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늦었다.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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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늦었다. 너무 늦었다....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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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이 체결된지 40년이 지났다. 해방 60주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을사보호조약 100주년이다. 이것이 2005년 을유년의 역사적 무게이다. 그런데,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있고, 강제징용, 징병, 위안부 등으로 끌려가셨던 동포들에 대한 진상규명이나 피해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40년만에 한일협정 관련문서 161권중 5권이 공개되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가 많아서 전모가 드러난 것은 아니나, 협정과정에서의 일본정부가 보여준 치졸한 책임회피, 한국정부의 비굴한 태도는 충분히 확인되었다. 문서공개이후 한국 사회의 여론은 일본정부보다도 오히려 한국정부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것 같다.

경제개발자금에 눈이 멀어 자국민의 보호에 소홀한 점이나, 피해자들에게 나눠져야 할 보상금을 동의없이 전용한 점, 문서공개를 미루고 미루다가 정보공개소송에 패소하자 마지못해 공개한 점 등 한국정부의 허물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할 것은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책임은 여전히 일본정부와 일본기업에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스스로 경제협력자금이라고 했다. 경제협력자금을 받았다고 해서 국가가 국민의 모든 재산, 권리, 이익과 청구권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 후생성에 맡겨진 미불임금이 있고, 후생연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 동포들이 강제로 끌려가 노역한 대가이다. 누가 함부로 포기할 수 있는 권리가 절대 아니다.

일본정부는 강제노역, 징병 피해자들의 명단공개에 비협조적이다. 일본정부와 일본재판소는 지난 수십년간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보상청구권을 회복하기 위해 벌인 눈물겨운 법정투쟁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없이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그들의 '철면피'가 가련해 보일 뿐이다.

정부, 국회, 사법부가 할 일

그런 의미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일본이 아니다. 한국이다. 특히, 한국정부에 가장 많은 과제가 주어져 있다. 협정체결과정에서 한국정부의 잘못은 너무 컸다. 수십년동안 국민을 보호하지 않은 것은 어떠한 핑계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한국정부는 이제라도 남은 문서를 신속히 공개하고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생활안정지원법이 하루라도 빨리 제정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한일협정과정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겸허하게 책임을 지고, 아울러 일본정부에 재협상을 비롯해 과거사 청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먼저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일본에 대해서도 떳떳이 요구할 수 있다.

국회는 입법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현재 계류되어 있는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 '개별보상이냐 생활지원이냐'의 문제를 가지고 불필요한 논쟁을 할 필요도 없다. 식민지시대의 온갖 악행을 청산하고 배상 및 보상을 해야 할 진정한 주체는 여전히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 피해자와 유족들이 수십년간 겪었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진상규명작업 및 재원확보에도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기능도 국회가 수행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가 할 일도 많다. 기실 이번 한일협정문서공개는 서울행정법원의 문서공개결정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일본기업에 대한 청구권보상 소송의 관할은 한국 법원에 있다. 한국 법원은 '과연 한일협정으로 모든 개별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에 대해서 판단해야 한다.

부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제노역 피해자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국의 사법부와 법관이 적극적인 법해석을 통해 일본정부와 일본재판소의 오만하고 편협한 태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이제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 소송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2005년의 의미

20세 이전에 강제징용징병되었다가 20세에 해방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80세를 넘어섰다. 현재 피해자는 거의 생존해 있지 않다. 그 유족들도 이미 환갑, 칠순을 넘은 노인네들이 대다수다. 국회에서 예산이나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또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겠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재원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국민운동도 필요하다. 기금을 모으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위령탑건설 등 원호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민간이 먼저 나서면 일본 정부도 일본 시민사회도 움직일 것이다. 올해를 넘겨서는 안된다. 우선, 피해가 파악되는 사람부터 생활지원에 나서고, 기금을 모으고, 진상을 규명하고, 사죄를 요구하고,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지금이라도 서두르자.

장유식(협동처장, 변호사)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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