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과계는 불법진료의 대표주자로 지목된 특정 네트워크의 퇴출문제로 연일 들끓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동네 치과의사들의 자발적 문제제기와 적극적 참여로 촉발되어, 치협을 비롯한 치과계 단체와 언론사들까지 모두 합세하는 양상으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해당 네트워크는 법적 행정적 대응과 더불어, 자신들의 불법성이라고 고발되는 불법위임진료와 현금할인유도를 통한 탈세 등이 치과계에 만연해있고, 자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례에 대해 국민들에게 폭로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필자는 불법적 행위를 한 네트워크(치과)가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불법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불법이라고 지목받은 관행 자체가 치과계에서 근본적으로 퇴출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불법 네트워크 퇴출이라는 본보기 처벌 방식의 한계는 뚜렷해 보인다.
우선 이번에 확인되듯이 당사자의 강력한 반발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하다. 치과의사 양성비용 급증과 과다배출, 과도한 규모경쟁, 보철 등 비보험 진료에 집중된 수입구조 등에 의해 점차 확대되어 온 고비용 과잉경쟁 추구의 나쁜 생산 체계의 연장선에서 불법 네트워크가 잉태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쁜 생각을 가진 몇 몇 치과의사들이 새로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현 생산 체계의 악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 것이기에, 일부를 도려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만 왜 퇴출되어야 하나? 라는 항변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쁜 생산 체계에 길들여진 국민들의 인식도와 태도 또한 본보기 처벌 방식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준다. 국민들은 지금껏 재료가 비싸기 때문에, 진료기술이 어렵기 때문에 고비용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따라서 치과계에서는 말도 안 된다는 덤핑수가를 오히려 양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덤핑수가가 과잉진료로 이어져서 경제적 이득도 없고, 구강건강에는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주장은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의 넋두리쯤으로 치부한다. 환자를 위해 유통마진을 없애 비용을 낮췄다는 말을 더 신뢰한다. 위임진료와 현금할인 역시 환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특정 네트워크가 퇴출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형태의 또 다른 네트워크가 출현할 토양 자체가 굳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벌 방식에 대한 논란은 또 다른 방향의 문제이다. 법적 행정적 조치를 넘어서, 치과계의 자체적인 징계일 경우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때로는 단순 가담자에게 더한 고통이 가해지기도 하고, 이러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조차도 적대적인 대응에 의해 큰 상처를 받는다.
이러한 문제는 합리적인 자체 징계기준이 없고, 자율징계권 조차 부여받지 못한 상황에서 속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의 노력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까지 들게 만든다.
결국 불법 네트워크 퇴출은 문제를 인식하게 만드는 출발일 뿐이고, 많은 한계가 있으므로, 이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불법 네트워크 퇴출을 넘어, 동네 치과가 주민들의 지지 속에 진정으로 살아나는 것인데, 이는 고비용 과잉경쟁 추구의 나쁜 생산 체계를 뒤바꾸어, 착한 생산과 소비로까지 이어질 때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와 동일한 방식과 내용의 치과 의료를 생산하면서, 동네 치과이니 다소 비싼 비용을 지출하게 되더라도 보다 양심적이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는다는 주장에 그대로 동의하는 주민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이 느끼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고 보다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실제의 경험에 의해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착한 치과 의료를 생산하고서야, 주민들에게 다소 높은 가격일지라도 이용해달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어, 이른바 착한 소비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농업을 예로써 부연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우리 농민들은 농약을 이용하여 생산성을 손쉽게 향상시켰고, 그에 따라 보다 많은 수입을 얻는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러나 수입개방과 더불어 미국, 중국 등지로부터 보다 값싼 농산품이 쏟아져 들어오자, 수입농산물은 나쁘고 우리 것이 좋다는 신토불이를 외치며 저항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경험이 있다.
최근에 우리 농민들은 무농약 단계를 지나 유기농 농법을 통해 자연친화적인 우리 농산물을 생산해서, 농약을 사용하고 유전자조작에 의해 생산력을 극대화시킨 수입산 농산물에 대항함으로써, 국민들의 착한 소비를 유도하여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착한 치과 의료는 무엇인가? 대표적인 구강병인 치아우식증과 치주병이 만성병이고, 이를 가장 잘 관리하는 방법이 지속성의 확보(계속관리)라는 사실을 치과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계속관리의 주된 내용이 예방서비스와 맞춤형 교육상담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농민들이 유기농이 좋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농약사용을 통한 생산력 향상이라는 유혹을 피할 수 없었듯이, 치과의사들 또한 이러한 치과 의료가 소비자인 국민에게 보다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보다 높은 수익창출이 가능한 전문 진료 제공에 매달렸던 것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착한 치과 의료를 생산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돌려야, 착한 소비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으로 불법 네트워크(치과)가 퇴출될 수 있고, 동네 치과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치과의사들이 착한 생산으로 바꾸려 한다고 해서, 바로 가능해지는 것일까? 농민의 경우도 오랜 기간 농약을 이용한 농법을 유기농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무농약 단계를 거치면서 해당 농법을 익혀야 하고, 무엇보다도 판로개척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치과의사의 경우도 현재의 생산 체계를 바꾸기 위한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더불어 착한 생산이 유통될 수 있는 판로가 함께 개척되어야 한다. 기존의 생산체계를 착한 생산체계로 전환하는 것을 민간에서 전적으로 감당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의 다수 국가의 경우, 국가 건강보장체계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치과 의료를 생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에게 착한 생산의 필수내용이어야 할 예방서비스, 적절한 상담과 조언 등이 지속적 관리방식으로 무상 제공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두제 방식의 아동·청소년 치과주치의 제도를 국민건강보험체계를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내년이 총선과 대선이다. 다양한 정책들이 제안되고 받아들여지는 시기이다. 치과계로서는 모든 정치집단들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야말로, 불법 네트워크 퇴출을 넘어, 동네 치과를 살리는 착한 생산과 소비를 이끄는 첫출발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 혹여 영리병원을 받아들이고 의료개방을 선택하게 된다면, 불법 네트워크를 조장하는 현재의 나쁜 생산체계를 오히려 강화시켜, 치과계로서는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정세환(본지 논설위원, 강릉원주대 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