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 신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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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 신형건
  • 이인문 기자
  • 승인 2005.02.03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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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모든 치과에 동화책 서고가 생기는 게 꿈”

지난 1998년 10월 창립이후 창비와 쌍벽을 이루는 아동문학 전문출판사로 성장해온 출판사 ‘푸른책들’의 신형건 대표가 20년에 걸친 그의 문학 활동을 마무리하는 비평집 <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를 펴냈다.

1984년 경희치대에 입학한 해에 동시 ‘친구에게’가 <아동문예> 신인문학상에, 동시 '초목감'이 <새벗>문학상에 당선되어 글쓰기를 시작했고, 1990년에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동시 5편이 수록된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로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까지 받은 그는 이미 중견 동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왜 치과의사가 되었을까?

“사실 저는 문과 출신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문학에 뜻을 두고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지요. 그런데 고3이 되면서 구체적인 직업에 대해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문학은 저에게 평생의 업이었고, 당장의 호구지책이 필요했던 것인데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직업으로 치과의사를 선택한 것이지요.”

당시 경희치대에서는 문과생에게도 입학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었다. 1982년부터 3년간. 막차를 탄 그의 동기들 중 고등학교 문과 출신은 그의 기억에 45명이나 되었다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떤 막연한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에 몰두했던 그의 성격 탓이리라고 그는 덧붙인다.

동시 작가, 운명적인 등단

그런데 그는 치대에 입학한 1984년 운명적으로 아주 쉽게 동시 작가로 등단하고 만다. 이후부터 문학은 그의 ‘부전공’이 되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치의학 공부와 더불어 그는 혼자서 해내야 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공보의 부임과 더불어 그동안 써 온 동시를 모아 <거인들이 사는 나라>라는 동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가 않은 일이었다. 두 가지 일이 모두 다 절대적으로 몰입하지 않는다면 그리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개인적인 삶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일에만 몰두해왔다.

더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린이문학시장이 척박하기만 했기 때문에 그는 1998년 10월 개원 5년 만에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열어주기 위해 직접 ‘푸른책들’이라는 출판사까지 창립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만 6년 만에 어린이책 100권을 출판하는 우리나라 출판 역사상 드문 ‘대기록’을 세웠다.

 

“출판사를 창립한지 2년 반 만에 치과를 정리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더라고요. 출판사 창립을 준비하면서부터 만 3년 동안 하루도 쉬지를 못했어요. 또 치과를 계속하고 있으면 언제든 돌아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다시는 치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정리를 했죠.”

그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치과의사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는 생각도 그가 공보의부터 10년  간이나 해온 치과를 손쉽게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문학 활동을 하면서 자신은 보수교육 한번 제대로 받질 못했는데, 치과계에 비해 우리나라의 출판 현황은, 특히나 어린이책 출판 현황은 아직도 열악했고, 여기에서 그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더 클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한다.

좋은 책은 독자가 더 먼저 알아

하지만 당장의 수입이 끊기고 마는 그 결단 앞에서 그의 마음고생은 넉넉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는 ‘다행이도 좋은 책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더라고요’라는 아주 간단한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정말 다행히도 출판사를 세운지 6개월만인 1999년 4월에 첫 출간한 이금이 작가의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부터 그가 펴낸 책들은 꾸준히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르곤 했다. 그리고 짧은 기간 안에 100권을 넘게 출판했지만, 그가 출판한 책들은 내용면에서 나름대로의 꾸준한 수준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기 시작하면서, 그가 창립한 ‘푸른책들’에서 펴낸 책들이 다른 유수의 출판사들을 제치고 가장 많은 총 28편의 동화, 동시가 수록된 것이 그 증거. 그는 창비와 비슷하게 실렸는데, 옛날이야기책을 제외하고 순수 창작품으로만 따진다면 단연 1위라고 웃으며 얘기한다.

왜 어린이 문학인가?

“어린이 문학에는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심성이 담겨 있어요. 순수함과 단순함은 사물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고, 어린이 문학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본질의 핵심인 이 보편성을 향해 나아가게 되지요.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어요.”

그는 1980년대 민중문학처럼 시나 소설은 어린이 문학과는 달리 필연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시나 소설은 자신의 생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문학장르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어린이 문학은 ‘밝음을 지향하는 행복한 장르’로 어떤 것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고 포용해야 하는 문학장르라 했다. 비극적 결말도 희망으로 포용해야 하는...

