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36]인류는 몰락과 진보의 경계에 서있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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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36]인류는 몰락과 진보의 경계에 서있다①
  • 전민용
  • 승인 2011.05.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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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쌤엔파커스

 

이 책은 "인류는 몰락과 진보의 경계선에 서 있다"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시작한다. 과거의 번영했던 문명들이 모두 결국 종말을 고했던 것처럼 지금 인류의 문명도 그 마지막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명의 번영과 몰락의 사실적 메커니즘을 밝히고 과거의 인류와 달리 지금 인류에게 있는 무기를 잘 활용하여 진보의 길로 가는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3000년 간 번영했던 마야문명의 몰락을 예로 보자. 마야인이 최후의 시기에 직면했던 각종 문제(기후 변화, 시민 불안, 식량 부족, 바이러스 확산, 인구 증가)의 복잡함과 방대함은 그들이 지닌 사실 수집, 분석, 혁신, 계획, 실행 능력을 훌쩍 뛰어 넘는 ‘너무 복잡한’ 수준이었다. 어떤 사회가 더 이상 문제해결책을 사고할 수 없게 된 지점을 ‘인식 한계점’이라고 한다.

사회가 일단 이 한계점에 도달하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그냥 다음 세대로 넘겨진다. 인간 두뇌의 새로운 능력을 발달시키는 진화 속도가 문명이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너무 느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명 붕괴의 직접 원인이 되는 특정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두 가지 경고 징후가 나타난다. 첫 징후는 정체상태다. 마야인들 역시 여러 문제들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더 작고 단순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했던 방식을 고집했고, 문제를 다음 세대로 전가했다.

현재의 인류도 과거의 발전된 문명들이 맞닥뜨렸던 인식 한계점에 직면했다. 기후변화, 테러리즘, 정부 부채, 에너지 문제, 광범위한 위험 등에 대해 근본 원인을 영구적으로 치유하려 하기보다 몇 가지 증상만 개선하며 다음 세대로 문제를 전가하고 있다. 정체상태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더욱 절망적으로 악화되면 두 번째 징후가 나타난다.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하는 현상’이다.

인간은 늘 믿음과 지식을 모두 필요로 한다. 어느 문명이나 풍년과 무병과 풍요를 기원하는 등 믿음이 없는 사회는 없었다. 믿음은 입증되지 않은 관념을 뜻한다. 믿음은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호등을 보거나 수도꼭지를 틀거나 하는 모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믿음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인간에게는 합리적 결정을 내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입증된 지식 역시 필수적이다. 추상, 탐구, 학습, 추론, 분석, 종합, 판단, 모방, 응용, 해석, 검토 등 지식을 얻는 것은 믿음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다.

사회는 이런 믿음과 지식(또는 사실) 이 모두 나란히 충족되고, 어느 한 쪽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지 않을 때 번영한다. 하지만 사회의 각종 절차, 제도, 기술, 발견 등이 복잡해져감에 따라 지식 습득이 점점 어려워진다. 복잡성으로 인해 지식 입수가 불가능해지면 입증되지 않는 관념과 가설인 믿음에 의존하게 된다. 두 번째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 지금, 경계선에서
일단 사회에 이 두 징후, 정체현상과 믿음이 사실을 밀어내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붕괴가 일어날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곧 붕괴의 직접적 계기가 되는 구체적 재난이 다가오는 데 가뭄 같은 자연 재해일수도 전쟁이나 바이러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진정한 원인은 위험한 문제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조치를 방해한 인식 한계점에 있다.

인식 한계점의 징후는 붕괴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나타나므로 우리에게는 조치를 취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인류가 복잡성과 붕괴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저자는 마야문명의 붕괴 과정과 캘리포니아 주의 물 부족 사태를 예로 들며 복잡성과 단순한 완화책과 종교적 믿음에 의존하는 단계와 붕괴 사이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선사시대 인간이 지녔던 감정, 본능, 충동, 욕구의 흔적이 현대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남아있다고 본다. 두뇌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유전적인 성향은 적응과 돌연변이를 거치는데 수백만 년이 걸린다.

본능의 더딘 진화 속도가 어떻게 진보를 가로막고 발전된 사회의 붕괴를 초래하는지 하나의 예만 보자. 지난 500만 년 동안 우리는 코앞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을 확실히 체득했다.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흥분에 휩싸인 채 ‘싸움 혹은 도주’ 중 하나를 실행할 준비를 갖춘다. 이 반응은 대단히 강력해서 한 팔로 2톤짜리 차를 드는 등 괴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뇌의 시상하부의 역할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이들보다 더 잘 뛰고, 숨고, 싸우고, 위험을 감지해 낸 선조의 후예들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도 모호하고 멀리 있는 문제보다 당면한 문제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즉각적 위험이 있을 때는 거의 뇌 전체가 빛을 내며 행동 태세를 취하지만 탄소배출이 언젠가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는 장래의 일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피질이 희미하게 빛날 다름이다.

