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34]최장집교수가 막스 베버를 소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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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34]최장집교수가 막스 베버를 소개하다
  • 전민용
  • 승인 2011.04.22 12: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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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베버-소명으로서의 정치,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폴리테이아

 

▲ 막스베베
정치의 계절이다. 4.27. 재보선을 앞두고 여야는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재보선이 끝나면 다가오는 총선, 대선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매번 선거에 올인 하는데 투표를 하는 국민들은 심드렁하다. 정치가 일부 정치인들만의 놀이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제도에 기인하는 것이 많으며 이런 시스템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치임을 알 수 있다.

좋은 정치 없이 좋은 공동체의 삶은 불가능 하고, 좋은 정치인 없는 좋은 정치 역시 불가능 하다. 최장집교수가 정치철학 강의 시리즈 1번 타자로  소개하는 막스 베버의 저작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정치가 무엇이고, 정치인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데 고전 중의 고전이다.

물질적 정신적 윤리적으로 개인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공동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국가와 정치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한계와 범위는 무엇일까? 이런 근본적인 정치와 관련된 문제들을 이론과 현실 속에서 찾아보기 위해 최장집 교수가 정치철학 강의 시리즈를 시작했고, 그 첫 시리즈로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들고 나왔다. 앞으로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홉스, 로크, 루소, 플라톤 등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들의 텍스트들을 살펴 볼 것이라 한다. 해설에만 의존하는 공부의 한계를 넘기 위해 1부에는 강의 내용을 쓰고, 2부에는 텍스트를 번역해 실었다.      

흔히 베버를 도덕에 우선해서 정치의 본질인 권력과 폭력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정치적 현실주의자, 신념 윤리에 우선해 책임 윤리를 강조한 사람, 정당의 관료화에 대항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강조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베버에 대한 이런 식의 단순한 이해를 넘어 대립하는 명제들이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율배반적이고 유동적인 이런 관계가 오히려 정치의 본질이며 정치인이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베버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정치인 아버지와 칼뱅주의적 금욕주의와 자유주의 이념을 신봉했던 진보적 어머니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정치철학자이면서도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독일 현대사 속에서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를 보였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경제와 사회’ 등 유명한 대작들을 썼고, 죽기 1년 전 1919년에 이 책에 실린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강연을 통해 발표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한 사람의 정치인, 지도자는 먼저 프로테스탄트적 윤리에 상응하는 정치적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소명 의식은 도덕적 기초가 되는 내면적 신념 윤리와 이런 내면적 신념을 현실 속에서 기어이 이루어내는 책임 윤리라는 두 가지 윤리의 원천이다. 소명의식은 하늘이 준 직업을 뜻하는 우리말 ‘천직’이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정치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소명으로 알고 헌신해야 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형편없는 정치인의 특성으로 무소신, 무책임을 드는데 정확히 베버의 생각과 일치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베버의 ‘행위이론’은 네가지 이념형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목적합리성에 따르는 것, 둘째는 가치합리성에 따르는 것, 셋째는 감정에 의한 것, 넷째는 전통적 규범을 따르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도덕의 두 종류로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는 각각 가치 합리적 행위와 목적 합리적 행위에 대응한다.

그런데 베버의 사회과학 방법론인 ‘가치중립’은 사회 현상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적 힘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베버가 강조했던 정치적 덕은 이념이나 신념 같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성, 객관성, 현실성이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하는 이상적 정치가는 자신의 열정을 객관성과 결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사회가 어떻게 조직, 작동하는지 알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선택할지 알고 행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의 정치적 현실주의의 기초이고 책임 윤리의 중요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베버는 국가란 “특정한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강권력의 독점을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라고 정의한다. 그는 국가든 정치든 (최종 순간에는 폭력을 수반하는) 권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의한다. 베버에게 정치와 갈등은 동일한 것이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본질은 힘의 정치이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본질이 힘의 정치라도 그것이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치의 핵심 문제는 통치자 내지 지도자가 어떻게 피치자 내지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이다.

베버는 지배의 정당성을 위한 기초를 세가지 이념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관습, 선례에 기초한 전통적 정당성, 둘째는 법의 절차에 기초한 합리적 정당성, 셋째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자질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카리스마적 정당성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체제로서 민주주의 는 어떤 정당성에 기초해 있을까? 인민주권의 원리 위에 법과 절차를 기초로 한 합리적 정당성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베버는 민주주의를 카리스마적 지배 형태로 범주화한다. 물론 현실에서 정당성의 기반은 하나의 순수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혼합되어 있지만 어느 형이 중심적인지가 중요하다.

베버에게 민주주의는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이를 추종하는 대중의 열망 사이에 발생하는 지배-정당성의 상호 관계에 기초를 둔 통치 체제이다. 그는 국가나 정당 같은 정치 조직이 인민 주권을 통해 운영되고 작동된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인민은 엘리트를 선출하는 수동적 역할을 할 뿐이며 정치 엘리트에 의해 통치 되는 것이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국민의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중심이 되는 지도자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런 베버의 주장은 발달된 관료 국가와 허약한 의회주의가 특징이며 민주주의 후진국인 당시 독일을 배경으로 한 입장이다.

베버는 현실적 이론적 관점에서 자유의 공간을 확대하고 가치 합리성을 증진하는 정치인과 엄격한 규율과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최고의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관료를 대조시켜 왔다. 또 행정 관료에 종속된 허약한 의회 대신에 행정 관료를 통솔하는 ‘적극적 정치’의 중심으로 의회를 강조했다. 베버는 관료화된 정당을 수단으로 하고 의회를 정치 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베버가 생각하는 정치적 지도자는 그들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며 그 목적을 위해 그들의 데마고그적 기술을 활용하고, 지지자를 창출하고 동원해야 한다. 단순히 투표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부분 이익, 특수 이익의 대표임을 넘어 일반 이익, 사회 전체의 이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도자는 의회-정당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갖는 지도력을 확립해야 한다.