그래서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일종의 자폐증적인 성향을 보일 수도 있는 반면, 어린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희망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의 내면도 더욱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는 ‘행복한’ 장르라고 말한다.

다양성 속에서 보편성을 지향한다

‘푸른책들’ 출판사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다른 어린이 출판사들에 비해 출간해내는 책들의 성격을 어떤 하나의 경향성으로 묶어내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 최근 들어 어린이 문학 출판사들 간에도 뚜렷한 자기만의 독특한 전문성을 내세우곤 하는 경향을 돌이켜 본다면, 이는 매우 이례적이기도 하다.

“저는 세상이 다양함 속에서 함께 어울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다양함 속에서 보편성을 지향해나가는 것, 그것이 ‘푸른책들’의 출판 이념이에요.”

그래서 일까? ‘푸른책들’ 출판사는 다양한 어린이 문학 책을 출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의 토양을 더욱 넓게, 또한 더욱 깊게 만들어 가는 일에도 매우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홍보용이기 마련인 홈페이지 또한 얼마 전 어린 독자들을 위한 아동문학 전문 싸이트 (www.prooni.com)로 아주 예쁘게 단장했고, 돈도 안 되는 월간 아동문학 잡지 <동화 읽는 가족>도 출판사 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월 발간하고 있다. 그뿐인가 아동문학 신인작가의 등용문인 ‘푸른문학상 제도’와 작가 양성을 위한 ‘푸른아동문학교실’ 등도 심혈을 기울여 운영하고 있다 한다.

“지난 2000년 이후 우리의 어린이 문학시장은 급속히 발전해 왔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과열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정체를 보이고 있는데요. 인기 작가들에 대한 ‘모셔가기’ 경쟁보다는 어린이 문학의 저변을 넓혀갈 수 있는 노력을 평소부터 해나가야 해요.”

다시 돌아보는 치과의사, 그리고 치과계

지난해 말 비평집을 내면서 그는 ‘치과의사’라는 자기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나온 책 제목이 바로 <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이다. 그만큼 그가 떠나왔지만 지금의 그의 삶을 일정 정도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치과의사’였다는 그의 직업이다.

 

“얼마 전 모 대기업에서 CF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거절할까 하다가 광고 컨셉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라길래 승낙하고 몇 시간 동안 땀 흘리며 다 찍어놨더니, 광고주가 치과의사 가운을 입고 다시 찍자는 거예요.”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한다. 지금은 치과의사로 활동하고 있지도 않은데, 열심히 일하는 치과의사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라고... 그래서 그의 광고 CF는 불방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치과의사일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을 빼고도 10년을 직접 몸담았던 곳. 그는 이곳을 잊지 못한다.

“이제 출판사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 다시 치과계가 생각나더라고요. 배수의 진을 친다고 한동안 의식적으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동화책을 먹는 치과의사의 새로운 꿈

그래서 그에게는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겨났단다. 어린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치과 환자 대기실에 여성지나 만화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을 담고 있는 동화책 서고가 생겨났으면 하는 것이 그것.

“일단 치과에 오면 아이들이 어떤 공포심에 사로잡히건 말건, 우리 치과의사들은 어떤 한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만 해야 하잖아요. 같이 온 부모들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요.”

그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그저 삭막한 공간으로, 아니 어쩌면 두려움의 공간으로만 자리잡고 있는 치과라는 울타리 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나 동화책, 동시집들을 꽂아 두어 아이들의 친밀감을 유발해내고, 또한 좀 더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한다.

“내가 몸담았던 곳, 그 곳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작은 소망이 하루 속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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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주 2005-02-11 14:48:58
샘.. ^^ 맨날 아쉬울때만 전화해서 항상 미안하단 생각하고 있어요.
한번 봐야하는데.. 하는 생각도 항상.
그래도 이기자님이 좋은 기사 써주셨네요..
푸른책들이 이렇게 훌륭한 출판사였는지는 저도 읽고야 알았네요. ^^
여전한 얼굴이어서 더 반갑고요..
다만 형의 좋은 웃음을 담기에는 사진이 너무 안나왔다는 생각이 -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전민용 2005-02-04 11:10:28
영천의 칼바람 속에 동화처럼 수줍음이 넘치던 샘 얼굴이 생각나네요.
한결같은 그 마음이 여기까지 오셨군요. 흐뭇하고 또 흐뭇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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