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에 잠든 카메라를 깨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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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속에 잠든 카메라를 깨우자"
  • 편집국
  • 승인 2011.06.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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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탐방] 광전 건치 사진반 '온냐'

 

시작은 지극히 소박했다. 장롱 속에 잠들어 있는 카메라를 깨우자는 것. 치과에 임상 사진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쯤. 개업하면서 카메라 하나 정도는 보통 준비하게 되는데, 들인 값에 비해 활용도는 단순했다. 고가의 장비를 그대로만 두긴 아까웠다.

2003년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건치 내에 사진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진은 구실이다시피 했다. 강의가 끝나는 순간 주구장장 술판이었다.

“정태환, 우승관, 노환진, 김기현, 임동화 사무국장까지……. 아이구,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죠. 맥주 2잔만 마시면 가는 사람인데, 선생이랍시고 못 마시는 술판에 끼어 가지고…….”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어 온 박일구 강사는 그 무렵 기억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재차 혀를 내둘렀다. 면면 한명 한명은 다 이 판에는 알아주는 강자들.

그렇다고 아무려면 죄다 술판뿐이었으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비춰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왕 더 해보자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곧이어 2기 강좌가 개설되고 다시 중급강좌로 이어지면서 탄력이 붙었다. 그 사이 회장도 선출하고, 매월 출사도 나가면서 점점 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소박하게 시작하던 기초강좌 역시 어느새 4기에 이르렀다.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아름다움을 만날 때 ‘온냐!’

사진반 이름도 눈길을 끈다. 이름인 즉, ‘온냐’(회장 김낙현).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을 때 터져 나오는 최고의 감탄사라는데, 태생이 전라도인이라면 귀에 익숙할 터. 현재 회원은 20명 남짓. 처음엔 건치 회원들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오히려 건치 아닌 회원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평이 넓어졌다고 봐야 할까.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지난해 10월 어느 늦가을. 이 달의 출사 장소는 구절초가 한창인 전북 정읍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 새벽같이 나선다고 나선 길이었지만, 이미 전국에서 온 사진 마니아들이 저마다 좋은 위치를 찾느라 부산한 움직임이었다.

“광각렌즈를 잘 쓰시는 분들은 꽃송이를 골라 클로즈업해 주제가 되게 하고, 원근감 있게 해 보세요. 앵글을 낮추면 저기까지 한 라인이 되고, 그 다음이 중경, 그 뒤쪽이 원경이 되겠죠?”

박일구 강사의 간단한 조언이 끝남과 동시에 남모르게 눈 여겨 둔 포인트를 찾아 발걸음들이 빨라졌다. 곧이어 셔터 소리가 불을 품었다.

“기존 사진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색이에요. 자기만의 특색이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온냐는 좀 달라요. 점수 따기 위해 연출사진을 꾸며 공모전에 내보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순수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려고만 하죠. 쉬운 건 아니에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배터리 충전조차 않고 카메라를 들고 오는가 하면, 삼각대를 한 번쯤 넘어뜨려 망가지는 건 기본 코스 중의 하나였다. 초보시절 그런 곡절들을 거치면서 차츰 자신만의 색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1년여의 땀방울을 모아 2004년 12월 첫 창립전을 가졌고, 2005년 특별전, 2008년 3회 정기 전람회까지 어느새 전시회만 3번이었다.

“서로에 대한 공동체 의식이 기본적으로 다르죠. 사진의 깊이나 능력 또한 탁월합니다. 서로 존중하면서 하나라도 가르쳐 주고 서로 배우려고 하기 때문에, 실력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아요.”

사라지는 기억들 ‘사진 속에 담는다’

즐거움은 비단 사진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진료실을 벗어나 모든 것을 잊고 무엇에 푹 빠져든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적절한 장이었던 것. 출사 때면 회원들과 바람도 쏘이고 허심탄회하게 어울리고 업무상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휴일도 잊은 채 부지런히 야외로 발길을 돌렸고, 돌아와선 다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날 아이들과 함께 온 식구가 나선 정태환 회원.

“사진을 하지 않을 땐 이른 시간에 애들하고 밖에 나올 일이 없죠. 전과는 생활패턴이 달라졌죠. 애들이 다 기억하지 못해서 그렇지, 촬영지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여름철엔 새벽 3시, 4시에 움직여야 해요. 그 시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있거든요.”

‘온냐’가 오늘에 이른 이유 중 하나는 지도를 맡고 있는 박일구 강사의 눈썰미도 적지 않다. 본래 사학을 전공했던 이력 때문에 출사지 한 곳을 선택하는 것도 역사를 관조하는 독특한 시각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유명한 출사지만 찾는데, 우리는 오히려 이름없는 조용한 사찰이나 암자 등을 찾죠. 무조건 셔터만 눌러대는 것 같아도, 탑을 찍더라도 기간에서부터 어떻게 돼 있어, 어떻게 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각도인지, 옥개석이 포개져 있는 위치가 어떻느니 하면 촬영 앵글이 또 바뀌거든요.” 어느 회원의 설명이었다.

구절초 테마공원 촬영에 이어 발길을 내디딘 곳은 정읍 산외면의 김동수씨 가옥. 중요민속자료 제26호로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원형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사랑채는 마루의 폭이 좀 크고 넉넉하죠. 지금의 거실이라고 보면 되요. 손님들을 맞는 공간인데, 보통 화려한 장식을 쓰는데 반해 난간 2개만 건 것이 눈에 띄죠. 그만큼 소박하고 단순하게 지어진 이 가옥의 특징이죠.”

해박하고 구수한 입담이 담긴 해박한 해설은 잘 차려진 하나의 역사답사나 다름없었다.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사진을 통해 회원들의 삶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은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 전에는 병원 일하고 가정에서는 그냥 주부이고 그랬는데, 나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거든요. 소심하고 말도 못했는데 성격도 많이 변했죠. 예전에는 제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출사 때는 빠짐없이 나선다는 김진이 회원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제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여행을 즐기지만 돌아오고 시간 지나면 다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잖아요. 그럴 때 사진은 모든 걸 기록할 수 있죠.”

장용성 회원은 “그 전엔 관심만 가지고 있다가 이곳에서 처음 시작했다”며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해 왔지만, 그 중에서 가장 몰입하고 재미를 붙인 게 사진이다”고 말했다.

“사진을 시작한 뒤부터는 저도 모르게 항상 카메라를 소지하고 다녀요. 언제 어떤 장면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예전과 달라진 점이죠. 기회가 닿는 대로 소소하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일상사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어요.”

어느 새 가장 아끼는 물건이 ‘카메라’가 된 장 회원의 작지만 가장 욕심있는 꿈이었다.

* 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회장 정성호) 2011년 소식지에 게제된 글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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