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40] ‘두근두근’ 내인생과 ‘낯익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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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40] ‘두근두근’ 내인생과 ‘낯익은’ 세상
  • 전민용
  • 승인 2011.07.18 1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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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 낯익은 세상, 황석영, 문학동네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너무 자-알 읽었던 기억에 그가 쓰고 있다는 장편을 기다렸고 광고를 보자마자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해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메일함에서 “80년 생 김애란이 황석영, 최인호를 이긴 이유”라는 낚시 광고성 제목을 보고 잠시 갈등하다 클릭해 들어갔다.

이런 데 까지 경쟁을 이용해 먹는 상술이라니~~~. 7월 첫 주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가 주욱 펼쳐지더니 1위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 3위가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이 14위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마도 신문 책 소개란에서 ‘낯익은’으로 시작하는 두 작가의 작품 설명을 읽고 사볼까 했었기 때문에 두 권을 주문했다. 한마디로 낚인 셈이다. ‘두근두근 내인생’과 ‘낯익은 세상’에 대해 한 아마추어 독자가 느낀 그대로를 용감하게 쓴다.       

어린 부모와 늙은 자식의 이야기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프롤로그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조로증에 걸려 부모보다 더 빨리 늙어버린 17살 아름이와 아빠 대수와 엄마 미라의 이야기인 것이다. 세 살 이후 십사년 동안이나 온갖 병에 시달린 생체 나이 80세의 17세 소년이라는 설정과 김애란 특유의 절제된 필치가 더해져 정서적 울림을 준다.

▲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나는 그의 ‘침이 고인다’를 읽을 때 현실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와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심리에 대한 개성 있는 묘사에 매료되었다. 이번 장편을 읽으면서 자꾸 그의 글이 맞나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체나 문장은 그의 것으로 느껴지는데 현실에 대한 묘사와 주요 인물들의 성격이 단선적이라 진부했고, 이야기의 전개는 중요한 순간에서 더 나가지를 못한 채 힘이 빠져 지루함 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너무 이른 결혼과 불치병의 아이에 사업마저 망하고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치고는 아빠나 엄마의 성격은 너무 특징이 없고 단단하다. 기껏 아빠는 한 1년 전자오락실을 드나들고 엄마는 가볍게 언급되는 일주일 가출이 전부다. 아무리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하지만 아름이의 태도는 너무 의젓하기만 하다. 마음은 10대인데 몸은 80대가 된 아이의 내면적 고민과 갈등이 너무 여유롭다. 한 가족으로 갈등과 상처가 한 아름은 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갈등도 치유도 없는 이해의 연속이다.

엄마의 첫사랑인 방송국 피디 승찬 아저씨와의 재회도 아빠의 어깃장 정도로 그치고 만다. 마지막 덧붙여진 아름이의 글은 하나의 단편소설로는 훌륭하지만 조로증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마지막 쓴 글로서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부모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의도는 좋지만 부모의 환타스틱한 사랑 이야기는 적어도 아이의 평생의 경험과 고민의 산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세 개의 사랑이야기다. 아름이는 티비 다큐프로 출현 후 이서하라는 동갑 소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된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짜릿한 나날을 경험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하지만 이서하가 가짜이고 나이 많은 남자 시나리오 작가라는 것이 드러나며 관계는 끝난다. 그런데 파탄으로 끝난 이 관계를 작가는 다시 한 번 되살려 낸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병으로 눈이 먼 아름이는 병실로 사과하러 찾아온 서하라고 추정되는 사람을 만난다. 아름이는 그에게 편지 속에서 너를 보았고 그 자리에 있어 주어 고맙다는 말을 한다. 아름이의 생각이 분명하진 않지만 자기 인생에 빛나는 한 때를 나눈 사람이라면 나이든 성이든 거짓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두 번째는 고등학생시절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는 대수와 미라의 사랑이야기이다. 학교에서 순결 서약을 하고 연애 금지를 교육감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는 반사랑 정서가 판치는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생들의 사랑을 아름답고 당당하게 묘사한 것만 해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는 아름이와 장씨 할아버지 사이의 사랑, 아니 우정 이야기이다. 몇 번의 만남에서 엿볼 수 있는 둘의 관계는 수십 년의 나이를 초월하여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나누는 인간들의 만남이 느껴진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며 2%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 인물의 개성과 관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배경이 이야기를 만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의 나열, 즉 소설을 쓰기 위한 이야기 만들기라는 면에서는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버려진 꽃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낯익은 세상’

열네 살, 초등학교 5학년 1학기를 다니다 만 딱부리는 엄마와 함께 산동네를 떠나 꽃섬에 들어간다. 꽃섬은 세상의 온갖 쓰레기가 모이는 매립지이다. 딱부리 아버지는 군사정권이 세상을 정화하겠다고 만든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혼자 행상으로 입에 풀칠하던 엄마는 월세 걱정 없는 판자집이 생기고 수입은 세배를 올릴 수 있다는 아는 오빠의 권유에 꽃섬으로 들어 가기로 한 것이다. 꽃섬에서는 모두 쓰레기에서 나온 것들로 먹고 입고 생활한다.

▲ 낯익은 세상, 황석영, 문학동네
엄마의 아는 오빠는 아는 아빠가 되고 덕분에 갑자기 땜통이라는 동생까지 생긴다. 이 소설은 딱부리와 땜통을 중심으로 1년이 안 되는 시간동안 꽃섬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한다. 도시의 온갖 오물이 모이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며 사는 사람들의 경험들이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다. 꽃섬 쓰레기매립장은 한편으로 흥미진진하고 다른 한편으로 너무 강렬하다. 상대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5공화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의 특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일 수 있지만 등장인물의 개성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작품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매립장에서 경험할 수 있을 만한 사건과 사고들이 이어진다. 아무리 특별하지만 있을 법한 사건들의 나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야기들 속에 주인공들은 그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가공되어 투입되는 소품으로 활용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끝까지 읽어도 주인공 딱부리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상상할 수 있지만 그 아이의 개성이 드러나 있지 않다. 이것은 딱부리의 엄마나 땜통, 아수라, 두더지 등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마지막에 딱부리가 깨닫는 문명 비판과 잿더미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의 희망도 너무 공허하다. 민주주의가 바닥을 기던 서슬퍼런 5공 초기에 사회의 가장 밑바닥인 쓰레기 매립장에서 철없는 소년의 현대문명 비판과 갑작스런 희망이라니...    

다만 버려진 개를 키우며 살고 강아지 빼빼의 이름을 따 빼빼 엄마라 불리는 여자는 나름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가끔 실성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빼빼엄마는 조금 어눌한 땜통과 함께 도깨비들인 김서방네 사람들과 직접 연결되는 인물이다. 매립장이 되기 전의 평화롭던 꽃섬의 모습을 보여주고 물건은 함부로 사용하고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정을 주는 대상이라는 주제를 드러내 주는 설정이다. 물론 도깨비불과 도깨비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적절하고 불가피했나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황석영의 글답게 군더더기 없고 재미있고 잘 읽혀진다. 지금은 공원과 경기장이 되어 있는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이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때를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한번쯤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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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elle 2011-07-28 21:29:08
I'm really into it, tahnks for this great stu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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