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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베일 벗은 굴욕적 구걸외교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5.01.27 00:00

1961년 5월 16일 새벽, 한 무리의 야심만만한 젊은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한강 다리를 넘었다. 그들은 4·19혁명으로 불타올랐던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열망을 짓밟고 군사정부를 세웠다. 리더인 박정희는 44살이었다. 2인자 김종필은 박정희의 조카사위였으며 35살이었다. 이 젊은이들은 1년 뒤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18년을 군림하며 전무후무한 권력을 휘둘렀다.

박정희는 일제시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1948년 여순반란 사건에 연루되어 빨갱이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박정희의 형이자 김종필의 장인인 박상희는 대구 좌익 폭동을 주도했다가 경찰에 사살된 '순 빨갱이'였다.

이런 전력 때문에 미국은 박정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미국은 한국에 언제나 최상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미국의 의구심을 풀어야 했다. 그가 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것이었다.

1960년대 미국은 무모한 대외팽창에 따른 군사비 지출과 경제 원조로 국제수지가 적자였다. 미국은 군사·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 자신의 핵우산 아래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을 하위동맹자로 삼았다. 한국 원조의 일부를 일본이 대신하고 수직적인 국제분업체계에 한국을 편입시켜 아시아 반공진영의 방파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래서 미국은 박정희에게 한일국교 정상화를 강력히 권고했다. 박정희 역시 1930년대의 일본으로부터 기꺼이 교훈을 배웠고 항상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어떤 반발도 잠재울 수 있는 강제력을 행사하였다.

김종필은 "제2의 이완용이 되어도 좋다"며 한일회담에 발벗고 나섰다. 학생과 시민들이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하며 거세게 저항하자, 1964년 6월 3일 서울 일대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짓눌렀다. 이것이 6·3사태이다.

한일협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을 정식 조인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받지 못했다. 일본은 애초부터 한국인의 상처받은 감수성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일본은 언제나 "35년간 일본의 한국 강제점령이 한국인들에게 유익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패턴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수많은 일본 지도자들은 자기네들이 식민지시대 동안 한국에 기적적인 일을 해주었다는 생각을 고수하는 반면 중국에게는 거듭 사죄를 하고있다.

지난 1월 17일 한일협정 주요 외교문서 5권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40년 만에 열렸다. 박정희는 대일청구권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의 뜻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의미로 해결하는 반민족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박정희는 한·일 두 나라 사이에 반드시 풀어야 했을 '과거 청산'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내팽개치고, 몸을 숙여 경제개발 자금 몇 푼에 목을 맨 셈이다. 일본에 4년 강점당했던 필리핀이 5억5천만 달러를 배상 받은 것에 비하면 원조 3억 달러는 자존심을 팔아버린 초라한 구걸로 밖에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일협정은 일본의 전범세력과 한국의 친일세력이라는 부도덕한 두 세력이 야합해 만든 합작품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전범세력은 독일처럼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기는커녕 북한 핵을 빌미로 평화헌법을 개정해 군사대국화를 뻔뻔스럽게 기도하고 있다. 한국의 친일세력은 박정희의 경제성장 성과만 내세워 수백만 명의 전상자·강제징용자·원폭피해자·종군위안부의 참혹한 아픔을 아예 외면하고 있다.

지금 러시아에서는 제2차대전 승전 60주년을 맞아 스탈린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중공업 정책으로 산업화의 기반을 닦은 공이 있지만, 수백 만 명을 대숙청하고 공포정치로 일관한 스탈린을 박정희같이 존경한다는 것이 어쩐지 난센스로 보인다.

앞으로 참여정부는 해방 60주년을 계기로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개인피해자에게 철저한 배상은 물론이고, 추가 외교문서공개를 통해 한일협정의 전면개정을 일본정부에 제기해야 할 것이다.

송필경(대구 범어연세치과)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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