베버의 관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 원리에 입각한 만주주의는 단지 국가로 부터의 자유를 본질로 하는 까닭에 기본적으로 ‘소극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현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낡은 체제일 뿐이다. 당시의 독일은 이미 독점 자본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고, 이것을 강력한 관료의 힘으로 뒷받침하는 국가 중심적 정치체제였다. 베버는 이런 상황에서 지지 기반을 갖는 지도자 민주주의를 국가기구의 관료화와 자본주의 시장구조의 독점화에 대응하면서 역동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제도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베버는 밑으로부터의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회와 정당의 관료화, 데마고그의 카리스마적 권위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대립적 명제를 이율배반적으로 결합하는 것에서 대안을 발견하려고 했다.

베버식 이상적 지도자는 기존 질서로부터의 해방과 최대한의 자유를 구현하는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목적 실현의 수단으로서의 관료적 테크닉을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지도자이다. 법적 합리적 원리에 입각한 의회 민주주의와 변화와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결합해서 관료화의 힘을 일정하게 제어하면서 개인적 자유와 창조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균형이 깨지면 포퓰리즘적인 순수 데마고그나 독재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

베버의 관점으로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보자. 한국은 미국과 비교해 대통령은 예산 편성권, 법안 제출권, 주요 공직자 임면권의 기준으로 볼 때 권한이 더 강하지만 의회의 기능은 훨씬 허약하고 행정부에 부수적이다. 한국의 의회와 정당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이나 갈등의 중심에 있지 않고 따라서 권력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없다. 정치적 리더십을 훈련하고 배출하는 장으로서도 부적합하다. 대통령에 대한 견제 기제는 너무 엉성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사적 통치와 행정 관료들의 자율적 통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최교수가 볼 때 베버의 이론은 최근 원전폭발 등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시사적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가져온 위험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가행정 기구들 간의 유착, 규제자인 정부 관료와 규제를 받아야 할 대기업 및 경제연합 간의 유착 심화 등은 정치리더십 부재라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관료화의 심화는 일본 전체의 시스템을 경직화시키고, 정당과 의회가 리더십을 배출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일본의 사례는 순수 의회 지배 체제에서 대중 투표적 대통령 중심제로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베버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요소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제시한다. 열정은 내용 없는 흥분이나 허영심과 다르며, 강력한 신념이 자신의 탐욕과 욕구를 억제하는 이성에 의해 규율되는 차가운 열정을 의미한다. 이것은 베버의 정신적 뿌리인 칼뱅주의적 관점과 통한다. 엄격한 규율의 교리이고, 복음에 복종하고 신을 위해 희생하는 의미의 열정인 것이다.

내면적 신념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정치는 윤리학으로 환원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도덕과 다르다. 권력을 본질로 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와 통치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투쟁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윤리의 문제가 지극히 재난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선과 악이 전도되는 경우는 역사와 현실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정치적 선의가 결과의 좋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신념의 정당함은 그 자체로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검증을 통해 입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영역에서 유효한 정치의 도덕적 성격은 무엇인가? 베버는 이를 내면적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로 구분하고 이 둘의 조화를 추구한다.

한 정치인이 이념이나 가치, 대의나 이데올로기 같은 내면적 신념을 타협 없이 고수하면서 자신이나 남의 유불리에 아랑곳하지 않는 절대적 신념의 윤리는 무책임하고 나아가 위험할 수 있다. 신념 윤리는 그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도덕이다. 이런 도덕적 행위는 종교나 도덕의 영역 밖의 세속적인 현실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예기치 않은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목표의 설정, 목적의 지고함은 수단의 제약에 의해 조정, 재평가, 재설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소명의식은 자신의 신념에 헌신하되 책임 윤리 즉 목적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이라면 악이라 하더라도 선을 창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실용적 인식을 통해 타협, 조화 되어야 한다. 이런 윤리적 비합리성을 순수한 이데올로그들은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자질은 신념과 책임이라는 두 윤리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균형을 발견하는 능력에 있다. 이 균형은 공동체의 이상 실현과 가능한 현실적 수단의 제약 사이에 있는 언제나 유동적인 균형이며, 변화에 대한 개혁적 요구와 현상 유지 사이의 균형이기도 하다.

베버는 인간과 사회가 성취해야 할 목표, 실현해야 할 가치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어떤 조건에서 다만 선택이 강제될 뿐이고, 이 점에서 철학적으로 실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버는 대중 투표제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피치자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지도자의 역할을 증대 시킨다고 봤으며, 그는 이것이 권력 기구의 관료화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경향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또한 이념정당이 현실적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보았다. 오늘날 돌아보면 19세기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독일 사민당의 역사는 베버의 현실주의적 관점에 상응해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베버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 하여 대립적이고 양립할 수 없는 명제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이율배반이 정치 행위의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적 현실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원적인가, 얼마나 이중적이고 모호한 것인가를 동시에 일깨워 준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 행위에 있어 무엇보다도 균형적 판단, 절제, 나아가서 겸허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정도로 최교수가 소개하는 막스 베버의 현실적 정치관을 개괄해 보았다. 책 2부에서 베버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연합정치를 추구하는 세력과 정치인들이 반드시 곱씹어 볼 내용들이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적절한 균형이 너무도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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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2011-04-23 10:06:30
이 세상엔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끝도 없고..ㅎㅎ...아무튼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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