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NHS 견문록-이야기 두번째
상태바
영국 NHS 견문록-이야기 두번째
  • 고병수
  • 승인 2011.08.16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병수의 가슴앓이]

 

이 글은 필자가 2011년 7월 3일부터 7월 9일까지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최근 보수당 캐머런 정부의 NHS 개혁에 관한 것과 일차의료 현장에 대한 견학을 하고 느꼈던 것들을 쉽게 이야기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GP(일반의)들이 근무하는 진료소를 몇 군데 찾아가려고 한다. 진료소..... 우리는 잘 쓰지 않는 말이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진료소라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의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잠깐 영국의 의료기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진료소의 의사들이 일하는 모습과 주민들의 모습은 나중에 최종적으로 정리하면서 글을 이어갈 것이고, 여기서는 체계에 관한 것만 실으려고 한다.

 
영국의 동네의원

영국에서 사람들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으면 제일 먼저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가야 한다. 주치의, 즉 일차의료 담당 의사들을 말하는데, 이들이 일하는 곳이 일반의 진료소(동네의원)이다. 나는 주치의 진료소를 찾아서 구경하면서 운 좋으면 의사와 면담이라도 하려고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동네를 기웃기웃 돌아다니며 있던 중, 지나가는 동네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Excuse me. Would you direct me the near medical clinic?”
“.....”

“Medical clinic! GP’s office!”
“.....”

이럴 때 쓰려고 열심히 준비한 말이었는데, 길을 가다가 낯선 동양인에게 질문을 받은 그 동네 사람은 잘 이해가 안 가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Aha, GP surgery?”

“No, No GP surgery. GP clinic! GP office!”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 사람에게 나는 미안해서 더 묻지 못하고 가던 길을 가게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었든지,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의원’을 말하는 표현에 문제가 있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의원이란 말이 클리닉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중에 현지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하고 있는 이원영 교수에게 물었더니 영국에서는 일반의가 근무하는 의원을 ‘GP surgery’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surgery라면 ‘외과’나 ‘수술’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이원영 교수도 작은 병원, 혹은 의원을 말할 때 지금은 외과를 뜻하는 surgery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내가 추측하건데 옛날에는 외과가 의사의 상징이었고, 의원이라면 당연히 외과적 치료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의원을 관습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GP surgery 외에도 주치의 진료소를 다른 말로는 ‘GP practice’라고도 한단다.

▲ 다음 날 숙소 근처에서 발견한 GP surgery(동네의원, 주치의 진료소) 광고 현수막. 이번에 새로 개원한다는 표시로 걸어 놨다. 그 건너에 보이는 집이 주치의가 있는 동네의원이다. 진료 시간을 보니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의사가 6명 근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사를 가거나, 지역을 옮기게 될 때에는 항상 먼저 그 동네의 일반의(GP, General practitioner)를 찾아서 ‘등록’을 하게 되는데, 등록이란 ‘앞으로 당신을 주치의로 삼아서, 내가 아프면 당신에게 맨 먼저 오겠소’라고 문서화 하는 과정이다. 현지에서 듣기로는 아직도 영국에서는 자기가 사는 지역의 일반의들 중에서 주치의를 삼아야 한다고 들었다. 즉 유능한 의사가 멀리 있다고 그 쪽으로 가서 등록을 할 수는 없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때를 제외하면. 하지만 그 지역적 경계가 요즘은 흔들리는 것 같았고, 옆 동네에 있는 주치의를 찾아서 가는 주민들도 꽤 있었다. NHS에서 그다지 간섭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한 동네의원에는 보통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 재활치료사, 상담사뿐만 아니라 행정요원들이 근무하게 된다. 2009년 통계를 보면, 잉글랜드(영국 전체가 아님)에는 8228개소의 주치의가 일하는 동네의원(GP surgery)이 있고, 일반의들은 4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도 그 수가 모자라다고 하는데, EU 전체로 볼 때도 낮은 수치이다. 5% 정도만이 혼자 일하는 의원이고, 대부분이 여럿이 함께 진료를 하는 공동개원(Group practice) 형태이다. 그리고 주치의 한 명당 보통 1500명 정도의 주민들을 등록해서 관리해주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도시나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여러 명이 공동으로 일하고, 외곽이나 한적한 시골에는 한 명이 있는 곳이 많았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동네의원들이 민간의료기관이기 때문에 효율성과 수익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정부와 NHS를 관장하는 위원회들은 그러한 문제점들을 고치려고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예로 지난 노동당 정부(1997년~2010년) 당시 지속적인 보건의료 지출 증액으로 그나마 GP들이 많아졌고, 대기시간이나 의료 접근성들이 좋아졌다는 통계를 보면 말이다.

