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지율스님과 참여정부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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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지율스님과 참여정부의 개혁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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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100일에 걸친 '단식강법'으로 결국 잘못된 '원효터널' 공사에 대해 재검토하게 되었다. 충분한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석달에 걸쳐 다시 살펴보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지율스님이 단식을 풀고 '천성산의 어미'로 다시 살게 된 것이다.

지율스님이 '단식강법'에서 줄곧 강조한 것은 자신의 단식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단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주목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환경영향평가가 엉터리로 되었으니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환경영향평가가 지율스님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환경영향평가는 단순히 자연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자연의 거대한 인공적 변형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사회적 인간적 비극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댐을 쌓거나 도로를 놓거나 매립을 하면서 망가지고 없어지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떠나게 된 각종 '개발난민'은 갑자기 뿌리를 잃어 버리고 엄청난 상실감과 무력감에 시달려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거나 아예 자살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백년간 또는 수천년간 살아오던 소중한 문화유적지들이 통째로 물에 잠기거나 도로로 밀려 없어지거나 매립되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런 비극이 박정희의 개발독재 이래 전국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저질러졌다.

환경영향평가는 이런 끔찍한 비극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오히려 이런 비극의 연출자로 악용되고 있다. 개발을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조작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것이다.

해당 지역의 생태상과 문화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의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더라도, 개발업자는 전문가들이 조사해서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라 우기기만 하면 된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를 썼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고, 그렇게 하도록 했다 해도 역시 그렇다. 개발업자와 환경영향평가 전문가의 유착이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개혁이란 무엇인가?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개혁이 아닌가? 그러나 참여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악용하는 개발업자와 전문가가 아니라 그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천성산을 돌아보자. 참여정부는 절차대로 환경영향평가를 마쳤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환경영향평가서는 오래 전에 엉터리로 작성된 것이다. 그 작업에 참여했던 전문가조차 현장을 돌아보지도 않고 쓴 것이라 증언하기도 했다. 주위에 보호할 동식물이 전혀 없다고 쓰여 있는 그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서를 들어 공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우기는 것은 그야말로 개발독재 시대의 행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는 그것을 작성한 것과 그것으로 절차를 마친 것이 모두 중대한 범죄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따라야 하는가?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시민에서 짐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참여정부는 그 자체로 중대한 개혁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2005년 1월 28일 '노선재검토위'의 전문가들은 '대안노선'을 발표했다. 다음 날 부산환경운동연합은 이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대안노선은 "최소 3,700억원의 예산절감, 기존선 활용 및 터널공사 방지 등으로 공기단축 가능... 이 대안노선으로 부전역을 최종역으로 할 경우, 부산광역시 도심구간의 친수공간 복원(부산진-부산역2.3km, 10만평)도 가능하여 해양도시 부산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대안노선이 있다면, 당연히 깊이 따져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2005년 2월 1일 부산환경운동연합은 '대안노선'의 채택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대안노선'이 채택되지 않는 배경에 대한 충격적인 설명이 담겨 있다. 한 지리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납득할 수 없는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를 정부가 고집하는 배경에는 지상 노선보다 터널 노선이 공사비 측면에서 토지수용비 비중은 줄이고 토목공사 비중을 늘릴 수 있는 사정이 작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공사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토건국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은 혈세를 챙기고자 하는 토건업자들이 '원효터널'을 강행하고자 하고, 그들과 유착한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내세워 토건업자들의 들러리를 서 주는 것이다.

토건국가는 엄청난 혈세를 탕진해 자연을 파괴하고 부패를 만연하게 하는 '파괴국가'이자 '부패국가'이다. 공사비를 조작해 막대한 이윤을 챙긴 토건업자들은 그런 짓을 눈감아준 정치인들에게 뒷돈을 대주어야 한다. 그 결과 자연의 파괴와 혈세의 탕진과 부패의 만연이 이루어진다. '선진 한국'이 되기 위해서는 토건업자와 정치인들이 탕진하는 혈세를 복지예산과 교육예산으로 돌려야 한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나라는 이미 세계11위의 경제대국이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는 토건국가의 부패구조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05년 한 해에만도 45조원의 '국책사업'이 신규발주되고 그 중에서 무려 5조원의 혈세를 토건업자들이 완전히 공돈으로 먹게 될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미디어다음>의 입찰 관련 기획기사 참조). '토건마피아' 또는 '토건복합체'로 불리는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어 자연을 돌보고 복지를 증진하는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율스님 때문에 혈세를 낭비하게 되었다는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이 정부가 극단적으로 확대재생산하고자 하는 토건국가의 구조이다. 이 정부는 개혁을 한다더니 박정희가 그 초석을 다진 토건국가의 확대재생산에 매진하고 있다. 개혁의 대상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개혁인가? 온 나라를 토건업자들의 밥으로 만들고 전국 곳곳에서 피해 주민들을 양산하는 것이 개혁인가?

지율스님이 단식을 중단한 뒤에 <조선일보>과 <동아일보>는 이강철 수석의 주장과 똑같은 주장을 일면 머릿기사로 뽑았다. 토건업자들이 가장 큰 광고주인 조선과 동아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조선과 동아와 이강철 수석이 어떻게 해서 똑같은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조선과 동아가 이강철 수석의 애독지인가? '국책사업'의 이름으로 토건국가를 정당화하고 확장하는 정부는 개발독재의 정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개혁은 국가보안법이나 과거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개발독재와 토건국가의 문제를 내버려두고 개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지율스님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강행되는 토건국가라는 '병든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자 했다. 환경영향평가의 실질화, 최저입찰제의 전면화, 분양원가의 공개, 공유수면 매립법의 개정, 개발공사(公社)의 통폐합과 생태민주적 개혁 등의 구체적 과제가 이미 제시되어 있다.

성장과 고용을 운운하며 토건국가의 개혁을 회피하고, 나아가 오히려 그 확장을 꾀하는 것은 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정치세력은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율스님의 '단식강법'에서 절절한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그를 비난하기에 급급한 참여정부는 그 자체로 중대한 개혁의 대상이다.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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