천연자원 고갈, 기후변화, 각국의 부채, 핵 위험 등 충분한 정보가 있고 파멸적인 위협을 드러내는 문제들조차도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문제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조금씩 향상되고는 있을 것이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멀리 있는 위험에 대응할 능력을 계발하기에는 아직 인간에게 주어진 진화 기간이 충분치 않다.

모든 문명이 유전된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주장이겠지만 마야, 로마, 크메르 제국 등의 사례들은 진화상의 장애가 파멸로 향하는 단계적 사건을 촉발했다는 풍부한 증거들이 있다.

어느 문명이든 초창기에는 어려운 장애와 환경이 부과하는 과제를 극복해낸다.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고 음식과 물 공급을 안정시키고 시민의 안전 시스템을 구축한다. 지식 추구와 믿음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번영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복잡성이 가속화되면 사실 습득이 어려워지다 끝내 불가능해진다. 사회는 더 이상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분명한 문제들이 다음 세대로 전가되다가 단기적인 완화책과 믿음에 의존하는 길을 걷는다. 그리고 붕괴한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의 시나리오는 없는가?

왜그 닷지 일화. 1949년 8월 엄청 더운 날, 미국 몬태나주 미줄라시 외곽에서 불이 났다. 왜그 닷지 소방대장과 16명의 소방대원은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서 위험에 빠졌다. 위기의 상황에서 닷지는 순간적으로 자기 주위의 풀밭에 불을 붙이고 엎드리면서 근처의 대원들에게 따라 하라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 날 그냥 도망치던 13명의 소방대원은 목숨을 잃었다.

화재 현장에서 불을 놓아 안전지대를 만든다는 이 방법은 그가 순간적인 통찰(insight)로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다. 이 ‘불타는 안전지대’는 즉시 전 세계 소방관들의 표준훈련과정으로 채택되었고, 1985년 인디애나주의 뷰트화재 때는 탈출로가 완전히 차단된 73명의 소방관 전원이 살 수 있었다.

왜그 닷지 일화 이후 60년 만에 신경과학자들이 그 해답을 찾아냈다. 우리 뇌는 문제를 풀기 위해 3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좌뇌를 사용해서 계획적이고 해체적인 분석(analysis)을 하고, 우뇌를 사용해서 창의적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종합(synthesis)을 한다. 그리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통찰(insight)이라는 인식 수단이 있는데 고도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능력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 속에서 “유레카”라고 외친 순간이나 중력을 발견할 때의 뉴턴이나 화재 피난처를 떠올린 왜그 닷지나 통찰의 특징은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아이디어가 즉흥적으로 떠오른다’는 점이다. 

진화는 다양한 속도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적응과 돌연변이 역시 느리거나 빠른, 부적절하거나 효율적인 진화가 모두 일어났다. 약 30억 년 전 바닷속에서 세포가 형성되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 후 육지로 나오고, 약 6천 5백만 년 전의 포유류를 거쳐 인간은 400-500만년 전 침팬지로부터 분리되어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 네 번 째 획기적 사건 때 인간 두뇌가 사상 최대의 변화를 경험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면서 신피질의 크기가 대폭 커졌다. 신피질 내에서도 데이터 처리, 추상, 문제해결, 계획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크기가 커졌다. 인간 뇌의 급격한 진화는 감각의 복잡성뿐 아니라 집단생활을 조직하는 사회적 복잡성에 적응한 결과이다.      

불과 400-500 만년 만에 전두피질은 극도로 빠른 돌연변이를 일으킨 셈이다. 전두피질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간 진화의 다섯 번째 도약인 ‘통찰’을 이용한 문제 해결 방식의 장이 마련되었다.

통찰이 다섯 번째 도약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거는 다음 3가지이다.

 1. 통찰은 새로운 수준의 감각적 사회적 복잡성에 대응하여 유례없는 속도로 커졌던 전두피질에 내재된 인식 수단이다. 2. 통찰은 복잡성을 처리하는 데 좌뇌의 분석과 우뇌의 종합보다 더 뛰어나다. 3. 교육, 문화, 인종 등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생물학적 특성이다.

우리 뇌는 고도로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익숙한 좌뇌와 우뇌 전략을 우선 시도한다. 이 전략이 실패했을 경우 통찰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통찰은 평범한 문제 해결방식을 대폭 강화한 것이고 선천적인 능력이고 빠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강력한 인식 수단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붕괴한 고대 문명과 달리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붕괴의 패턴을 파악했고, 인식 한계점의 징후를 식별할 수 있고, 더 발전된 기술과 지식과  선택의 자유가 있고, 마지막으로 통찰이라는 제3의 인식방법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과거에 복잡성에 대처할 새로운 인식 능력이 없어 멸망했던 고대 문명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유사한 곤경에 빠져있다.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이다. 기후변화, 유행성 바이러스, 테러리즘, 마약중독, 폭력, 핵위험 등 위험한 문제들은 세대가 갈수록 악화되고 영구적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인식 한계점을 타파하는 방법은 통찰적 해법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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