 
영국의 기초 의료서비스들

이러한 주치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치과 의원, 안경점, 약국도 NHS와의 계약 속에서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에서 NHS란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의료 관계 조직 및 보건의료 행정조직들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라는 말은 의뢰 없이도 주민들이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 장소를 말한다.

그 속에 안경점은 왜 있지? 그렇다. 광학기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은 안경점을 차리고 NHS와 계약을 해서 시력검사나, 상담, 안경을 맞추는 일까지 국가지원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영국에 가거든 안경점을 유심히 보시기 바란다. 바깥 유리판이나 가게 어디쯤 NHS 파란 표시가 보일 것이다.

런던 시내를 걷다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앰뷸런스를 보게 된다. 그 앰뷸런스도 긴급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독립된 보건의료 조직이면서 NHS라는 영향권에 있어서 차량 옆, 뒤에 보면 NHS라는 파란 글씨가 보인다. 어떤 영국 사람은 자기네 나라 앰뷸런스 소리가 전 세계에서 제일 시끄러울 것이라며 화를 내기도 하던데, 들어보면 정말 시끄러워서 500m 밖에서도 충분히 들릴 정도였다. 하여튼 어떤 것이든 이 표시가 없으면 국가보장 의료가 아니라는 뜻으로 봐도 된다. 병원이든, 약국이든, 안경점이든 어디를 가더라도 말이다.

▲ 국가의 보건의료체계와 관련된 행정조직이나 의료관련 기관들은 모두 NHS라는 표시를 하고 있다. 왼쪽은 앰뷸런스, 오른쪽은 안경점의 모습.

런던에는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분포하는 지역거점 진료소들이 있다. 여기에는 동네에 있는 GP surgery들 보다 규모가 크고, 여러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역시 일차의료 진료소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보건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사들도 수 십 명이고, 전문의도 근무하면서 일을 할뿐 아니라 간단한 수술까지도 할 수 있다.

아침에 의사소통 부재로 동네 GP surgery 방문에 실패한 나는 일행들과 함께 미리 방문 허락을 받은 지역 거점 진료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는 외국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런던에서도 가난한 지역입니다. 이 진료소 건물은 크고 훌륭하게 지어졌는데, 정부 시책으로 민간 자본에 의해 지어진 거죠.”

▲ 런던 외곽지역에 있는 Vicarage Lane Health Centre. 지역 거점 진료소로서 Foundation Trust라는 체계상의 위상을 가지며, 역할로 치면 우리나라의 보건소와 같다.

NHS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진료소이지만, 민간자본으로 지어졌다는 진료소 매니저의 설명을 들으니 의문점이 머리를 맴돌았다. 개인의원은 민간 영역이 많다고 쳐도, 종합병원이나 대형 진료소들은 국가가 직접 경영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여러 관련자들의 얘기를 듣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아보니 영국도 민영화 바람이 심각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가 흔히 듣던 BTL(Build-Transfer-Lease) 방식이라든지,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방식이 공공의료 분야에서도 점점 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대형 진료소는 PFI 방식으로 지어져서 투자자에게 NHS에서 일정액씩 돈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민간자본의 투입은 비단 지금 보수당의 캐머런 정부에서 생긴 일은 아니었다. 지난 노동당 정부인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부터 꾸준히 민간 영역이 넓혀져서 지금은 상당 부분에까지 침투했다는 자료를 보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서 본격화된 민영화 작업들이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지나친 상상일까? 지금도 제주도에서 영리병원 도입 반대를 위해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느라 고생하는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 박형근 교수의 힘든 얼굴을 멀리 런던에서 떠올려 본다.

▲ Health System in Transition : United Kingdom 2011 자료 발췌 - LSE 대학의 숀 보일(Se-an Boyle) 박사 등 엮음

 
**NHS에 대한 투자 재원을 보여주는 이 도표에서 보면 노란 부분이 1997년경부터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민간자본의 인입이 점차 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연재글은 새로운사회연구원(www.saesayon.org)에 게재된 칼럼 입니다.

고병수(가정의학과 전문의, 새사연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