스테리 소설이 등장하는데 이 소설 역시 이 작품처럼 4개의 소제목을 단 소설이다. 이 작품의 제목과 전체 구성 형식 자체가 소설 안팎을 넘나들며 같은 듯 같지 않은 변주인 것이다.   

작가는 무한히 계속되지만 반복되지 않는 초월수인 파이(π)를 예로 들면서 ‘반복 없는 무한한 계속’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단순 반복은 아니지만 같은 듯 같지 않고 다른 듯 다르지 않는 이야기들의 ‘무한 반복을 통한 무한 생성’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파이 역시 일정한 규칙이 있는 반복은 아니지만 숫자들의 반복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첫 번째 중편인 ‘여섯 번째 꿈’은 그 자체로 연쇄살인을 다루는 하나의 미스테리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중편에서 영화나 번역 작품으로 설정을 바꾸면서 끊임없이 변신한다. 두 번째 중편인 ‘복수의 공식’은 누군가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믿는 인물들의 복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진짜 복수를 한 건지 아닌 건지?

세 번째 중편인 ‘π’는 다층적 이야기 속에 무한히 뻗어가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계속 깨뜨려 나간다. 송충이 한 마리로 시작하는 마지막 중편 ‘일곱개의 고양이 눈’ 역시 이야기하는 화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는 결코 결말을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작품에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 속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작가는 결코 끝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상식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의 끝은 사건의 종결이나 주인공의 죽음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설사 종결된 것처럼 보여도 끝인지 아닌지 조차 모호하다. 가장 분명한 종결이 주인공의 죽음일 터이지만 작가는 죽음마저 끝이 아니라고 조롱한다. 이를테면 또 다른 소설이나 영화 또는 상상 속의 죽음으로 만들어 버리는 식이다. 작가는 슈베르트 현악 사중주인 ‘죽음과 소녀’와 뭉크의 그림인 ‘죽음과 소녀’를 중요한 배경으로 쓰면서 가장 절대적인 사라짐인 죽음을 다양한 시각과 층위에서 다룬다.

작가는 왜 서로 다른 각도에서 물고 물리는 이렇듯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을까? 아마 인생과 세상이 이와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인생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시대를 배경으로 동시대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해서 만들어 내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 점점 더 큰 서사를 만들고 이런 서사들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일 것이다. 비록 이 소설에는 세상을 닮아 행복한 내용도 행복한 결말도 없어 보이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자기가 즐기고 좋아하는 인생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시길 빈다. 사족을 달면 작가는 결코 끝나지 않는 영원한 이야기를 의도했지만 책으로 출판하는 한 지면의 끝이 소설의 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즐거운 감상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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