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45]분노의 도가니, 변화의 시작일까
상태바
[전민용의 북카페 -45]분노의 도가니, 변화의 시작일까
  • 전민용
  • 승인 2011.10.04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가니. 공지영 저. 창비

 

폭력과 불의의 ‘도가니’가 소설과 영화를 통해 관심과 공감의 ‘도가니’로 바뀌고 있다. 장애 아이들에 대한 끔찍한 성폭행과 잔인한 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2009년 이 소설을 읽을 때 대명천지에 설마 이런 일이 있었을까 믿기지 않아 인터넷검색을 해보았다. 나는 공지영의 ‘도가니’가 소설 출간 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누적조회수가 천 만이 넘는 엄청난 관심 속에 연재되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검색을 통해 이 사건이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광주에 있는 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작가에 따르면 소설 속 사건은 실제 일어난 일의 1/3도 안 된다고 한다.

▲ 도가니. 공지영 저. 창비
인간은 시공간적으로 멀어지면 기억도 관심도 희미해지는 생물학적인 한계가 분명한 존재이다. 인접성이야말로 인간을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뉴스와 소설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끌고 대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 사건은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났다.

2011년 9월 이 사건은 한편의 영화로 다시 부활했다. 개봉 10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있다. 가히 열광의 도가니다. 인터넷에는 가해자들에 대한 응징과 문제의 근원적 해결에 대한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무신경하던 검찰과 경찰, 교육청 등은 신속하게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처벌과 대책이 가능할까?

소설과 영화 속에는 부조리한 기득권자들의 행태와 그들이 동원하는 온갖 수법들이 등장한다. 부정하게 돈을 모으고, 족벌 체제와 이너써클을 형성하고, 사법과 행정 기관을 관리하고, 사회적 약자를 사람 취급 안 하고, 폭행하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권력 기관들은 음으로 양으로 이들과 결탁해 있다. 그들의 겉모습은 신실한 교회 장로님이고, 존경받는 지역 유지이고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자다.

실재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적 구성을 적절하게 배치한 공지영의 ‘도가니’도 훌륭했지만 영화 ‘도가니’는 소설보다 더 심금을 울리는 면이 있다. 기본 뼈대는 그대로지만 살을 붙이는 이야기들은 영화적인 특성에 맞게 대부분 재구성했다. 시각적인 장면들이나 재판 장면 등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여러 설정들이 ‘불편할 수도 있는 진실’을 ‘감동할 수 있는 진실’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행의 일등 공신은 MB로 대표되는 보수 기득권 체제이다. 정치, 경제, 언론, 사법 등 권력이 소수의 기득권층에게 절대 유리하게 작동된다는 사실을 지난 몇 년을 통해 반복해서 학습시킨 결과이다.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는 심해지고,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구조악은 더 공고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각 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 장애아들의 현실이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고, 어느 순간 나와 내 가족도 이렇게 짓밟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영화에 대한 공감으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소설과 영화 속의 미술교사 강인호와 인권센터 서유진은 실재 인물이라기보다 복합적으로 구성된 인물들이다. 소설과 영화는 이 두 인물을 상당히 다르게 그린다. 운동권 출신으로 투쟁의 중심이 되는 서유진(영화에서는 정유미 분)에게도 애정이 가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평범한 소시민 강인호(영화에서는 공유 분)를 통해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우리 각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소설과 영화에서 강인호의 역할이 달라진 것은 약 2년이라는 시차가 주는 시대적 요구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도가니를 읽을 때는 강인호의 마지막 선택이 시대적 한계일 수도 있지만 작가 공지영의 한계가 아닌가라는 느낌도 들었었다.

피해 아이들인 연두, 유리, 민수는 길고 지난한 재판 끝에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스스로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 도가니의 완결일 것이다. 2012년 선거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민주적인 권력의 수립은 이런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데 진정한 고민 지점이 있다. 남은 기간 동안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채울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서울시장 선거의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되었다.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기를 기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